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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udy of the Hospitability which a love story between『The Land』and『Miss Julie』 - The study which the Hospitability in epic of the Identity by Master and Slave -

『토지』와 『미스 줄리』의 사랑 서사에 나타난 ‘환대’의 특성 연구 - 주인 아가씨와 남종의 사랑 서사에 나타난 '환대'의 타자성을 중심으로 -

  • Published : 20180000

Abstract

For Derrida, conversation goes further from the rationality of communication to the responsibility of responding to neighbors, whose relationship with the batter brings back the self-responsible nature, by the hospitality.In this context, the hospitality can not be reduced to a localistic concept or obligation, but rather a request for a typing question, a listening attitude, that is the question itself and lacks a principal.Through the study which is a love story between『The Land』and『Miss Julie』, the idea of the possibility of a lead-in moving from thenovel to the writing of the Other of the Hospitability.At this time, Eros would request and experience a change as a physical entity that can not be returned through the typing quality of hospitality as a force that stops the self's momentum beyond the desire for sexual and physical caress.

데리다는 환대에 대하여 의무로 환원되는 칸트의 환대를 비판하면서, 정언명령으로서 이러한 태도는 법률적· 정치적 환대로서 이율배반적인 성격, 즉 환대의 법을 수행하기 위해 이율배반적으로 적대를 함의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왜냐하면 동일성의 경계 속에서 동문은 동문끼리, 민족은 민족끼리, 동일한 종교인은 동일 종교인끼리 우호적인 환대는 경계 밖의 타자들을 적대화하는 환대가능성으로서 환대의 정치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데리다는 이러한 동류끼리의 환대의 경계를 뛰어넘어 주인과 손님, 주체와 타자로서 정형화된 이분법적 경계를 초월해 짐승, 식물, 신적인 것에게까지 이르는 환대의 윤리로서 환대의 불가능성을 제시한다. 따라서 이러한 맥락에서 환대란 로고스적 개념이나 의무로 환원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주체가 결여한 타자성의 질문에 대한 요청, 즉 응답에 대한 태도를 의미한다. 이때 타자는 적어도 내가 가진 자리를 갖고 있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방인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타자는 주체의 비완결성을 드러내준다고 할 때, 내가 가진 자리가 없는 타자가 내 자리의 의미를 반성하게 하며 내 자리의 유동성을 보여주고, 내 자리의 바깥을 지향하게 함으로써 자기 확장과는 다른 환대의 윤리를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소유란 ‘자기가 아닌 것을 자기 지배하에 두고자 하는 것’으로서, 본질적으로 자기중심적인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자기중심성의 경계에서 벗어나 타자에 대한 사건으로서 환대는 불변의 진리로 여겨온 주체의 이데올로기적 경계를 허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환대는 주인과 노예라는 헤겔의 인정투쟁을 넘어서 타자성의 사건을 의미한다. 즉 주인이면서 손님인 주객전도의 사건을 통해 환대는 이웃, 이방인, 적의가 가득 찬 원수에까지 이르는 환대불가능성으로서 정치적인 것을 초월해 환대의 윤리를 수행하기 때문이다. 소설 <토지>와 희곡 <미스 줄리>에 나타난 사랑 서사를 ‘환대’의 특성을 중심으로 연구한 것은 근대 주체와 권력 투쟁의 진보적 역사관이 결합된 제국의 시대를 관통하는 두 텍스트의 사랑 서사를 통해 제국주의와 여성성의 소외된 위치에도 불구하고 주체 욕망을 초월하는 타자성의 사건을 통해 환대의 윤리를 구현하는 텍스트의 특성에 주목하여 타자성의 의의를 살피고자 하였다. 박경리 소설 <토지>는 신분제 사회의 붕괴와 제국주의의 주체 욕망에 기인한 소외의 문제의식에서 출발, 인간의 사랑과 정마저 소외되는 인간성의 비극을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때 <토지>에 나타난 공간의 타자성이란 ‘자리가 있을 수 없는’ 이방인으로서의 타자와 공간 욕망에 의해 디아스포라를 경험하는 인물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통해 생명의 기원으로서 공간의 타자성의 문제를 질문, ‘토지’의 본래적 의미를 시사함으로써 민족과 민족, 이념의 경계를 초월하는 환대의 윤리를 요청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나아가 소설 <토지>의 인물들은 이산과 유랑, 귀환이라는 디아스포라적 경험을 통한 공간의 스펙트럼과 구한말에서 해방에 이르는 시간 서사를 통해 주체 욕망의 근대적 시·공간에 편입되지 않고, 살아서 움직이며 욕망하는 몸, 이주하고 귀환하며 미움과 복수 가운데도 사랑과 숭고한 희생의 가능성을 지닌 몸의 타자성을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일본 제국주의 욕망 속에서 공간의 수탈과 몸의 수탈이 자행되던 불행한 제국의 시대, 모국어마저 말살시키는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 더 이상 공간과 몸의 주인으로 살아갈 수 없게 된 마술적 근대의 시·공간 가운데 소설 <토지>의 작가 박경리는 주체 욕망을 넘어 사랑의 서사로서 공간의 타자성에서 몸의 타자성에 이르는 몸의 해방을 염원함으로써, 아토포스적 타자성으로서 에로스의 가능성을 통해 환대의 윤리를 구현하였던 것이다. 반면 희곡 <미스 줄리>에서 줄리는 환대가 법의 문제가 아니라, 욕망의 문제임을 제기하는 니체적인 인물-반여성-이라고 할 수 있다. 부성 로고스가 만든 법에 대해 질문하는 여성으로서 그녀는 남근이 거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가 욕망을 지닌 위험한 여성이며, <다락방의 미친 여자들>에 나오는 근대 여성 작가들로서 부성 로고스가 강제하는 사회에서 이해받지 못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불행하고 비극적인 여성작가들의 전형처럼 이방인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환대받지 못하는 여성으로서 줄리는 결코 남성의 이웃이 될 수 없는 미친 여성, 즉 타자의 타자성으로의 여성성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때 남성의 대리보충의 의미로서 여성이 개념화되었다고 할 때, 이러한 상황은 문명을 보충하는 자연과 마찬가지로 문명에 반대되는 자연의 야만성의 얼굴처럼 부성 로고스가 강제하는 합리성의 경계에 의해 미친 여자의 얼굴로 인식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연에서 소외된 죽음의 타자성, 즉 죽음이라는 비존재의 존재방식이야말로 오래된 여성성의 위치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죽음의 타자성은 대리보충될 수 없는 환대의 불가능성을 통해 환대의 윤리를 드러낸다. 이때 <미스 줄리>에 나타난 죽음의 외설성은 플라톤의 이데아론과 로고스 담론이 내세운 ‘아름다운 영혼’에 상반되는 것으로서 문학과 미술사에서 여성의 몸과 죽음을 미화화하면서 도덕적 타락이라는 기입을 통해 여성성의 타자성을 비존재의 방식으로 기술해왔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미스 줄리>는 ‘반여성’으로서 외설적인 타자의 목소리와 죽음의 타자성을 통해 환대의 불가능성을 보여줌으로써 역설적으로 환대의 윤리를 요청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토지>와 <미스 줄리>의 사랑 서사에 나타난 환대의 타자성 연구를 통해, 소설 <토지>를 공간의 타자성에서 몸의 타자성으로 나아가는 아토포스적 사랑의 가능성으로서 연구, 민족과 이념의 경계를 초월해 환대의 윤리를 구현한 것임을 이해하였다. 이어 희곡 <미스줄리>를 ‘반여성’으로서 외설적인 타자의 목소리와 죽음의 타자성을 통해 환대 불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환대의 윤리를 요청하는 부재하는 여성성을 통해 타자성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때 ‘자리(토포스)를 가질 수 없음’의 환대의 윤리(지상)와 ‘이 세상에 자리가 없는 것’으로서의 유토피아(천상) 사이에서 벌어지는 타자성의 사건으로서 아토포스로서 타자성의 개념을 이해함으로써 환대의 불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주인과 노예, 강자와 약자, 주체와 타자, 삶과 죽음, 남성성과 여성성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환대를 통하여 인정 투쟁과는 다른 맥락에서 타자성의 회복을 모색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환대 불가능성에도 불구하고 환대의 타자성은 인정투쟁과는 다른 타자성의 위치-자리가 있을 수 없음-에서의 요청과 응답을 의미한다고 할 때, 희망과 절망을 가로지르는 실재로서 에로스의 가능성-할 수 있을 수 없음-을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주체 욕망에 의한 배제의 논리를 초월하여 환대의 불가능성은 환대의 문제를 통해 타자성의 계기를 요청함으로써, ‘이 세상에 자리가 없는 것’의 유토피아의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조차 ‘자리(토포스)를 가질 수 없음’의 타자의 경계를 초월해 아토포스적 사랑으로서 타자성의 가능성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이때 에로스의 타자성은 성의 차이나 육체적 애무의 욕망을 초월해 자아의 계기를 중단시키는 힘으로서 주체로 환원될 수 없는 변화를 요청하고 경험한다는 점에서 타자성의 부재와 소외로 인해 에로스의 위기를 경험하게 된 오늘날, 환대에 대한 윤리적 요청으로서 의의를 지닌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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