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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제네바에서의 칼빈의 종교개혁과 현대 기독교의 도시 선교적 방향성 모색

Calvin's Reformation in Geneva and the Urban Missional Direction of Christianity Today

  • 투고 : 2021.08.10
  • 심사 : 2021.08.31
  • 발행 : 2021.11.28

초록

본 연구는 칼빈이 도시 제네바에서 진행했던 종교개혁의 특징들을 살펴보고 오늘날 기독교가 도시적 환경에서 기독교의 가치를 드러내기 위해 어떠한 효율적 기능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인지를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칼빈의 종교개혁은 공공의 영역에서 교회의 분명한 자리와 역할을 마련해 주었다. 또한, 칼빈의 종교개혁의 과정에서는 항상 빈민이나 여성 등과 같은 당시의 사회적 약자들에 관한 관심과 복지적 실천이 뒤따랐다. 이러한 이해에서 본 연구는 오늘날 현대교회가 도시적 환경에서 실천할 수 있는 다음의 적용점들을 제시했다. 첫째로, 교회는 도시적 환경이 가지는 다양성과 유동성, 역동성을 분명히 이해하고 성경이 지지하는 다양한 상황적 적용을 통한 변화를 시도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교회의 선교적 접근은 믿음-소속감 프로세스에서 소속감-믿음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셋째, 친숙한 전통적 교회에서 새로운 사회적 현실로서의 교회로의 전환이 필요하며 지역사회 공동체가 가지는 관심사와 분위기에 대해 분명히 이해하고 그것에 보조를 맞추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대의 교회는 이전보다도 더욱 새로운 생태학적 민감성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characteristics of the Reformation Calvin undertook in Geneva and see what efficient functions Christianity can afford to reveal its value in urban settings today. Calvin's Reformation provided a clear place and role for the Church in the public domain. In addition, Calvin's process of religious reform has always been followed by interest and welfare practices for the socially disadvantaged, such as the poor and women. In this understanding, the study presented the following applications that modern churches can practice in urban settings today: First, the church should be able to clearly understand the diversity, liquidity, and dynamics of the urban environment and make changes through various situational applications supported by the Bible. Second, the church's missional approach should shift from a believing-belonging process to a sense of belonging-believing. Third, the transition from a familiar traditional church to a new social reality is necessary, and efforts are needed to clearly understand the interests and atmosphere of community communities and keep pace with them. And finally, modern churches need to maintain new ecological sensitivity than ever before.

키워드

I. 서론

지금까지 종교개혁과 관련하여 진행된 연구는 교회 역사에서 다루어진 그 어떤 주제들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종교개혁은 서양문화의 중세에서 근세에로의 전환점이 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교회 안에서 새로운 분리를 가져온 신학적 혁명이기도 했다[1]. 따라서 종교개혁은 그것이 발발했던 시대의 교회적 맥락에서 성만찬이나 예배와 예전, 교회론, 국가와의 관계 등과 관련한 공시적인 연구들은 물론이고, 종교개혁 이후에 유럽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퍼진 개신교가 각 시대와 나라마다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보는 통시적 연구들에 대한 다양한 모델들을 제공해 왔다. 그런데도 종교개혁에 관한 연구는 주로 신학적 관점에서 다루어져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어느 특정한 시대적 상황에서 발생한 사건에 대한 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단순히 그것과 연관된 개인이 독립적 혹은 개별적으로 영향을 주거나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주변의 인물들이나 그것에 대한 후대의 인식과 평가, 그리고 그 이외의 다양한 사회적 상황들을 고려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또한, 종교는 문화의 실체이며 문화는 종교의 형식이기에 종교개혁의 과정에서 그것이 단순히 교회적 범주를 넘어 사회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를 살펴보도록 하는 매우 중요한 명분을 제공하고 있다[2].

16세기의 유럽은 국가적 경계를 통한 민족적 정체성보다는 언어와 문화, 혹은 계층 등 무형의 동질적 특성으로 형성된 공동체적 정체성이 더 큰 의미를 주었기 때문에 마을 공동체나 지역 공동체가 사람들의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더 큰 역할을 감당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교회의 개혁과 갱신의 요구와 필요성이 등장하게 되었다. 사실 종교개혁의 가장 큰 원인으로 교회의 부패와 부도덕, 타락 등 교회 내부의 문제로 돌려지고 있지만, 사회, 정치, 경제 등 도시 공동체 배경에서의 사회 전반에 걸친 다면적 원인이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3]. 루터와 칼빈 등을 포함한 당시의 개혁자들은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교회의 각성을 촉구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모든 사역을 포함한 교회의 역할과 신학에 영향을 미치는 교회의 부적절함과 부패를 지적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따라서 16세기의 개신교 개혁은 교회와 사회 모두를 개혁하고 변화시키려는 시도였다고 보는 것이 옳다. 그리고 이런 의미에서 그것은 분명히 혁명적인 효과를 가져야 했다. 알리스터맥그래스(Alister E. McGrath)는 당시의 종교개혁이 교회와 사회의 도덕과 구조개혁, 정치 문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 경제사상의 변화, 기독교 영성의 회복, 그리고 기독교 교리의 개혁 등 인간 활동의 전반적인 영역을 수용했음을 밝히고 있다[4].

종교개혁의 과정에서 나타난 많은 특징 중 하나는 그것이 도시적 배경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이다. 독일에서 루터의 도시라는 별명이 붙여진 비텐베르크를 비롯하여 당시 황제 직속의 자치도시에 속했던 제국 자유도시의 대부분이 종교개혁에 긍정적이었고, 스위스에서는 취리히를 포함하여 베른과 바젤, 프랑스에서는 파리, 리옹, 오를레앙, 루앙 등의 도시를 기반으로 개신교가 도시 운동을 전개할 수 있었다. 맥그래스는 유럽의 도시들이 종교개혁에 긍정적이었던 이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다양한 가능성을 제시한다[3]. 첫째, 당시 이러한 도시들에서는 시의회에 대한 민중들의 종교, 사회, 경제, 정치 등 다양한 방면에서의 불만들이 존재하고 있었는데, 그 상황에서 시의회가 종교개혁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는 것이다. 둘째, 여전히 가톨릭의 영향이 미치고 있었던 중세시기에 종교개혁을 받아들이는 것은 해당 도시나 지역에 불이익이 될 수도 있었던 상황에서, 마침 이러한 도시들은 종교개혁의 활동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악영향을 받지 않아도 될 만한 상황들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셋째로, 도시에서 종교개혁을 관장하는 주체는 시의회였으므로 효율적 개혁을 위해서는 종교개혁가와 시의회가 서로 공생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도시로서는 가톨릭의 위협과 급진적 재세레파 운동 등으로부터 종교개혁가의 활동이 필요했고, 종교개혁가들 역시 실권은 항상 시의회가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이해관계가 적절하게 조율될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이해로부터 얻을 수 있는 중요한 사실은 도시공동체적 관점에서 당시의 종교개혁은 민중의 필요를 충족시키고 그들의 불만을 해소하여 공동체의 안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의 교회가 지역사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지역사회와 공적인 담론을 공유하고 소통과 대화를 통해 공동체의 유익을 증진함으로 사적인 영역에만 머물러 있었던 기독교가 공적인 광장에서도 교회론적 신학을 실천해야 하는 필요성을 부각한다. 따라서 본연구는 존 칼빈(John Calvin)을 중심으로 그의 종교개혁 활동이 어떻게 사회의 전반적인 분야에 영향을 주었는지를 살피면서 오늘날의 현대교회가 공공 영역인 도시적 맥락에서 적용 가능한 실천적 관점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칼빈에 대한 연구는 시대마다 있었지만, 20세기에 들어서 칼빈의 연구는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와 칼 바르트(Karl Barth)를 통해서 다시 재조명되어 활기를 띠게 되었다[5]. 당시 범신론과 진화론을 바탕으로 한 소위 자유주의 신학에 반하여 기독교의 근본적인 이해를 강조하는 신-칼빈주의 (Neo-Calvinism)가 일어나게 되었는데 이후로 ‘신학자’로서의 칼빈이 매우 강하게 주목받았다[6]. 유영준과 이재윤은 지난 45년 동안 칼빈 신학교 학술지에서 발표된 512편의 논문들을 주제별로 분석하였다. 그들은 45년을 크게 세 시기로 구분하여 분석한 결과, 칼빈주의 개혁신학과 구약성경이 주된 주제로 연구된 것을 확인하였다. 물론 이 연구가 칼빈만을 국한해서 진행된 것은 아니었지만, 실제로 이들 연구에서 칼빈의 빈도가 가장 높았음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7]. 2016년 이후로 칼빈과 관련된 연구는 여전히 종말론이나 교회론 등 조직신학적인 내용이 주를 이루면서도 보다 실천적인 영역에서 그의 신학이 어떻게 공적인 영역에서 연결되는지에 대한 연구가 눈에 띄었다[8]. 특별히 김민석은 칼빈을 공공신학자의 모델로서 제시하고 있다[9]. 또한, 칼빈의 종교개혁 실천의 배경이 되었던 제네바 혹은 그것과 연관된 98편의 논문들 가운데, 사회 복지적 차원에서 제네바 교회의 개혁에 관한 연구나 제네바 신앙고백 등이 주를 이루었지만, 도시 선교적 차원에서 진행된 연구는 하성만의 연구가 유일했다[10]. 그러나 그의 연구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사회정의를 실천하는 선교를 주장하면서도 집단의식의 개선이나 정치 참여, 학제 간 교류와 융합 등을 실제적 대안으로 제시하는데 그것들은 직접적인 도시선교와의 연관성이 결여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본 연구는 현대기독교의 도시에 대한 이해와 아울러, 도시 문화적 배경에서 기독교가 사회적 책임 윤리를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지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이전의 연구와 차별성이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칼빈은 프랑스의 법률 가문 출신으로 도시인이었으며 그 자신이 제네바의 지도자이기도 했다. 칼빈은 그가 비록 소도시의 지도자였지만, 충분히 국제적인 안목과 에큐메니컬 이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3]. 그런 의미에서 칼빈의 종교개혁은 그 과정에서 단순히 교회 안의 개혁에만 관심을 가졌던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사회적으로도 바른 영향을 끼쳐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과 더불어 적극적 실천이 뒤따랐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11]. 물론 다른 종교개혁자들에게서도 그러한 특징이 나타나고 있지만, 여기서는 종교개혁의 대표적 인물 중의 하나인 칼빈에 국한하여 살펴볼 것이다 [12]. 또한, 종교개혁 시기의 종교적 상황을 포함하여 사회정치적 상황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선행 연구들에서 다루어졌기 때문에 본 연구에서는 주어진 주제에만 집중하기로 한다. 기본적으로 본 연구는 질적 연구로서, 다음 질문들의 대답을 찾아가는 방식이 될 것이다. 칼빈이 도시 문화적 배경에서 종교개혁을 이끌 수 있었던 신학적 이해는 어떠한 것이었는가? 칼빈의 종교개혁 과정에서 나타난 도시 문화적 연관성과 그것에 관한 관심은 어떻게 나타났는가? 칼빈의 종교 개혁적 가치로부터 도시 문화적 상황에서의 현대 기독교가 실천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II. 존 칼빈의 도시 문화적 배경에서의 종교개혁

1. 칼빈의 신학

칼빈 신학의 모든 사상은 하나님의 절대주권 개념으로부터 시작되고 이것은 칼빈의 모든 사유과정의 실제적인 원리가 되고 있다[13]. 칼빈은 이러한 사상적 이해로부터 일반은총과 특별은총을 따로 분리하지 않았는데 일반은총에 관한 입장은 루터의 그것보다 훨씬 더 포괄적이고 적극적이라고 할 수 있다[14]. 칼빈은 자유의지에 대한 자신의 신학적 이해를 설명하면서, 이 자유 의지는 정치와 사회, 경제뿐만 아니라 예술의 영역까지도 포함하는 인간의 모든 영역에서 사용할 수 있음을 주장한다. 그러면서 그는 예술뿐만 아니라 과학 역시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주장한다[15]. 하나님의 일반은총은 인간의 타락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으며[15],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여부와 상관없이 모두에게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보편적 이성과 지성을 통해 그 은총을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15]. 따라서 칼빈의 신학은 인간의 삶이 교회 안에서만 자신의 신앙을 드러내는 삶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의 일상의 삶을 통해서도 그 신앙이 구체적으로 실천되고 하나님의 은총을 드러내는 삶이 되어야 함을 의미했다[16].

칼빈은 세상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책임을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그의 이 특별한 견해는 그가 제네바에서 많은 사회적 변혁을 가져오도록 이끌었다. 그것은 언약 신학의 요점을 강조하고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과 언약을 맺으신다는 사실과 모든 인간은 인류 전체가 연결되어 있어서 서로의 일부가 됨을 강조했다. 칼 빈은 사회에 대한 전통적인 유기적 은유를 사용했는데(행 2:42), 그는 어떤 구성원도 자신만을 위한 힘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 힘은 자신의 사적인 용도가 아니라 공통의 이익을 위해 동료 구성원들에게 사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15]. 때때로 그는 공동체를 인류 전체와 동일시하기도 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서로가 사랑을 느끼게 하는 하나의 신성한 사슬로 묶여 있다고 강조했다[15].

결과적으로 칼빈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였으며, 상업 및 경제 정의 문제에도 관심을 가졌다. 그의 신학은 노동자와 고용주가 종종 경제 문제로 대립하는 삶의 현실과 분리되어 있지 않았다. 칼 빈은 인간의 본성과 모든 제도의 죄로 인해 인간의 노력은 어느 정도는 자기 이익, 자부심, 탐욕에 의해 동기가 부여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신학은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복음을 적용한다는 점에서 분명 세상에 긍정하는 신학이다. 그에게 있어서 그것은 인류를 괴롭히는 문제들, 특히 제네바 시민들을 괴롭히는 문제들에 대해 성경의 인도를 구하는 것을 의미했다. 따라서 신학자이자 목회자였던 칼빈은 장례식과 관련한 높은 비용, 병원, 법률, 비즈니스 및 산업 규제, 임금 문제와 같은 다양한 일상적인 문제들에도 관여했다. 칼빈과기욤 파렐(Guillaume Farel)은 남녀 모두를 위한 최초의 무료 공교육을 실시했다. 칼빈이 시작한 교육과정은 크게 둘로 나뉘는데, 하나는 스콜라 프리바타(schola privata)로 제네바의 청소년들을 위한 공교육 과정이었고, 다른 하나는 스콜라 푸블리카(schola publica) 로목회자를 양성하는 신학부였다[17]. 칼빈의 이러한 교육정책은 문화와 정치 분야에서 발전적 진보를 이끌었던 매우 중요한 역사적 요인이 되었다[18]. 실제로 종교개혁의 과정에서 칼빈만큼 교육 분야의 유산을 남긴 개혁자는 아무도 없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칼빈의 관심은 다양한 복지제도로 이어졌다. 특별히 칼빈은 세상을 향한 교회의 진정성 표현은 교회의 집사들을 통한 봉사와 활동을 통해 가장 잘 드러날 수 있다고 믿었는데 이것은 민간 자선 활동의 전형적 형태로 발전되었다. 또한, 칼빈은 난민들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구제기금의 마련과 시행을 통해 사회복지의 바탕을 이루었다 [19]. 구제기금의 대상은 고아, 노인, 무능력자들뿐만 아니라, 환자들과 성매매 관련자들까지도 포함했다. 이모든 과정에서 집사들의 참여가 항상 수반되었는데 그들은 임시보조금을 나누어 주는 것 외에도 직업훈련까지도 제공하였다. 집사들은 말기 환자들에 대한 봉사, 남겨진 자녀들, 과부 등을 위한 사역에도 참여하였다. 그의 이러한 자선사업에는 소명, 인간의 전적인 무능력, 사회적 안전망으로서의 교회의 역할과 같은 분명한 신학적 가치가 존재했으며, 그의 자선사업 그 자체만으로도 그가 신학적으로 유럽 전역의 교회에 끼친 영향만큼 큰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20].

칼빈은 또한, 이러한 복지 제도와 교육을 넘어 계단과 난간에서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난간의 설치를 제안하기도 했다. 굴뚝이 규제되었고 마을을 청소하고 거리를 수리하기 위한 노력이 이루어졌다. 생필품 가격의 규제는 제네바 초기 종교개혁의 원칙으로 받아들여졌다. 오늘날 일부 사람들은 칼빈의 입장에 동의하지 않거나 찬성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칼빈은 어떤 지역도 기독교의 정당한 관심사가 되기에는 너무 세속적인 것으로 간주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칼빈은 일반적으로 세상과의 관계를 옹호하면서 중세와는 달리 그의 개혁은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한 걸음 더 나아갔다 [21].

2. 칼빈의 종교개혁과 도시 문화 이해

맥그래스는 칼빈의 이야기는 곧 제네바의 이야기라고 강조하면서 그의 종교 개혁적 활동이 제네바라는 도시와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3]. 그는 칼빈의 제네바에서의 경험을 매우 강조하는데, 이는 이 제네바 경험이 칼빈의 특정 사상을 발전시키도록 했고 또 어떤 사상에 대해서는 그것을 수정하게도 했으며, 칼빈의 어떤 사상은 제네바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발전했다고 믿기 때문이다[3]. 칼빈은 기독교의 신학은 단순히 초월적이고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현실과 직접 연결되어 있음을 주장했다. 따라서 그에게 정치와 사회, 경제, 문화 등은 기독교 신학을 통해 구체적으로 실천되어야 할 마당이었다. 또한,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에 대한 그의 신학적 이해는 도시 제네바를 통해하나님의 도성을 규정하는 하나의 틀과 모델이 되도록 했다[22]. 그래서 그는 사도행전 6장 1-6절에 근거하여교회적 직분 중의 하나였던 집사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그것을 가난한 자들을 살펴야 하는 사도의 책임과 연결했다[3]. 그런데 이것은 분명 성경적 이해에서 출발한 것이었지만 그것을 적용하여 실행하는 분야는 다분히 도시적 환경의 공적인 영역이었다[3]. 그는 이전부터 사회복지 사업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었던 제네바 종합병원에 집사를 책임자로 두어 사회복지와 구호를 담당하게 함으로 비종교적 기관에 종교적 역할이 실천될 수 있도록 하기도 했다[3].

칼빈의 신학은 루터보다 세상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책임을 더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그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진정으로 기독교적 정체성이 공동체 안에서 바르게 구현되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가 자신의 종교적 관점과 사회의 변혁을 어떻게 연관시켰는지는 주목할 만하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은 세상의 영적, 도덕적 위기로부터 구원하기 위한 것이라고 믿었다. 세상을 바르게 세우는 것은 그가 신으로부터 가장 강하게 부름을 받은 소명으로 인식했다. 그는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통해서 세상을 질서 있게 만들기를 원하신다고 믿었다[23]. 이것이 바로 그가 도시 제네바에서 시도한 것이었다.

칼빈이 자신의 시대의 문제를 다루는 다양한 프로그램은 하나님을 우주의 통치자라는 개념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23].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린다는 개념은 그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칼빈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출현은 온 세상에 대한 그의 통치와 소유권을 의미했다[24]. 이것은 종교개혁이 세속적 영역의 개혁도 포함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칼빈은 그리스도인들이 사회 속에서 일상의 삶을 통하여 의를 실천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칼빈의 신학적 사고는 일상생활의 구조와 현실에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칼빈에게 있어서 이 세상은 매우 중요한 것이었는데, 그에게 있어서 현실 세계는 성직자들뿐만 아니라, 농부, 학자, 기사, 구두장이, 인쇄공, 시계공도 포함되어 있었다[25]. 그러므로 칼빈은 현재의 삶에서 경험하는 인간의 축복은 하늘의 것과 혼합된 것이었고 그리스도인은 그것을 더욱 풍성하게 할 책임이 있다고 이해했다[26].

칼빈은 또한 그리스도인들을 이 세상과 하나님의 왕국 사이, 즉 성인(聖人)들이 성취할 최종적인 완전과 축복의 중간에서 사는 사람들로 이해했다[15]. 따라서 그는 경건한 사람들과 세속적인 사람들을 분리하고 구분하는 것은 현재의 세계와 그 너머의 세계에 대한 반대되는 태도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관점을 염두에 두고칼빈은 당대의 사회를 변화시키려고 시도했다. 그것은 이 땅의 모든 사람이 정의와 의와 평화를 가지고 살 수 있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었다. 칼 빈의 설교에는 그가 교단과 국가의 정책적 차원에서 제네바를 개혁하려 했다는 사실이 종종 드러난다. 중세 사회는 대체로 평범한 사람들이 참여할 수 없는 사회였지만, 칼빈주의(Calvinism)는 이전의 그런 수동적인 남성들에게 정치 활동의 스타일과 방법을 가르쳤고, 그들이 현대 국가의 다양한 정치 제도와 활동에 참여할 권리를 주장할 수 있도록 했다[25]. 이것은 이 칼빈주의에 나타난 사회에 대한 책임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전체 공동체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것을 명백히 한다.

칼빈은 도시 제네바의 빈민들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 있었다[15]. 그는 하나님께서 이 빈민들을 그리스도인들에게 의도적으로 허락하셨으며, 이들에 대한 기독교공동체의 자세와 관심은 그 공동체의 신앙의 지표 역할을 한다고 믿었다[25]. 이런 이유로 칼빈은 형제의 불행을 자신의 고통으로 느끼지 않는 외견상 진보적인 사람들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27]. 칼빈은 부를 반대하지 않았으며 그 부를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 전체 공동체의 구호를 위해 사용하는 데에 관심이 있었다. 실제로 칼빈의 사회 경제적 사고에서 중심 주제는 공동체 안에서의 도움이 필요한 형제들을 돕도록 위해 하나님께서 그 부를 허락하신 것이라는 것이었다[25].

칼빈의 관점에서 돈과 재화는 인간사회에서 모든 사람의 복지를 위해 순환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는 교회가 평등을 증진하고 인간의 연대를 회복하기 위해 가르치고 행동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빈곤층의 빈곤을 높이기 위해 물질적 우위를 악용한 부자와 권력자들을 비난했다. 빈민에 대한 칼빈의 관심은 특히 도시 제네바에서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시도로 이어졌다. 그는 상업 및 경제 정의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그의 신학은 노동자와 고용주가 경제 문제로 자주 대립하는 삶의 현실과 분리되어 있지 않았다. 종교개혁자들은 일반적으로 세상과의 관계를 옹호했다. 여러 면에서 그들의 신학은 공동체 발전을 장려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당시 정부의 사회 및 경제 정책에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그것들에 직접 관여하기도 했다[28].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다가올 세상”의 그림을 염두에 두면서도 이 세상의 문제들에 큰 관심을 가졌다.

지금까지 도시 문화적 배경에서 나타난 칼빈의 종교 개혁적 특징들을 살펴보았는데, 그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교회와 국가에 대한 이원론적 이해의 탈피는 공공의 영역에서 교회의 분명한 자리와 역할을 마련해 주었다. 칼빈은 특히 교회와 국가를 한 몸의 두 지체로 인식하면서 두 지체의 역할의 차이점을 인정했다. 그는 국가 또는 세상 정부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가진 기능과 역할에 대해서는 긍정하는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칼빈은 세상 정부가 공공 형태의 종교가 존재할 수 있도록 할 뿐만 아니라, 개개인을 인간사회에 적응시키고, 시민 정의에 대한 방식을 형성하며, 구성원들을 서로 화해시켜서 공동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15]. 또한, 물리적인 힘을 사용하는 것은 정치의 참된 의도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없애고 정의를 통해 자유를 성취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29].

둘째, 공적 영역에서 교회 공동체를 통한 영향과 변화를 추구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정치신학자 로널드 월래스(Ronald S. Wallace)는 칼빈을 사회 개혁가 (social reformer)이면서 그리스도인(churchman), 그리고 동시에 목회자(pastor)이며 신학자(theologian) 로 그의 삶을 묘사했는데 이것은 그의 그러한 삶의 자세를 적절하게 묘사한 것이었다[14]. 그러나 종교개혁자들이 세상의 것과 하늘의 것에 대하여 선과 악의 개념으로 이해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 둘을 같은 위치에 놓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반대로 세속적이고 자연적인 영역이 그리스도인의 영역과 다른 수준에 있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에게서 더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칼빈의 견해로는 세속적 영역 안에 있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삶과 사역이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멀리 떨어져 있거나 책임감이 적은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구속함을 통해 구원과 하늘을 인간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은 또한 창조와 이 땅의 시여자이기 때문에 그분의 놀라운 은혜와 능력, 선하심은 구속을 기다리는 자연계에도 똑같이 나타나야 할 것이었다. 그래서 칼빈은 제네바에 있는 동안에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인 공동체 안에서 나타날 것으로 기대되는 상호의존, 협력, 긴밀한 상호작용의 패턴이 시민 사회와 그 구성원들 사이에서도 최대한 반영하기를 원했다. 그에게 있어서 지상의 시민권은 천국 시민권을 본받아야 했다. 그러므로 도시의 전체 사회조직은 매우 다양한 구성원을 가진 유기체로서, 각 구성원은 각자의 충실한 기능에 따라 자신의 역할에서 중요성을 발견하고, 그에 따른 서비스를 제공하며, 전체의 건강과 풍요로움을 발견하게 되었다. 따라서 제네바에서의 그의 첫 번째 관심사는 도시의 중심부에 상호 관용, 사랑, 용서의 방법이 시민 사회의 나머지 부분에 패턴을 제공하는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의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었다[14]. 동시에 교회는 교회 안의 어떤 중요한 문제들에 있어서 말씀을 전파하고 집회에서 결의문을 통과시킬 뿐만 아니라, 교회가 그 모든 것들이 살아 있는 삶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국가에 입증할 수 있어야 했다.

셋째, 바른 성경적 세계관은 인권에 대한 밝은 빛을 던져주고 있는데, 종교개혁의 과정에서는 항상 빈민이나 여성 등과 같은 당시의 사회적 약자들에 관한 관심과 복지적 실천이 뒤따랐다. 종교개혁자들은 종종 사회 내의 개인들, 특별히 소외계층과 빈곤층의 상태와 필요에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이곤 했다. 그들은 때때로 설교단에서 사회적 필요의 주변에서만 머무는 그리스도인들의 태도에 대해서 그들의 양심을 자극하곤 했다. 종교개혁자들은 자신들이 공적인 공동체 안에서 공적인 영역에 있을 때조차도 가능한 사람들을 도우려고 노력했는데, 이는 자신들을 하나님의 사랑의 위엄으로 살아가도록 하나님의 개인적인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로 인식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심지어 부엌에서 일하는 주부라 할지라도 자신이 그 순간에 하나님을 섬기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고 가르쳤다[30]. 이것은 그가 누구라 할지라도 한 개인이 단순히 그 개인만으로도 무한한 가치와 숭고한 역할을 지니고 있음을 확인한 것이었다[14].

그러므로 칼빈은 제네바라는 도시적 배경에서, 지역사회는 각각의 개인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각 개인이 자신들의 가치에 대한 감각을 갖도록 돕기 위해 잘 조직되고 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제네바의 장로들이 수행했던 목회적 활동에서 어느 사람도 소외시키지 않기 위해 교구의 관리가 가능한 지역의 감독을 받아 지구와 장로로 나누어 그들로 효율적 사역이 이루어지도록 했다. 이것은 교회 구조에 대한 칼빈의 생각이 어떻게 이상적인 사회 구조의 모델을 제공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도시로서의 제네바는 전체 공동체가 완전히 밀접하게 결속되도록 보장할 수 없으므로, 효율적이고 실질적으로 중앙의 공동체와 즉시 접촉할 수 있도록 각각의 더 작은 공동체들이 이웃의 누군가와는 가능한 한 밀접한 관계가 주어지도록 했다. 아마도 칼빈은 자신의 시대에 도시 공동체의 규모가 커지게 될수록, 평범한 개인의 필요를 인식하기 어려운 비인간적인 관료주의 현실에 더 많이 노출될 것을 감지했던 것처럼 보인다. 시 당국은 그들의 정부의 업무가 말씀의 사역으로 행해진 목회적인 돌봄에 해당하는 각 개인의 복지를 위한 사회적 보살핌을 포함하는 것으로 생각하도록 장려했다.

IV. 현대의 도시적 배경에서 기독교적 책임 윤리의 실천을 위한 적용

필립 셀드레이크(Philip Sheldrake)는 도시를 본질적으로 낯선 사람들의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공공장소라고 정의했다[31]. 그렇다면 도시적 배경 안에서의 기독교는 타자에 대한 환대와 공동체성의 실천이 주된 방향성을 이룰 수 있어야 한다. 도시들을 실존으로 이끄는 것은 유사한 사람들의 조합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들의 조합이기 때문이다[32]. 기독교 안에서는 20 세 후기부터 가톨릭을 선두로 해서 도시의 실제적 의미와 그 안에서 기독교의 실천적 가능성을 모색해왔다. 교황 바오로 6세(Paul VI)는 사회적 불평등을 도시화와 연관시키면서 그리스도인의 바른 임무는 도시적 환경에서 새로운 형태의 이웃 됨을 창조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33]. 조엘 코트킨(Joel Kotkin)은 역사적으로 성공했던 도시들의 특징을 안전 제공, 상거래 유치, 신성한 공간 구축이라고 지적했는데, 후자의 경우 단순히 종교적 건물 개념을 넘어서서 인간 실존의 고무적 비전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34]. 최근 제4차산업혁명 시대의 출발과 더불어 좋은 도시(good city) 라는 표현이 일반화되고 있는데[35] 이것은 단순히 시설이나 편리성의 개념이 아니라, 공공선에 대한 헌신을 기반으로 낯선 사람들 사이의 연대적 습관을 개발시키는 것이 핵심이 되어야 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36]. 영국 성공회 역시 도시와 신앙에 관한 보고서에서, 좋은 도시는 인간의 열망을 생산적이고 포괄적으로 만들고 보다 구체적으로 사람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37].

이처럼 오늘날의 도시가 공동체성과 인간중심을 지향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대 기독교는 기독교적 전통이 안전하게 보호된 장소를 넘어서 공적 영역의 낯선 사람들에 대한 폭넓은 관심과 접근의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 이것은 이미 칼빈이 제네바라는 도시 문화적 상황에서 기독교적 책임 윤리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그 특징으로 보여주었음을 살펴보았다. 이제는 현대적 도시 환경에서 기독교가 적용할 수 있는 실천적 방안들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1. 기독교적 책임 윤리의 실천을 위한 다양한 혼합형 모델 구현

오늘날의 도시는 단순히 크기나 인구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 인종, 종교적 다양성을 특징으로 하는 도시 환경 자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31]. 그러므로 교회는 도시적 환경이 가지는 다양성과 유동성, 역동성을 분명히 이해하고 표준 모델만을 고수하는 교회에서 벗어나 메가 처치 또는 마이크로처치의 혼합형 모델을 다양하게 수용하면서 성경이 지지하는 다양한 상황적 적용을 통한 변화를 시도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표준 모델이란 건물로서의 교회 안에서 진행되는 설교와 음악, 예전 등의 예배 순서와 건축물과 같은 외형까지도 포함하는 대부분의 사람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교회의 모습을 의미한다. 이러한 표준 모델은 주로 기독교 왕국 (Christendom)의 열매로서 나타난 것이다. 그것은 수 세기에 걸쳐 서유럽에서 발전했고, 개신교 개혁으로 인해서 다소 재편성되었으며, 그 후 기독교 선교사나 다른 나라로 이주한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전 세계로 소개되었다. 이 표준 모델에는 두 가지 핵심적 사항이 있다. 첫째, 사실 이 모델은 기독교 왕국 시대의 종말과 함께 종말을 고했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에는 이러한 표준모델이 없다. 표준 모델은 기존의 여러 형태가 아닌 여러 가지 비전통적 형태로 대체되고 있다. 물론 지금도 표준 모델이 여러 가지 형태나 옵션 중 하나로 유지되고 있기는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것이 더는 표준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미국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복음주의 교회들의 성장과 더불어 표준 모델이 강력하게 강화되었다. 수십만 개의 교회가 세워졌는데, 모두 표준 건물 모델을 따르고 있다. 이것은 이제 막 은퇴에 접어든 세대인 베이비붐 세대 개신교도들(Baby Boomer Protestants)에게는 매우 정상적이었고 편안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난 20년 동안의 갈등과 논쟁, 긴장, 그리고 교회 이탈의 상당수는 표준 모델의 소멸을 이끌었다. 그리고 비워진 그 장소에 메가 처치-마이크로처치 혼합물 또는 연속체라고 부를 수 있는 여러 가지 비전통적인 형태의 교회로 대체되었는데, 그 사이에는 다양한 변화가 있었다[38].

표준 모델의 두 번째 특징은 표준 모델이 사실상 성서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거의 전적으로 축적된 전통의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신약성서의 그리스도인들은 예배일뿐만 아니라 다른 날에도 자주 만났다. 교회 건물은 없었다. 대부분의 집회는 작았으며 보통은 집에서 만났다. 그들이 훈육을 받기는 했지만, 정식으로 교육을 받지 않은 장로들에 의한 것이었으며, 일반적으로 교회의 전임자가 아니었고, 종종 단독 목회자가 아닌 팀으로서 리더십의 기능을 감당하며 때때로 여성이 포함되기도 했다. 공식적 안수 절차는 없었다. 그리스도인들은 대부분 집에서 만났기 때문에 표준적인 건축물이나 특정한 좌석 배치가 없었다. 성경 읽기와 가르치기, 식사 공유 등은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실천이었다. 대부분의 예배는 서로 가르치고 훈계하며 시와 찬양, 영적인 노래를 통해서 하나님을 즐겁게 하는 것으로 이루어졌다(골 3:16). 그리스도인들이 예배를 위해 모였을 때, 한 사람 또는 다른 사람이 찬송하고 교훈을 제시하며, 계시나 방언을 말하고 그것에 대한 통역하는 역할을 감당했다(고전 14:26). 그리고 이 교회들의 대부분은 도시 교회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오늘날의 교회들이 신약성서의 초기교회 모델을 가감 없이 완전히 모방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단지 성경적으로 말하자면 교회에 대한 표준적인 모델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서의 원칙에는 참여적 예배, 공동체, 영적 선물, 건강하고 효과적인 그리스도인 경험, 제자도 및 사명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믿은 자들의 제사장직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제 오늘날의 교회들은 표준 모델이나 어떤 종류의 새로운 모델을 무작정 추구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그들은 교회의 크기가 이 시대의 새로운 표준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이 새로운 기준은 수천 명의 대규모 교회도 아니고 단지 몇 개의 가정 교회도 아니다. 그렇다고 그것은 그 사이에 있는 어떤 것도 아니다. 표준 모델은 없다. 이것은 교회가, 아마도 그들의 특정한 전통의 제약 안에서 그들 자신의 맥락에서 복음을 가장 충실하게 장식하는 교회의 형태를 발견하는 데 자유롭다는 것을 의미한다.

2. 공동체 경험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패러다임의 변화

교회의 선교적 접근은 믿음-소속감 프로세스에서 소속감-믿음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칼빈이 지역사회 공동체에서 그리스도인의 선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삶을 실천함으로 교회 밖에서부터 이미 사람들로부터 신뢰와 편안함을 얻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그동안 표준 모델 교회에서 사람들은 불신자들이 먼저 그리스도를 믿은 후에 교회 안으로 들어올 것이라고 가정했다. 더 일반적으로, 기독교 왕국은 교회가 기독교 메시지를 믿지만 모호하게 또는 명목상으로 믿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가정했다. 이러한 가정에서, 복음 전도는 자연스럽게 그리스도를 위한 결정을 얻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목표는 개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고 결과적으로 교회의 구성원이 되게 하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두 가지 기본적인 생각이 있는데, 그것은 사람들이 개인적인 결정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고, 그 믿음은 그들이 교회로 편입되기 이전에 이미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을 믿음-소속감 (believing-to-belonging)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믿음이 먼저이고 그다음에 교회의 구성원으로서 소속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수 세기 동안 많은 개신교 교회들 사이에서 크게 의문의 여지가 없었던 이러한 가정은 다른 접근법, 즉 선소속감, 후믿음(belonging-to-believing) 모델에 그 자리를 내주는 추세로 변화하고 있다. 현재의 많은 사람에게 있어서 공동체는 믿음보다 우선하며 그 공동체 경험 속에서 믿음을 발전시킨다. 사람들은 그리스도와의 개인적인 관계만이 아니라 다른 신자들과의 개인적인 관계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고 더 깊이 있는 제자 관계를 계속하게 되는 것이다[39]. 사실 이것이 훨씬 더 논리적이다. 공동체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그 공동체의 신념과 믿음을 채택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사회학의 기본적인 이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은 우선 예수 그리스도의 필요성에 대해 확신해야 하고, 그 믿음을 통해 교회에 참여한다는 생각은 실제로 사람들이 자연스럽고 정상적으로 행동하는 방식과는 반대되는 것이다. 선믿음 후소속감 모델은 복음이 본질적으로 사람들이 믿도록 설득해야 하는 합리적인 전제들의 집합이라고 가정한다. 믿음의 과정과 경험을 통해서 그들은 교회에 합류하는 논리적인 다음 단계를 밟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대다수 사람에게 이것은 실제로 작동하는 방식이 아니다.

도시적 환경에서 공적인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개인적 자아가 여전히 중요하고 보호가 있어야 하는 공간을 다른 사람들과 우발적으로 공유하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공적인 삶에는 다르고 익숙하지 않으며 심지어는 두려운 대상에게도 어떻게 경탄의 마음과 환대를 실천할 수 있을지를 배우는 것을 의미한다[31]. 그러므로 이것은 타자의 관계를 통해서 실제로 공동체적 삶을 세워나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사회적 상호작용과 적극적 시민 활동은 모두 영적 실천의 형태로도 이해될 수 있다. 이것은 현대 기독교가 도시적 배경에서 실천할 수 있는 실제적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그리스도인들은 기독교 신앙과 신념에 확고해야 하지만, 그들의 첫 번째 임무는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주장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공동체로 환영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확고한 그리스도인 신자들과 제자들의 공동체에 기쁨과 사랑으로 참여하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들의 믿음을 나누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도시적 환경에서의 기독교적 가치를 효율적으로 드러내기 위해서는 교회가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기독교적 변혁의 인큐베이터가 되는 환영의 공동체를 개발하고 증가시키는 한편, 성경적이고 교리적 내용을 포함한 확고한 기독교적 형성을 소홀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다.

3. 공적인 영역에서의 다양한 현실에 대한 민감성 유지

친숙한 전통적 교회에서 새로운 사회적 현실로서의 교회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모든 동향의 밑바탕에는 항상 전통의 문제가 존재한다. 모든 공동체나 문화와 마찬가지로 교회도 교회만의 전통을 형성하고 있다. 전통은 문화적 맥락의 표현이기도 하다. 전통이 교회 공동체를 편안하게 해 주고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며 다양한 선교적 사업에 참여하게 하지만, 그것이 문화적 맥락에 따라 달라서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에게는 이질감을 느끼게도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의 전통은 선교적 수단이 되기보다는 선교의 장벽이 되기가 더 쉬우므로 그것에 대한 지속적이고도 지혜로운 식별이 필요하다.

전통이 안정적이고 획일적인 경향을 보이는 것에 비해, 오늘날의 도시 사회는 점점 더 역동적이고 다양해지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분명히 전통적 교회와 도시사회 사이에서 다양한 소통의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그러나 그에 대한 해답은 전통을 버리거나, 조기에 새로운 형태의 전통을 창조해 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접근방식은 귀납적일 필요가 있는데, 기독교 공동체 내부와 그 너머, 특별히 기독교 사회와 도시 사회 사이의 경계 지역에서 구현 가능한 신적인 개입에 민감할 필요가 있다. 예수를 따르는 진정한 공동체는 문화적 맥락에 상관없이 항상 새로워야 한다. 따라서 도시적 환경에서의 더욱 활기 있고 충성된 기독교적 가치는 익숙한 형식과 전통을 고수하거나 무조건 짓밟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 공동체의 창조적인 새로운 사회적 현실에서 삶과 역동성을 발견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교회는 그저 분리된 유토피아적 세계가 아니며 특히 공동체에 대한 세계관, 인간의 도시에 그 소명을 적극적으로 일깨우는 세계관을 제공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마르크 오제(Marc Augé) 는 도시가 인간적 활동과 환대의 장소이어야 함을 강조하면서 역사적으로 도시 중심지는 항상 장소의 중요성을 표지해 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도시 중심지에는 상당히 많은 카페와 호텔, 사업체 등이 밀집되어 있으며 시내를 가로지르는 도로가 그곳을 통과하는 것에 주목하면서 진정한 중심지는 만남과 생활을 위한 장소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40]. 도시 환경에서 기능적, 윤리적, 영적 질문들을 분리해 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상호존중, 돌봄, 친밀한 이웃 관계와 같은 도시적 가치들과 영적, 도덕적 담론을 함양하는 공동체가 치를 일구기 위한 기반을 함께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41]. 따라서 도시가 정말로 단순히 효율적인 것 이상이려면 그것은 어떤 영적인 특징도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실제로 역사 속에서 서구의 큰 교회들은 도시 생태학의 안내자로서 도시 안의 인간성이 지속해서 강화되고 상승하는 장소가 되도록 이바지했다[31]. 그것들은 종교적 예배의 장소였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 네트워크의 장소이면서 동시에 공동체를 정의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오늘날 도시에서 신성성을 드러내는 종교적 장소는 어떤 면에서 접근이 쉽고 환대를 실천하며 영적으로는 더욱 포괄적인 공적인 공간임을 인식시킬 수 있어야 한다. 교회는 예전 이상의 무엇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현대 도시 안에서 사회적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포함하여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교회 공동체 안에서 자신들의 필요를 채우고 환대를 경험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교회는 지역사회 공동체가 가지는 관심사와 분위기에 대해 분명히 이해하고 그것에 보조를 맞추는 노력도 필요하다. 교회가 지역사회를 바라보는 민감한 시각과 감각을 가지는 것은 그 지역사회 공동체로부터 긍정적 시각을 가지게 할 뿐만 아니라, 공공의 영역에서 지역사회와의 협업을 위한 매우 중요한 시발점이 될 수 있다. 가장 비근한 예로는 전 세계적인 공포의 대상이 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를 들 수 있다. 그동안 일부 종교적 교단이나 교회가 수퍼감염지로밝혀졌던 상황들은 지역사회 공동체에서 기독교에 대한 거부적인 반응을 보이게 하고 향후 교회의 선교적 노력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도록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건물로서의 교회 건물 안에서 밀집 예배를 고집하는 일부 교회들로 인해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교회가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책임에서 이해되어야 할 문제이다. 이것은 교회가 도시적 환경에서의 경제, 교육, 그리고 사회생활의 전반적인 부분에 이르기까지 그 폭을 더욱 넓혀서 지역사회의 관심을 읽어내는 능력을 개발할 필요가 있음을 나타낸다.

4. 환경 윤리에 관한 관심과 실천

현대교회는 이전보다도 더욱 새로운 생태학적 민감성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폴 생트마이어(Paul Santmire)는 The Travail of Nature에서 기독교 사상의 한 흐름으로서 생태학적 구조를 언급한다[42]. 이 흐름은 인간이 자연에 뿌리박혀 있음을 강조하고 생태 세계에 하나님이 임재해 계심을 경축하는데, 그는 이러한 흐름이 이레네우스와 어거스틴, 루터와 칼빈에 이어졌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루터는 하나님은 단지 성경에만 복음을 기록하시지 않으시고 무한한 나무와 꽃과 구름과 별 위에도 복음을 기록하셨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모든 창조세계는 가장 아름다운 성경이며, 그 안에서 하나님은 당신 자신을 묘사하셨고 그리셨다고 했다. 이러한 이해에서 그는 창조의 계속성 개념을 통해서 평화와 시민적 질서를 책임과 역할을 부여받은 인간은 생명과 생태의 유지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칼빈 또한 기독교 강요를 포함한 그의 설교에서 눈을 열고 창조세계에 있는 하나님의 장엄함을 발견하도록 권면했다. 이처럼 그들은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하나님의 현존 장으로 이해하며 거룩한 복음서로 대했다. 이러한 사실은 기독교 신학이란 생태학적 책임성에 강력한 토대를 약속해 주는 것이며 동시에 현대의 선교적 관점에서도 또 다른 통찰력을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지금도 이미 그러하지만, 앞으로는 더욱 전 세계의 도시선교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칠 세계적인 현실 중의 하나는 지구의 기후 변화 문제인데 교회는 이것에 대한더 깊은 관심이 필요하다. 기후 변화의 영향은 이미 인류가 경험하고 있는데, 어떤 방식으로든 세계의 모든 도시는 기후의 변화로 인해 피해를 보고 있다. 이는 지리적 위치에 따라 홍수, 독성오염, 해안침식, 가뭄, 전대미문의 화재, 환경 난민, 그리고 경제적 붕괴의 가능성을 의미한다[43]. 세계적인 기후 변화는 일시적인 유행이나 추세가 아니라 분명한 현실이고 사실이다. 따라서 교회의 거시적 추세는 생태학적 무지와 무관심에서 점점 커지는 생태학적 민감성으로의 전환되어야 한다. 토지를 무분별하게 개발함으로 이익을 얻으려는 일부 정부와 경제 부문의 저항에 계속 직면함에 따라, 점점 더 많은 전 세계의 사람들이 위험을 인식하고 환경 보호와 창조 관리를 지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여기서 이에 대한 한 가지 긍정적인 신호 중의 하나는 글로벌 콤팩트 도시 프로그램(the Global Compact Cities Programme)의 개발이다. 이것은 전 세계 주요 도시 간의 협력적인 노력으로, 기후 변화를 포함한 도시 내의 복잡한 도전들에 직면하여 지속 가능성, 탄력성, 다양성 및 적응력을 향상하기 위한 협력적 노력에 "모든 수준의 정부, 기업 및 시민 사회"의 참여를 포함하고 있다. 복음주의 개신교 안에서 국제적으로 생태학적 인식이 높아지는 두 가지 예는 로잔 창조 관리 네트워크(Lausanne Creation Care Network)와 기후 행동을 위한 젊은 복음주의자들(Young Evangelicals for Climate Action)이다. 또한, 기후 변화와 하나님의 창조물에 대한 청지기 정신에 관한 교황 프란치스코의 주목할 만한 회칙(encyclical)인 ⌜찬미받으소서: 우리 모두의 보금자리를 돌보는 일에 대하여⌟ (Laudato Sí: On Care of Our Common Home) 는전략적으로 중요하다. 여기에서 교황 프란치스코는 아시시의 프란시스(Francis of Assisi)를 떠올리며 “창조와의 건강한 관계는 총체적인 개인적 회심의 한 차원으로서, 우리의 잘못, 죄, 결함과 실패를 인정하고 진심 어린 회개와 변화의 욕구를 불러일으킨다”고 했다. 따라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회에 “생태학적 전환”을 요구한다[44].

오늘날의 도시 선교 사역에는 이러한 관심에 대한 참여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우선순위로서 작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인식의 문제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충성스러운 선교의 문제이다. 도시의 그리스도인들은 지구를 보호하고 보존하며 치유하기 위한 세계적 투쟁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충성된 도시선교는 이러한 우려와 관심을 공유하는 모든 세계 시민들과 결속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창조물에 대한 관리(Care of Creation), 에덴의 회복(Eden Reforestation) 등 이 분야에서 리더십을 제공하기 위해 수많은 기독교 선교단체를 키우고 계신다. 도시의 그리스도인들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일을 해야 한다. 그러한 사역을 지원하고, 자신이 속한 지역적·세계적 맥락에서 훌륭한 창조적 청지기가 되며, 이러한 창조물에 대한 관리를 제자훈련과 영성 형성, 교리교육 등에 통합시켜야 한다. 그렇게 될 때 교회는 또한 이 분야에 집중된 사역을 위해 젊은 기독교인들에게 부어지는 성령의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V. 결론

본 연구는 종교개혁 시대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던 칼빈의 종교개혁 과정에서 도시 제네바에서 실천했던 선교학적 관심을 살펴보면서 오늘날 도시적 환경에서 기독교의 효율적 참여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오늘날의 교회가 지역사회와 대중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 상황에서 교회의 교회다움과 정체성을 회복하고 지역사회와 공적인 영역에서 소통하는 교회가 되는 방안을 칼빈의 경험에서 찾고자 한 것이었다.

연구를 위해 제기했던 질문은 다음과 같다. 첫째, 칼빈이 도시적 배경에서 실천했던 종교개혁의 신학적 이해는 무엇이었는가? 둘째, 칼빈의 도시 문화적 환경에서의 종교개혁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났는가? 셋째, 칼빈의 실천적 기독교 책임 윤리 중에서 현대 기독교가 적용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에 관해 본 연구는 세상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을 매우 강하게 받아들였던 칼빈의 신학적 이해가 그의 책임 윤리 실천을 이끌었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도시 문화적 환경에서의 칼빈의 종교개혁은 시민 사회의 공적인 영역에서 교회의 분명한 역할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환대와 배려뿐만 아니라, 교육과 문화, 예술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실천으로 이어졌음도 살펴보았다[45].

또한, 본 연구는 종교개혁 시대의 칼빈을 통해 당시의 교회가 공공의 영역에서 참여하여 실천했던 사회 윤리적 노력을 확인함으로 오늘날 현대교회가 도시적 환경에서 실천할 수 있는 다음의 적용점들을 제시했다. 첫째로, 교회는 도시적 환경이 가지는 다양성과 유동성, 역동성을 분명히 이해하고 성경이 지지하는 다양한 상황적 적용을 통한 변화를 시도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교회의 선교적 접근은 믿음-소속감 프로세스에서 소속감-믿음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셋째, 친숙한 전통적 교회에서 새로운 사회적 현실로서의 교회로의 전환이 필요하며 지역사회 공동체가 가지는 관심사와 분위기에 대해 분명히 이해하고 그것에 보조를 맞추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대의 교회는 이전보다도 더욱 새로운 생태학적 민감성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본 연구가 도시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를 다루고 현대교회가 그 환경에서 어떻게 사회적 책임 윤리를 실천할 수 있을 것인지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이전의 연구와의 차이점을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측면에도 불구하고 본연구는 다른 종교개혁자들의 도시적 환경에서의 사역과 16세기의 시대적 상황과 오늘날의 특수성을 구분하는 등의 다양한 질적 연구로 보완될 필요가 있다. 또한, 종교개혁자들이 실천했던 사회적 책임 윤리의 가치가 도시 문화적 환경뿐만 아니라, 더 다양한 상황에서 어떻게 실천될 수 있을 것인지를 분석하는 후속 연구도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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