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I QR코드

DOI QR Code

Blockchain Technology and the Creation of Trust : Focusing on Transparency, Immutability and Availability

  • 투고 : 2022.02.04
  • 심사 : 2022.03.04
  • 발행 : 2022.03.31

초록

'신뢰'란 사람이나 사물에 대해 '믿고 의지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특정 공동체나 사회의 기반이자 존속의 필수 조건이다. 블록체인 기술이 어떻게 신뢰를 만드는지는, 관련 정보를 참여자 모두가 공유하는 기술이라는 점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공유의 기술인 블록체인은 그 기술 자체로 투명성, 불변성, 가용성이라는 세 가지 특징을 가진다. 공유하기 때문에 투명하고, 공유하기 때문에 불변, 곧 수정하거나 삭제하기 어려우며, 공유하기 때문에 일부 장애가 발생해도 전체 시스템은 정상 운영된다. 이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신뢰가 가진 의의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측면에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신뢰의 문제를 기술과 연결해 이해하는 것, 둘째는 정보와 신뢰의 관계를 이해하고 본격적으로 주목하기 시작한다는 것, 셋째는 확대된 정보처리 능력을 토대로 중앙의 매개 없이 대규모의 구체적인 상호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Trust' is 'believing and relying on people or things', and at the same time, it is the foundation and essential condition of existence of a specific community or society. How blockchain technology creates trust can be found in the fact that it is a technology shared by all participants. As a shared technology, blockchain itself shows three characteristics: transparency, immutability, and availability. Because it is shared, it is transparent, and because it is shared, it is immutable, which is difficult to modify or delete. In addition, since it is shared, the entire system operates normally even if some failure occurs. The significance of trust created based on this blockchain technology can be summarized in three aspects as follows. The first is to understand the problem of trust in connection with technology. Second, understanding the relationship between information and trust begins to pay attention. Third, based on the expanded information processing capability, it is possible to establish a large-scale, concrete relationship without central mediation.

키워드

I. Introduction

‘신뢰(trust)’란 사전적으로는 어떤 사람이나 사물에 대해 ‘믿고 의지하는 것’이나,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혹은 어떤 사물이 안전하다는 믿음’으로 정의할 수 있다[1]. 하지만 이 ‘신뢰’라는 하나의 덕목이 단순히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사이의 제한된 관계에서 작용하거나, 그 관계에서 필요한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더욱 넓게 특정 공동체나 사회의 기반이자 존속의 필수 조건이다. 신뢰 없이 사람은 서로 연대할 수 없고, 협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뢰가 “다차원적 구성체로서 가족, 친구, 이웃, 사회의 시민, 국가, 기관과의 관계에 적용되는 사회적 자본”[2]이라는 뜻이다.

여기에 더해 흔히 ‘4차 산업혁명’으로 표현되는 혁명적 변화에 직면한 이 시대는 새로운 신뢰의 토대와 신뢰의 방식을 요청한다. 새로운 신뢰 방식의 요청은 사람들을 연대하고 협력하게 만들던 기존의 틀이 그 기능과 역할에 있어서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반영한다. 이제 사람들은 과거의 방식으로 만나지 않고, 연대하지 않는다. 과거의 방식대로 협력하지 않는다. 새로운 신뢰의 방식 혹은 신뢰를 만드는 방식은 새로운 연대나 협력의 방식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다.

특히 지난 세기 후반부터 탈이념적 흐름과 함께 시장의 ‘개방’을 통해 형성되었던 세계적 공급망은 ‘코로나 19’의대 유행에 더해, 미美·중中의 경쟁과 대립 사태가 겹치며 위기를 맞고 있다. 중국의 제조 허브 역할은 공급망의 재편에 대한 요구와 깊이 관련된다. 편중된 공급기반이 ‘신뢰성’을 쉽게 무너뜨릴 수 있음을 경험한 것이다. 이것은 ‘개방’을 통해 형성되었던 공급망에 대한 의문과 함께 ‘개방’에 반하는 형태, 곧 ‘신뢰’할 수 있는 지역으로의 공급망 재편이라는 형태로 연결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처럼 글로벌 공급망에서 시작된 문제 역시 ‘신뢰’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설정을 요구한다.

그런데 이러한 시대적 흐름과 요구를 반영한 기술이 있다. 새로운 신뢰의 토대를 제시하며, 새로운 연대 방식을 함께 보여주는 것, 다름 아닌 ‘블록체인 기술’이다. 블록체인 기술은 ‘신뢰’를 만드는 기술이다. 사람들 사이의 연대와 협력은 모두 신뢰에 기반을 둔다는 점에서, 그것은 연대와 협력의 기술이라 부를 수도 있겠다. 블록체인 기술은 투명성, 불변성, 가용성을 기술적으로 확보한다. 그것이 신뢰의 기초를 제공한다.

블록체인 기술에서 말하는 투명성(Transparency)은 새로운 블록이 생성되는 것과 동시에 모든 참여자에게 전송되어 공유하는 것, 블록의 거래 기록이 모든 참여자에게 공개되는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모든 참여자가 공유자이자 감시자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불변성(Immutability)은 블록이 순차적으로 생성되어 연결되고, 일단 연결되면 삭제나 수정이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는 것을 가리킨다. 새로운 블록이 생성될 때, 앞 블록의 해시를 사용하는 까닭에 어느 한 블록을 삭제하거나 수정한다면, 참여자의 컴퓨터에 있는 전체 블록들을 모두 수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블록체인 기술이 신뢰를 만들기 위해 제시하는 것은 가용성(Availability)이다. 그것은 블록체인의 데이터가 모든 노드(참여자 PC)에 분산 저장되므로, 그 가운데 일부의 노드에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전체 시스템이 유지지속되어 중단되지 않는 것을 가리킨다. 혹 일부 노드가 작동하지 못하더라도, 다른 노드에 동일한 데이터가 온전히 갖추어져 있어, 전체 시스템은 중단 없이 작동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블록체인 기술은 신뢰를 만들 수 있는 중요한 토대로 ‘투명성’, ‘불변성’, ‘가용성’이라는 세 가지 특징을 다름 아닌 ‘기술’을 통해 제시한다. 이렇게 기술을 통해 신뢰의 토대나 기초를 제시한다는 점은 ‘블록체인’의 주요 특징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된다. 첫째는 왜 블록체인 기술에 기초해 신뢰의 토대를 요청하게 되었는가? 둘째는 블록체인 기술은 어떻게 투명성, 불변성, 가용성이라는 신뢰의 토대를 만드는가? 셋째는 이렇게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서 만들어진 신뢰의 토대가 가진 의의와 가치는 무엇인가?

이 논문의 문제의식 혹은 연구목적은 이 세 가지 의문과 직접 연결되어 있다. 그렇지만 기존 블록체인에 관한 연구의 주요 흐름에서 이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는 연구는 찾아보기 어렵다. 블록체인 기술에 관한 관심은 여전히 공학 기술의 영역 혹은 상업적 응용 분야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블록체인 기술에 대해 인문학적 시각으로의 접근이 필요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특히 현재 우리의 ‘신뢰’는 무엇에 기초해 만들어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가진 한계는 무엇인지를 이해할 때, 왜 블록체인 기술에 기초한 새로운 신뢰의 토대를 요청하게 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은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인문학적 이해의 한 방식이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거치며 블록체인 기술이 제공하고 있는 신뢰의 방식과 그 의의가 선명하게 드러나고 이해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이야기는 먼저 현재 우리는 무엇에 기초해 신뢰를 만들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에서 시작한다.

II. Kin selection, reciprocity, group selection, and information

자연상태는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 상황이라고 전제하는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는 부정할 것이 분명하지만, 국가라는 중앙의 권위체가 등장하기 이전에도 신뢰와 연대는 가능했다. 그만큼 신뢰와 연대의 역사는 깊고, 또 인류는 그 같은 연대를 통해 역사를 개척해 왔다. 똑같은 이유에서 도덕이나 윤리와 같은 규범, 문화적 요소로부터 신뢰의 기원을 찾는 것이 그다지 적절하지 않다는 점도 확인된다. 규범과 같은 문화적 요소의 역사가 신뢰나 연대의 역사만큼 오래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국가라는 중앙의 권위체가 존재하지 않았을 때부터 우리를 서로 신뢰하게 만들고, 그 신뢰를 기반으로 서로 연대하게 만들던 것은 무엇일까?

이 물음에 대한 답으로, 특히 진화생물학을 기반으로 제시하고 있는 몇 가지 신뢰와 협력의 가능성은 우리가 주목할 수 있는 부분이다. 진화생물학에서 인간의 협력은 크게 세 가지 방향에서 그 가능성을 제시한다. ‘혈연선택(Kin selection)’과 ‘상호주의’, 그리고 ‘집단선택론’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시각에는 두 가지 중요한 요소가 전제되어있다. 하나는 진화생물학의 시각에서 협력 역시 경쟁이나 투쟁의 상황에서 전개되는 ‘선택’의 한 요소라는 점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무엇보다 협력은 신뢰를 기반으로 하지만, 신뢰는 개체의 이익과 깊이 관련되어 있어서, ‘이익’과 ‘신뢰’, ‘협력’이라는 세 요소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다는 점이다. 이제 그 하나하나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가장 근원적인 신뢰의 기반은 흔히 ‘혈연선택’에서 찾는다. 혈연선택이론을 대중화한 해밀턴(W.D. Hamilton)은 ‘포괄적 적응도(Inclusive fitness)’ 개념을 통해 혈연선택을 설명한다. ‘포괄적 적응도’는 자신의 생존이나 생식을 희생하면서 친족의 성공을 촉진하는 전략 혹은 자신의 희생을 기반으로 한 친족의 성공을 자신의 성공으로 함께 계산하는 것을 가리킨다. 아울러 ‘포괄적 적응도’를 높이는 행위는 진화에 있어서 개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전략으로 이해되었다. 유전적으로 유사한 정도를 말하는 ‘유전적 근친도’, 다시 말해서 두 친족이 하나의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을 확률을 r이라고 한다면, 희생하는 사람이 부담하는 비용을 c, 그의 희생으로 다른 친족이 얻게 되는 이익을 b라고 할 때, r이 c와 b의 비율(c/b) 보다 클 때, 혈연관계의 친족에게 희생하는 행위가 등장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바로 해밀턴의 핵심적인 주장으로 흔히 ‘해밀턴의 법칙(Hamilton’s rule)’이라 부른다.

이렇게 ‘유전적 근친도’에 기반한 ‘혈연선택이론’은 친족에 대한 자기희생의 가능성을 설명한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유전적 근친도가 증가할 때 자신의 이익을 희생하는 행위 역시 함께 증가한다는 뜻을 가진다. ‘혈연선택’이 직접 ‘신뢰’의 문제를 언급하지 않지만, 바로 이 점에서 ‘근친도’ 가 증가할 때 ‘신뢰도’ 역시 증가하며, 협력의 가능성도 함께 증가한다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현실적으로도 신뢰를 기반으로 한 최초의 연대나 협력은 혈연에 근거한다. 그리고 이 혈연에 기초한 신뢰, 혹은 그 신뢰에 기초한 자기희생이나 연대, 협력을 ‘혈연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혈연선택’이 혈연에 기초한 신뢰와 협력을 설명한다면, 다른 하나 ‘상호주의’는 혈연 너머의 낯선 이방인이나 이웃 부족과 어떻게 신뢰를 만들며 서로 협력하는지를 설명한다. 이 상호주의는 간혹 ‘호혜적 이타주의’로 표현된다. 하지만 낯선 사람에 대한 이타적 행위가 미래의 보상을 예상한 것이라는 점에서, 이타주의보다는 상호주의라고 부르는 것이 더욱 적절하다. 상호주의라는 말에서 드러나듯,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상호작용과 함께, 행위의 양 당사자가 상대의 행위를 기억하고 그것에 맞대응하는 것을 전제한다. 상대의 과거와 현재의 행위뿐만 아니라 미래의 예상되는 행위에 대해 적절히 대응하는 것을 가리킨다.

혈연이라는 최소한의 공통점조차 없는 낯선 관계에서 어떻게 호혜적인 상호주의가 출현할 수 있는지는 반복되는 죄수의 딜레마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잘 알려져 있듯, ‘죄수의 딜레마’ 상황에서는 두 명의 죄수가 등장한다. 범죄의 수익금을 일정한 장소에 숨겨둔 두 범죄자가 경찰에 검거된 상황이다. 이 두 죄수는 자신들의 범죄를 모두 부인하거나 서로 상대에게 죄를 덮어씌우는 협력과 배반이라는 두 가지 행위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상대가 어떤 태도를 선택할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두 죄수의 선택에 따른 경우의 수는 다음과 같이 모두 네 가지다. ①함께 협력해서 두 죄수가 모두 범행을 완벽하게 부인하는 상황, ②같이 배반해 두 죄수의 죄상이 밝혀지면서 두 사람 모두 교도소에 가는 상황, ③죄수 A는 협력하지만, 죄수 B가 배반해서 B는 풀려나는 상황, ④죄수 A는 배반하지만, 죄수 B는 협력해서 A가 풀려나는 상황이다.

두 사람이 협력하는 ①의 상황에서 두 사람은 풀려날 수 있지만 숨겨둔 범죄 수익금은 두 사람이 공평하게 나눠 가져야 한다면, 그 반대인 ②의 상황에서 두 사람 모두 감옥에 갇히면서 숨겨둔 범죄 수익금의 획득은 미래의 가능성으로 남겨지게 된다. ③과 ④의 상황에서 협력한 사람은 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에 가야 하지만, 배반한 사람은 풀려나 숨겨둔 범죄 수익금 전체를 독차지하게 된다.

이 네 가지 선택지에서 보자면, 두 죄수는 상대가 무엇을 선택하든 배반을 선택하는 것이, 개인적으로 유리하고 합리적인 태도다. 그런데 문제는 상대 죄수 역시 똑같은 논리에 근거해서 선택한다는 점이다. 이 ‘죄수의 딜레마’ 는 두 명의 죄수가 각자 자신에게 합리적인 선택이자 최고의 선택을 할 때, 결국 서로 배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표현한다. 두 죄수가 처한 딜레마란 바로 각자에게는 합리적인 선택이 두 사람 전체에게는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이다. 이 점에서 ‘죄수의 딜레마’는 배반을 이야기할 뿐, 신뢰나 협력의 가능성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런데 만약 이 ‘죄수의 딜레마’ 상황이 단 한 차례에 그치지 않고, 또 일정한 횟수로 제한되지 않고 반복된다면 결과는 달라진다. 선택의 상황이 반복되면서 상대의 배반에 대해 응징하고 보복할 기회가 주어질 때, 그 속에서 배반이 아닌 협력의 가능성이 만들어지고 확대될 수 있다는 뜻이다[3]. 물론 이 협력이 상대에 대한 온전한 신뢰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연대와 협력을 만들어 낼 만큼의 신뢰라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이처럼 ‘혈연선택’과 ‘상호주의’의 관점은 이기적이고 서로 경쟁하는 사람들 사이에 신뢰와 협력이 어떻게 등장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두 관점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 그것은 신뢰나 협력의 범위를 혈연이나 구체적인 관계 너머로 확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상호주의’가 ‘혈연선택’보다는 상대적으로 확대된 신뢰와 협력의 계기를 제공하지만, 그것 역시 배반이나 협력에 맞대응하는 소규모의 구체적인 상호관계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구성원들이 모두 구체적인 상호관계를 맺을 수 없을 만큼 공동체나 사회가 큰 규모로 확대될 때, 그것은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이런 ‘혈연선택’과 ‘상호주의’의 한계를 극복한 대규모의 협력이나 신뢰는 ‘집단선택론(다 수준 선택론)’으로 설명한다. 진화생물학을 기반으로 제시된 초기의 ‘집단선택론’은 집단 혹은 종 수준에서도 선택이 진행된다고 보는 시각을 가리켰다. 하지만 이 초기의 ‘집단선택론’은 자연 선택이 개체 수준에서 발생한다는 ‘개체주의’의 비판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반면 최근의 ‘집단선택론’은 개체와 마찬가지로 집단 역시 서로 경쟁할 수 있다는 점을 근거로 ‘집단선택’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다윈(Charles Robert Darwin)의 시각에 따르면 자연 선택은 세 가지 필요조건을 충족할 때 발생한다. 그 세 가지 필요조건은 유용한 ‘변이’, 생존 및 번식을 위한 ‘투쟁’, 변이의 ‘대물림’이다[4]. ‘집단선택론’에서는 ‘집단’ 역시이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요소로 인정한다. 집단역 시 개체처럼 경쟁한다는 말이다. 이것은 “집단 간 경쟁이 집단 수준에서 성과 혹은 적합도를 향상시킬 때 집단과 개체 사이에 존재하는 갈등의 경계를 허무는 메카니즘들이 선호”[5]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집단선택론’이 가진 더욱 중요한 의미는 마틴 노왁(Martin A. Nowak)의 말에서 확인되는데, 그는 집단선택론의 “강점은 이것이 DNA나 유전자 수준에서뿐만 아니라 문화적 의미에서도 작용한다는 데 있다.”[5] 고말한다. 여기에서 ‘집단선택론’과 ‘문화’의 상관성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더욱 적극적으로 이해해서 단순히 ‘문화적 의미에서도 작용’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문화적 의미에서의 작용’ 자체가 더욱 중요한 요소라고 이해한다. 다시 말해서 ‘집단선택’은 곧 ‘문화 선택’이라이해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의 삶을 돌아보더라도, 신뢰를 생성하고, 사람과 사람을 거대하게 연결해 연대, 협력하게 만드는 주요한 요소가 다름 아닌 ‘문화’이다. 특히 이 문화적 요소는 혈연이나 구체적인 상호관계 너머로 신뢰와 연대를 확대해 가는 데 가장 중요한 교량 역할을 한다[6].

이 세 가지, 곧 ‘혈연선택’, ‘상호주의’, ‘집단선택’은 기본적으로 진화생물학이 제시하는 신뢰와 연대의 조건이다. 먼저 ‘혈연’이 신뢰와 협력의 첫걸음이자 주요한 토대를 제공했고, 정주생활의 시작과 함께 진행된 개체나 집단의 지역적 고착성은 구체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신뢰와 협력을 확대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공통의 문화를 기반으로 한 ‘집단’은 신뢰와 연대의 규모를 극대화할 수 있었다. 그런데 신뢰와 협력의 기원에 대한 이와 같은 진화생물학적 논의는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간과한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이들 ‘혈연’이나 ‘상호작용’, ‘집단’이 도대체 ‘어떻게’ 신뢰와 협력을 만들어 내는 가라는 물음이 그것이다. 이 물음은 이 세 가지가 신뢰와 연대의 토대가 된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이 셋의 어떤 요소가 신뢰와 연대의 조건을 제공하는지 되묻는 것이기도 하다. 사실 진화생물학은 이 물음에 대해 답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가 주목할 만한 것은 있다. 겉으로는 신뢰와 연대의 조건을 제시하는 ‘혈연’과 ‘상호작용’, ‘집단’은 분명 상이한 범주적 특징을 가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가운데 ‘상호작용’과 ‘집단’은 그나마 일정한 공통분모를 가진 것으로 이해될 여지를 가진다. 정주생활과 함께 강화된 집단의 고착성을 기초로 한 ‘상호작용’, 쉽게 말해 ‘잦은 접촉’은 상대에 관한 다양한 ‘정보’의 확대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은 집단에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다. ‘집단’ 또는 ‘집단이 공유하는 문화적 요소’ 또한 특정 집단이 함께 공유하는 ‘정보’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상호작용’과 ‘집단’은 겉으로 보기에 서로 다른 범주에 속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적으로 ‘정보’라는 하나의 공통분모를 가졌다고 할 수 있다.

반면 ‘혈연’이 선천적인 ‘유전적 근친도’만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이것은 앞의 두 요소와는 분명한 차별성을 가진다. 이 경우 앞의 두 가지 요소와 연결해 이해할 수 있는 공통의 토대를 가지기 어렵다. 그런데 만약 ‘혈연’이 제공하는 신뢰가 ‘공통의 경험’을 기반으로 얻어진, 후천적인 정서적 친밀감과 유사한 것으로 이해된다면 또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공통의 경험’은 곧 공유하는 ‘공통의 정보’ 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혈연’이 신뢰와 협력의 첫걸음이 될 수 있었던 것이 유전적 근친도 자체 때문인지, 아니면 혈연에 기초해 후천적으로 획득된 정서적 친밀감 때문인지 확실하게 단언하기 어렵다는 점이다[7].

그럼에도 만약 후자로 해석될 수 있다면, ‘혈연’과 ‘상호작용’, ‘집단’이 세 요소는 모두 ‘정보’, 곧 신뢰하고 연대해야 하는 상대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정보와 관련된다는 하나의 공통점을 갖는다. 다시 말해서 이 셋은 표면적으로 다른 범주에 속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신뢰를 만드는데 필요한 ‘정보’를 만들고 쌓아간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그리고 동시에 이 세 가지 신뢰의 조건은 각각 분명한 내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혈연선택’은 유전적 근친도와 관련된 정보에 집중하고,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좁은 관계에 적용될 뿐이다. 반면 ‘상호주의’는 혈연선택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었지만, 직접적인 상호작용에서 얻는 구체적인 경험적 정보에 한정될 뿐이다. 반면 문화적 요소에 기초한 ‘집단선택’은 중앙이 매개하는 간접적인 정보를 기반으로 신뢰와 연대의 범위를 확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규모로 확대되는 정보를 각 개체가 모두 직접 처리할 능력의 부재는, 필연적으로 정보의 집중을 불러올 수밖에 없었다.

이 세 요소가 가진 내적 한계는 현재 신뢰와 연대를 만드는 방식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블록체인 기술’이 신뢰나 연대의 문제와 어떻게 연결되고 왜 연결되어야 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신뢰와 연대는 상대에 관한 정보에 기초한 이해 정도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 그것은 정보의 질이나 양과도 무관할 수 없지만, 정보를 투명하고도 왜곡되지 않게, 그리고 가용 적으로 주고받고 처리하는 능력까지도 포함한다. 블록체인 기술이 제시하는 정보의 투명성, 불변성, 가용성에 주목하는 것도 바로 이와 같은 배경을 가진다.

III. Blockchain, technology to build trust

앞에서는 진화생물학이 제시하는 신뢰의 토대가 되는 세 가지 조건, 곧 ‘혈연선택’, ‘상호주의’, ‘집단선택’을 살펴보면서, 이 모두가 ‘정보’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는 점을 함께 주목했다. 특히 ‘혈연선택’이나 ‘상호주의’에 비해, 문화적 요소에 기초한 ‘집단선택’은 간접적인 상호관계를 기반으로 신뢰와 연대의 규모를 크게 확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보의 처리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집단선택’을 통한 대규모의 신뢰나 연대를 실현하기 위해, 그 ‘집단’ 구성원에게는 대규모 정보처리 능력이 요구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이런 능력을 획득하는 길이 아주 제한적이었다는 사실이다. 언젠가 인류가 선택했던 뇌의 용량을 키우는 생물학적 자연선택은, 이 문제를 해결할 적절한 방법이 될 수 없었다. 지나치게 긴 시간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효율적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주목한 것이 ‘중앙화’였다. 다양한 문화적 요소는 집단선택을 가능하게 만들었지만, 그렇게 확장된 문화적 요소, 곧 대규모 정보의 처리 방법을 ‘중앙화’에서 찾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각 개체는 대규모 정보를 모으고, 분석하고, 보관할 능력이 없었다. 대규모 연대와 협력이 시작되었지만, 그것에 걸맞은 대규모 정보처리 능력을 각 개체가 갖추지 못했을 때, 홉스가 말한 ‘중앙의 권위체’가 등장할 수밖에 없었다. ‘중앙화’란 각 개체의 부족한 정보처리 능력을 보완하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 ‘중앙화’ 역시 신뢰의 문제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블록체인’이 그러하듯, ‘중앙’ 그자체는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이면서, 개인과 개인 사이의 신뢰를 보증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특히 현대의 상업적 거래에서는 당사자 외에 양자 사이의 신뢰를 보증하는 제3의 중개자를 요청한다. 금융과 관련해서 은행이 바로 그런 중개자에 해당한다. 더 넓게는 개개인의 관련 정보를 독점하며 신원을 증명해 주는 국가나 정부도 이런 중개자, 중앙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 중개자가 독점하고 있는 금융거래나 신원 증명과 관련된 모든 정보는 필연적으로 사회정치적 권력으로 이어진다. 정보는 권력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독점되었을 때 필연적으로 권력의 남용이나 부패의 문제로 연결되었다.

예를 들어, 인터넷 상거래에서는 플랫폼(서버)이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한다. 이런 구도에서 중개자가 없다면,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신뢰 문제가 발생한다. 생산자가 대금을 받았으면서 상품을 발송하지 않거나, 소비자가 상품을 받고 대금을 지급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피해를 방지하는 방법으로 에스크로(escrow: 결제대금예치계약), 보증보험(소비자피해보상보험) 등의 제도를 만들어 제삼자가 신뢰를 보증하였다. 하지만 이런 구도에서도 양 당사자와 관련된 정보를 독점한 그 제삼자가 신뢰를 무너뜨리거나, 플랫폼(서버)에서 신뢰를 무너뜨리는 일이 발생하였다. 에스크로나 보증보험 제도 역시 신뢰의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중앙화와 그것이 가진 한계는 블록체인 기술이 등장하는 배경이 되었다. 개인과 개인의 거래에서 자동으로 상대를 신뢰하며 거래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한 것이다[8].

그렇다면 블록체인 기술은 어떻게 신뢰를 만드는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블록체인에 대한 정의에서 드러난다. 일반적으로 블록체인은 “거래한 데이터 기록을 중앙집중형 서버에 보관하는 기존방식과 달리, 일정한 조건을 갖춘 노드인 참여자 모두에게 내용을 공유하는 분산형 디지털 장부”[9], 또는 “거래정보를 기록한 원장을 특정 기관의 중앙 서버가 아닌 P2P(Peer-to-Peer) 네트워크에 분산하여, 참가자가 공동으로 기록하고 관리하는 기술”[10] 이라고 정의한다. 즉 Fig. 1과 같이 거래 내역과 같은 정보를 제삼자가 독점하지 않고, 참여자 모두가 합의한 최종블록을 함께 공유하는 방법이 바로 블록체인 기술이다. 정보의 공유, 이것이 블록체인이 신뢰를 만드는 방법이다.

CPTSCQ_2022_v27n3_79_f0001.png 이미지

Fig. 1. Blockchain and sharing technology

은행을 예로 들면, 기존방식은 A가 B에게 100원을 송금하기 위해서는, A가 은행(중간자)에 100원을 입금하면서 B에게 100원을 송금할 것을 요청하게 된다. 이 요청에 따라 은행은 송금 수수료를 받고 B에게 100원을 송금한다. 은행 거래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의 거래 내역은 은행이 독점하고, 거래 당사자인 A와 B는 자신의 거래정보만 확인할 수 있다. 이와 달리 블록체인은 거래 내역을 참여자 모두가 공유하는 공공거래장부에 기록한다. A가 B에게 100 원을 송금한다면, 해당 거래에 대한 block-candidate가 생성되고 해당 거래가 유효한지 블록체인 네트워크 검증을 진행한다. 참여자 절반 이상이 ‘정상거래’라고 판단하면 block-candidate는 유효성을 인정받고 공공거래장부에 기록된다. 만약 A의 통장에 송금할 100원이 없는데도 B에게 100원을 송금한다고 거짓 정보를 만든다면, 이 경우에도 block-candidate가 생성되고 해당 거래내역의 유효성을 블록체인 네트워크에서 검증하게 된다. 이때 대부분의 참여자 블록에는 A의 잔고를 확인하고, 자신이 가진 데이터베이스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후, 유효성을 승인하지 않으면 거래내역은 ‘폐기’되어 공공거래장부에 등록되지 못한다. 이렇듯 블록체인은 ‘은행’이라는 중간자를 두지 않고 블록체인의 특성을 이용해 개인과 개인 간 거래의 신뢰성을 참여자가 되어 입증하게 되고[8], 참여 보상으로 코인을 받게 되는 구조이다.

블록체인은 일정 주기로 정보가 담긴 블록을 생성한 후, 이것을 이전 블록에 체인처럼 연결해 그것을 P2P로 공유하는 기술이다. 특히 블록체인 핵심기술로 P2P 네트워크, 암호화, 분산장부, 분산합의와 같이 크게 4가지의 기반 기술로 구성되어 있으며[11], 참여자들 간의 연결이 P2P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이 P2P 연결기술은 모든 개인과 개인을 연결하기 때문에 탈중앙화시키게 된다. 블록체인에서 사용되는 암호화 기술은 데이터의 무결성 검증을 위한 해시 트리와 거래의 부인방지를 위한 공개키 기반 디지털 서명 기법이 사용된다. 분산장부 기술은 참여자들 간의 합의에 따라 공유되고 동기화된 정보의 기록 저장소이다. 블록체인에서 분산장부는 발생하는 모든 거래내역을참여자들의 합의에 의한 검증과정을 거쳐 모든 참여자 가동 일한 정보를 공유한다. 분산합의 기술은 모든 참여자가 생성된 블록 중에 결함이 있는 프로세스가 있는 경우 시스템의 신뢰성을 달성하기 위해 노드들간에 특정 블록에 대한 동의를 끌어내는 프로토콜이다. 따라서 P2P 공유 기술이 탈중앙화, 투명성, 가용성의 특징을 모두 가능하게 하고스마트컨트랙트의 자동화 거래 기술로 신뢰를 만들게 된다.

특히 블록체인 기술은 투명성, 불변성, 가용성이라는 세 가지 특징을 보여주는데, 이들 특징이 어떤 기술에 기반을 두고 확보되는지, 신뢰의 생성에서 이들 특징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투명성(Transparency)은 모든 참여자에게 똑같은 정보가 공유됨으로써 모두가 정보를 확인하고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분산처리 시스템이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사항 가운데 하나이면서, 자원의 존재 위치와는 상관없이 시스템의 모든 파일에 대하여 사용자가 동일한 방법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새로운 블록이 생성되는 동시에 모든 참여자에게 전송되고 공유되어, 블록의 거래 기록은 참여자 누구나 확인할 수 있게 된다. 또 다른 측면에서 이것은 참여자 모두가 감시자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불변성(Immutability)은 거래와 관련된 데이터들에 대한 수정, 삭제 등의 변경이 어려운 것을 가리킨다. 블록은 순차적으로 연결되는데, 일단 연결된 블록은 수정이나 삭제가 어렵다. 새로운 블록을 만들 때는 바로 앞서 만들어져 있는 블록의 해시를 사용하기 때문에, 중간에 있는 어느 하나의 블록을 수정하거나 삭제하려면 모든 참여자의 컴퓨터에 있는 모든 블록 내용을 한꺼번에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블록은 순차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그 이전 블록 내의 해시값과 또 그 이전 블록 내의 해시값들을 끝없이 해독해야 한다. 따라서 짧은 시간에 블록의 정보를 수정하거나 삭제하기 어려운 구조인 것은 분명하다.

셋째, 가용성(Availability)은 시스템 품질 속성 중 시스템이 장애 없이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능력을 가리킨다 [12]. 다시 말해서 네트워크에서 아무런 시스템 장애 없이 요청된 서비스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바로 가용성이다. 블록체인의 데이터는 모든 참여자의 PC(노드)에 분산 저장되므로, 그 가운데 일부에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전체 시스템이 유지되며 중단되지 않는다. 생성된 블록이 체인에 연결되기 위해서는 50% 이상의 노드가 동의(승인)한 경우이다. 따라서 일부 PC(노드)에 문제가 발생하더라고, 50% 이상의 노드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전체 시스템은 계속 작동할 수 있다. 그런데 만약 50% 이상의 노드에서 문제가 발생할 때, 가용성은 분명 상처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일반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며, 확률은 매우 낮다.

새로운 블록은 일정 시간 동안의 거래 내역이 확정될 때 생성되어, 네트워크상의 모든 노드에게 전달된다. 각 블록은 일반적으로 블록크기, 매직넘버, 블록헤더, 거래내역, 거래건수로 구성된다. 또 블록 크기는 거래건수, 거래내역, 블록헤더에 대한 전체 크기를 나타내며, 블록헤더는 버전, 전체 트랜잭션의 해시값, 타임스탬프, 이전 블록의 해시값, 난스(Nonce), 문제 난이도 등의 6개 정보로 구성된다. 이 블록체인 데이터는 다음과 같은 여러 기술적 요소와 방법을 통해 투명성, 불변성, 가용성을 확보하게 된다.

첫째는 데이터의 변경 또는 삭제를 위한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가 없다는 점이다. 블록체인 소프트웨어는 일반적으로 블록체인에 저장된 데이터를 변경하거나 삭제하기 위한 API를 제공하지 않는다. 둘째는 복제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모든 데이터는 여러 곳에 분산하여 복제된다. 이렇게 복제되어 그 복제 팩터가 높을수록, 복제본을 모두 변경하거나 삭제하는 것이 어렵다. 셋째는 내부 감시 장치가 있다는 점이다. 모든 노드가 변경사항들을 모두 관찰하고, 허용되지 않은 변경이 발생할 때 적절한 조처를 할 수 있다. 넷째는 외부 감시 장치가 있다는 점이다. 컨소시엄은 부정행위를 찾아 데이터를 관찰하고 감시할 수 있는 검증된 제삼자를 선택할 수 있다. 공개적으로 읽을 수 있는 데이터를 가진 컨소시엄의 경우, 대중은 감시자 역할을 할 수 있다. 다섯째는 경제적 인센티브, 곧 유인책이 있다는 점이다. 일부 블록체인 시스템은 기존의 저장된 데이터를 수정하거나 변경하는 데 큰 비용을 내도록 한다. 예를 들어 작업 증명 및 지분 증명 시스템이 여기에 해당한다. 여섯째는 노드 다양성으로 인해서 한 가지 요소(예: 자연재해 또는 운영 체제 버그)가 상당수의 노드를 손상시킬 수 없도록 한다. 노드 다양성은 지리적 다양성, 관할권 다양성, 호스팅 다양성, 일반적인 의미의 다양성 등을 가리키며, 노드를 손상하는 것이 어려운 구조를 만든다[13]. 이처럼 블록체인은 분산원장 기술을 기반으로, 거래 데이터에 대한 위·변조가 어려워 데이터의 신뢰성과 안전성, 거래의 투명성을 보장할 수 있는 기술로 인정받고 있다[14].

이 블록체인 기술의 발전 과정은 계층별, 유형별로 구분해 살펴볼 수 있다. 계층별 구분은 블록체인 1.0에서 2.0 을 거쳐, 현재는 3.0으로 진화하는 것을 가리킨다. 가상자산을 중심으로 디지털 경제에 활용된 것이 블록체인 1.0이라면, 스마트 컨트랙트를 중심으로 서비스 혁신과 거래나 계약 자동화를 가져와 다양한 비즈니스 영역으로 확대된 것이 블록체인 2.0이다. 그리고 현재는 사회 전반에 기술이 적용되는 상황으로 블록체인이 일상생활 등에 자연스럽게 적용되어 사회에 변화를 주는 단계인 블록체인 3.0[15]으로 진화하고 있다.

유형별 구분에서 보자면, 블록체인 1.0은 공개 분산원장과 합의 알고리즘 기능을 적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금융거래 등 한정적인 분야에서 활용될 뿐, 확장성이 낮고 느린 거래와 합의도출이 어려운 의사결정 시스템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반면 블록체인 2.0은 스마트 계약을 통한 지능화 및 자동화 기능으로 제3자의 개입 없이 자유롭고 다양한 계약이 가능했다. 하지만 의사결정 문제나 하드포크 증명방식의 한계점을 가지고 있다. 블록체인 3.0은 내부의사결정 기능을 탑재하고 지분증명방식 합의 알고리즘으로 전력소비를 최소화하는 등 정부 정책, 의료, 운송, 스포츠, 추적 시스템, NFT 등 사회 전반으로 적용범위가 넓어지고 있다[16].

예를 들어, 추적 시스템의 한 사례로, 월마트의 식품 원산지 추적 시스템인 ‘하이퍼레져 패브릭’(Hyperledger Fabric)이 있다. ‘하이퍼레져 패브릭’ 도입을 통해 중국산 돼지고기 수입 시 진품인증서를 함께 업로드하게 함으로써 제품 신뢰를 향상시켰고, 수입 망고의 원산지 추적은 기존 7일에서 2.2초만에 가능해졌다. 또 식품을 납품하는 농장에서부터 보관창고, 운송경로 등 모든 곳에 IoT 태그를 부착하여 전체 유통과정을 블록체인에 실시간 업데이트함으로써 모든 소비자에게 투명하게 공개하여 피해를 줄일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여러 측면에서 보자면, 블록체인 기술의 기본적인 지향은 ‘탈중앙’, 곧 제삼자 없는 신뢰의 생성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이것은 ‘중앙화’의 폐해를 극복하는 길이자, 동시에 새로운 신뢰와 연대의 방법을 찾아가는 길이기도 하다. 그리고 정보처리라는 측면에서 블록체인 기술의 등장은 드디어 각 개체가 ‘중앙’ 수준의 정보처리 능력을 갖추는 현실을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미래 언젠가 이것이 실현되었을 때, 사람들은 그 어떤 규모에서도 간접적인 방식이 아닌,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상호작용하며 충분한 정보에 근거해 신뢰하고 연대하는 가능성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물론 이것을 현실화하는 구체적인 기술은 아직 진화의 과정 가운데 있다. 그럼에도 이 기술이 그려주는 미래는 분명하고 확정적이다. 그것은 정보를 전달하고, 복사하고, 저장하는 기술의 진보가 신뢰와 연대의 방식을 바꾸게 된다는 점이다.

IV. Trust created by blockchain technology, its humanities significance

앞에서는 현재 우리의 신뢰와 연대의 조건이 무엇인지에서 시작해, 블록체인 기술이 어떻게 신뢰를 만드는지를 정리해 보았다. 이제 끝으로 이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해 신뢰를 만드는 것, 그 의의가 무엇인지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신뢰를 만든다는 것은 최소한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눠서 그 의의를 이해할 수 있다. 하나는 신뢰를 만드는 방법의 측면이라면, 다른 하나는 그렇게 방법의 변화로 얻어진 결과의 측면이다.

이렇게 두 측면에서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신뢰를 만드는 것으로부터 확인할 수 있는 의의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그 첫째가 신뢰의 문제를 기술의 문제로 이해하고 해결방법을 찾는다는 점이라면, 둘째는 신뢰의 문제를 정보의 문제와 연결해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점이고, 마지막 셋째는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해 신뢰를 만들 때 ‘대규모의 구체적인 상호작용’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각각의 의미를 하나씩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신뢰를 확보한다는 것, 이것이 가진 의의는 ‘신뢰의 문제를 기술과 연결해 이해한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신뢰의 문제를 도덕의 문제나 이념의 문제가 아닌, 기술의 문제로 이해하는 것을 뜻한다. 그동안 ‘신뢰’와 ‘기술’은 서로 독립된 영역으로, 혹 간접적으로 서로 연결될 수 있어도, 직접 연결될 수 없다고 여겨졌다. 흔히 하나는 윤리나 도덕, 혹은 인문학의 연구나 탐구대상이라면, 다른 하나는 공학의 영역에 속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이제 이 두 영역이 만나며, 신뢰를 만드는 문제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이해와 접근이 시작되었다.

문제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접근은 새로운 해결방법으로 이어지고, 시각의 근원적 전환을 가져온다. 블록체인기술이 전제하고 있는 시각에 따르면, ‘신뢰’는 ‘기술’에 기초해 만들 수 있다. 앞에서 우리는 ‘혈연선택’이나 ‘상호주의’, ‘집단선택’ 등의 신뢰를 생성하는 요소들이 정보나 그것의 처리능력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이 점에서 ‘신뢰도’는 정보의 양과 질, 그리고 투명한 정보의 처리 과정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할 수 있다. 특히 대규모의 연대와 그 연대에 필요한 신뢰를 만들기 위해서는 확장되는 정보를 효율적으로 수용하고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고, 이것은 정보처리 기술의 진보와 깊이 관련된다. 다시 말해서 신뢰는 상대의 의도나 생각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정보처리 능력에 의해 만들어지고, 블록체인은 기술적으로 이 능력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신뢰를 만드는 과정에서 상대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운 이유는 다음의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17]. 하나는 상대의 의도나 생각을 투명하고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정보를 획득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대부분 충분한 정보를 얻기 위해 지나치게 많거나 불가능한 수준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거나, 또 그렇게 해도 충분한 정보를 보장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상대의 행위나 태도의 결과가 늘 즉각적으로 확인되지 않고, 일정한 시차를 두고 드러나기 때문이다. 특정 행위와 그 행위의 결과나 인과 관계가 시간적인 선후를 분명하게 보여주며 질서정연하게 우리에게 드러나는 경우는 드물다. 다양한 시차 속에서 복잡하게 드러나는 현상으로부터 상대의 분명한 의도나 생각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런 두 가지 측면, 곧 투명하고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정보를 얻기 어렵다는 점과 시차를 두고 생각이나 의도가 확인된다는 점은 신뢰를 생성하는 과정에서 늘 해결 불가능한 문제로 여겨졌다. 그리고 바로 이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전제할 때, ‘완전한 투명성은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17]는 데이비드 데스테노 (David DeSteno)의 결론은 합리적이고 설득력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렇게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정보의 양적 혹은 질적 처리나 획득은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신뢰를 만들 수 있는 정보의 일정한 투명성은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렇듯 특정 ‘기술’을 통해 실현되는 정보의 투명성, 불변성, 가용성은 신뢰를 생성하는 방식에 있어서 근원적 전환을 예고한다.

둘째는 정보가 신뢰를 만드는 핵심 요소라는 사실을 긍정하고, 이것에 중점을 두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신뢰를 만드는 과정에 관련 정보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당연히 부정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는 정보와 그것의 처리에 대해 충분히 주목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신뢰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정보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중요성은 알고 있었지만, 신뢰를 만들기에 충분한 정보를 전달하고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상상하지 못한 까닭이었다. 신뢰를 만들기에 충분한 정보를 얻기 어렵다는 사실은 신뢰를 향한 우회로를 만들었다. 그래서 기존의 신뢰를 만들기 위한 노력의 상당 부분은 관련 정보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라는 문제와 무관하게 전개되었다. 대신 강조했던 것은 도덕과 같은 규범적인 활동이다. 특정 상대와 신뢰 관계를 맺기 위해 요청된 것들은 상대를 이해할 수 있는 정보보다는, 말이나 약속의 이행, 상대에게 감정적 손해를 끼치지 않는 것, 악의 없이 선의로 행동하는 것과 같은 특정 도덕적인 덕목이나 행동 양식과 관련되어 있다[2]. 정보를 강조한 것이 아니라, 윤리적이거나 규범적인 측면에 더욱 치중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블록체인 기술, 특히 정보를 기반으로 신뢰를 생성한다는 점은 기존 신뢰를 생성하기 위한 노력과 구별된다.

사실 정보는 생명 활동과 불가분의 요소다. 생명체는 기본적으로 ‘정보처리자’이기 때문이다. 모든 생명체는 나름의 방식대로 정보를 분석하고 해석하고 가공한다. 자신에게 던져지는 수 많은 정보를 분석하고 해석하는 데 문제가 있다면, 생명 활동은 유지 존속될 수 없다. 세포 주기의 핵심 조절 인자를 발견한 공로로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공동 수상한 폴 너스(Paul Nurse)는 생명이나 생명체, 생명 활동이 모두 정보와 그것의 전달, 처리, 분석 등과 불가분의 관계라고 말한다[18].

이런 점에서 앞에서 살펴본 혈연선택, 상호작용, 집단선택이 모두 일정한 한계를 가졌지만, 나름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이었다고 이해할 수 있다. 아울러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한 신뢰 만들기는 신뢰의 문제를 정보의 문제와 연결하는 방향 전환을 뜻한다.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신뢰를 만드는 것이 가진 세 번째 의의는 블록체인 기술의 적용 결과와 관련된다. 블록체인기술에 기초해 신뢰를 만든다는 것은, 대규모 정보처리 능력을 기반으로 구체적인 상호작용이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신뢰와 연대 방식의 변화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신뢰와 연대의 토대가 되는 ‘혈연선택’과 ‘상호주의’, ‘집단선택’ 가운데, 앞의 두 요소는 구체적인 관계나 직접적인 상호작용을 전제하는 까닭에, 그 신뢰나 연대의 외연을 확장하는데 분명한 한계가 있다. 혈연선택은 직간접적인 친족 관계를 전제하고, 상호주의 역시 상호작용하는 고착된 개체나 집단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반면 집단선택은 구체적인 혹은 직접적인 상호관계를 전제하지 않고 대규모 신뢰와 연대를 만들어 낸다. 이 ‘집단선택’에서 대규모 신뢰를 만드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문화’이다. ‘문화’에 대한 다양한 정의가 있더라도, 분명한 사실 가운데 하나는 그것 역시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이자, 신뢰를 생성하는 방식이라는 점이다. 다양한 문화적 요소들을 통해 우리는 정보를 서로 나누고, 수용하며, 공유한다. 문화를 통해 만들어진 공통의 기억과 경험은 공통의 정보가 된다. 그것에서 신뢰가 형성되고, 협력의 토대가 만들어진다. 그런데 이렇게 정보를 서로 나누고, 수용하며, 공유하는 방식인 문화의 핵심적인 특징이 자지 향이 다름 아닌 ‘중앙화’다.

따라서 이 문화에 기반한 ‘집단선택’은 불가피하게 직접적인 상호관계가 아닌 간접적인 상호관계에서의 연대와 협력을 낳게 된다. 상호관계를 맺는 양 당사자를 간접적으로 연결하고 매개하는 것은, 당연히 문화에 의해 옹호되고 정당화되는 ‘중앙’이다. 이 점에서 보자면, 문화라는 요소와 함께 중앙이 매개자가 되어 정보를 처리하며 신뢰를 만드는 것이 ‘집단선택’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렇듯 ‘집단선택’은 개개인이 직접 접촉하는 구체적인 관계에 기초하지 않는다. 집단선택에서는 신뢰할 상대나, 연대할 대상과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관계를 반드시 전제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신뢰해야 하는 대상이나 연대의 상대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정보를 반드시 요청하지도 않는다. 이것은 신뢰나 연대의 상대에 대한 정보를 당사자들이 반드시 수용하고 처리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반면 ‘혈연선택’이나 ‘상호주의’는 혈연관계나 고착화된정주생활과 함께, 직접 접촉하는 구체적인 관계를 전제로 한다. 이 ‘구체적인 관계’에서 생성되는 공통의 경험과 정보를 대신하는 것이 집단선택에서는 문화이지만, 대규모 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갖추지 못했을 때 ‘중앙’은 불가피한 선택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집단선택’에서 문화가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그리고 문화가 중앙을 지향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여기에서 제삼자로서의 ‘중앙’이 수행해야 할 역할이 등장한다. ‘중앙’은 제삼자가 되어, 신뢰나 연대의 상대에 대한 모든 정보를 통제하고 관리하면서, 신뢰와 연대를 보증한다. 중앙이 정보를 독점하면서 신뢰를 보증하는 것이다.

이처럼 중앙과 그 중앙을 정당화하는 문화가 없다면, ‘집단선택’을 기반으로 한 신뢰의 생성이나 연대는 상상할 수 없다. ‘신뢰’가 어떤 방식으로 제공되고 있는지에 대한 토마스 홉스의 통찰이 의미가 있는 것 역시 바로 이 점에 서 확인된다. 1651년 출간된 그의 리바이어던에서는 개 체의 이기성에 기초한 사회계약론을 통해 국가와 그것이 행사하는 권력의 정당성을 논증했다. 자연상태의 인간은 ‘만인이 만인에 대하여 전쟁을 하는 상황’이라고 홉스는 규정한다[19]. 그는 ‘중앙’의 권위체, 곧 국가가 등장하기 전, ‘인간의 삶은 고독하고, 가난하고, 험악하고, 잔인하고, 그리고 짧다’라고 표현한다. 자연상태는 서로 경쟁하는 이 기적인 개체들이 만인에 대해 전쟁을 하는 상황이다. 중앙 의 권위체인 국가가 없다면 이기적인 개체 간에 신뢰는 생 성될 수 없고, 따라서 상호 간의 연대나 협력 역시 불가능 하다고 보았던 것이다

물론 홉스의 생각대로 중앙의 권위체인 국가가 등장하기 이전 인간 개체 상호 간의 신뢰나 연대가 불가능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의 생각에서 ‘중앙’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직 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경쟁하는 이기적인 개체들의 충돌 을 조정할 뿐만 아니라, 정보의 독점을 기반으로 신뢰를 보 증하고 서로 연대하도록 매개하는 것이 바로 중앙의 역할이 었다. 이처럼 문화를 기반으로 한 중앙이 신뢰와 연대의 토 대를 제공했다면, 블록체인 기술은 적극적인 탈중앙의 지향 을 통해 이와 같은 기존의 방식을 무너뜨리고 있다.

하지 않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정보를 독점한 중앙 없이 도, 신뢰나 연대의 당사자들이 상대에 관한 정보를 필요한 만큼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특히 우리가 주목하는 부분은,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중앙의 매개 없 이, 혈연선택이나 상호주의의 구체적인 상호관계에서 신뢰 를 만들 수 있었던 수준의 정보를 공유하게 된다는 점이다. 결국, 블록체인 기술을 통한 신뢰의 생성은 정보처리 능력을 기반으로 혈연선택이나 상호주의에서 확인되는 구 체적인 관계를 대규모로 맺을 수 있게 되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신뢰를 만들고 서로 연대하는 모든 과정의 변화를 불가피하게 전제하고 있다.

지금까지 블록체인 기술로 만들어지는 신뢰가 가진 의의 를 세 가지 측면에서 정리해 보았다. 그 첫째는 신뢰의 문 제를 기술과 연결해 이해하는 것, 둘째는 정보와 신뢰의 관 계를 이해하고 본격적으로 주목하기 시작한다는 것, 셋째 는 확대된 정보처리 능력을 토대로 중앙의 매개 없이 대규 모의 구체적인 상호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었 다. ‘신뢰’는 모든 인간관계의 출발점이다. 그리고 ‘블록체 인 기술’이 신뢰를 생성하는 새로운 방식이라는 점에서, 그 것의 등장은 신뢰와 연대의 혁명적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V. Conclusions

이 논문은 ‘블록체인 기술’이 만드는 ‘신뢰’와 관련해, 세 가지 의문에 답하고 있다. 그 세 가지 의문은 왜 ‘블록 체인 기술’이 신뢰를 만들게 되었는지, 블록체인 기술은 어떻게 신뢰를 만들어 내는지, 그리고 블록체인 기술이 신 뢰를 만드는 이 상황은 어떤 인문학적 의미가 있는지로 요 약된다. 이제 이 세 가지 의문과 관련해 앞에서 진행한 이 야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의문인 왜 블록체인 기술이 신뢰를 만들게 되었 는가라는 물음에는 현재 우리의 신뢰가 무엇에 토대를 두고 있는지, 또 이것에는 어떤 문제가 있는지에 대한 의문 이 전제되어 있다. 일반적인 시각에서 보자면, ‘신뢰’를 만 드는 방법 대부분은 도덕이나 윤리적 규범과 관련된다. 흔 히 신뢰는 정직이나 배려 등의 덕목이나 태도에서 배양된 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봤듯, 신뢰나 연대가 순전히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요소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혈연이나 이익을 바탕에 둔 상호작용 등이 더욱 깊은 뿌리를 가지며 신뢰를 만든다. 여기에 더해 도덕이나 윤리와 같은 문화적 요소들이 작용한다

그럼에도 혈연선택과 상호주의는 제한적이고 좁은 구체 적인 관계 속에서 작동할 뿐이다. 상호주의가 혈연선택의 한계를 일부 극복하지만, 여전히 고착된 상호작용을 전제 한다. 반면 집단선택은 이 양자가 보여주는 제한적이고 구 체적인 관계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었지만, 신뢰와 협력의 당사자가 맺는 관계는 간접적인 형태로 변질되어 버렸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구체적이 아닌 추상적인 관계가 되어 버린다. 그것은 집단선택을 통해 대규모의 신뢰와 연대가 만들어질 때, 그 규모에 비례해 증가하는 정보의 양과 무관하지 않다. 급속하게 증가하는 정보를 개체가 단독으 로 처리할 수 없었던 까닭에 새로운 정보처리 방식이자 관 계 맺는 방식을 요청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요청에 호 응한 것이, 바로 문화였고, 이 문화가 지향한 중앙이다. 이 점에서 문화와 중앙화는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 이제 사람 들은 공유하는 문화와 그 문화에 의해 정당화된 중앙을 매개로 서로 신뢰하고 연대하는 것이다. 이것이 신뢰와 관련된 블록체인 기술이 보여주는 문제의식이다.

두 번째 의문인 블록체인 기술이 어떻게 신뢰를 만드는 지는 블록체인 기술이 참여자 모두가 공유하는 기술이라 는 점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정보를 공유하는 기술인 블록체인은 그 기술 자체로 투명성, 불변성, 가용성이라는 세 가지 특징을 가진다. 공유하기 때문에 투명하고, 공유 하기 때문에 불변, 곧 수정하거나 삭제하기 어려우며, 공 유하기 때문에 일부 장애가 발생해도 전체 시스템은 정상 운영된다. 결국, 투명성, 불변성, 가용성의 특징 역시 블록 체인이 정보를 공유하는 기술이기에 자연스럽게 가지게 된 특징이다. 다만 블록체인 기술이 이미 최종적으로 완성 된 것이 아닌, 현재도 끝없이 진보하며 그 적용 영역이 확 장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해야 한다.

세 번째는 블록체인 기술로 신뢰를 만드는 것이 어떤 인 문학적 의미가 있는가라는 의문이다. 이 문제는 최소한 두 가지 측면에서 답이 가능하다. 하나는 기술에 기반해 신뢰 를 만드는 방법의 측면이 가진 의의라면, 블록체인 기술로 신뢰를 얻게 된 결과의 측면이 가진 의의라고 할 수 있다. 먼저 기술을 통해 신뢰를 만든다는 것은 방법의 측면에서 주요한 전환을 보여준다. 그 전환 가운데 하나는 신뢰의 문제를 기술의 문제로 이해하고 그 해결 방법을 찾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정보의 문제와 신 뢰의 문제가 더욱 긴밀하게 연결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 에서 신뢰를 만드는 방법과 신뢰를 구성하는 요소에 대한 시각 전환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블록체인 기술로 신뢰를 얻게 된 결과의 측 면이 가진 의의는 무엇보다 ‘대규모의 구체적인 상호작용’의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점이다. 혈연선택이나 상호주의에 서 신뢰는 ‘소규모의 구체적인 상호작용’의 결과였다. 이 것은 대규모로 그 신뢰의 범위를 확장할 수 없는 분명한 한계를 가진다. 반면 집단선택에서 신뢰와 연대의 범위는 대규모로 확장할 수 있었지만, 상호작용은 간접적이고 추 상적인 것이 되어버렸다. 그 관계가 간접적이고 추상적인 것은 신뢰의 당사자가 중앙을 매개로 상호작용하기 때문이다. 신뢰의 범위를 대규모로 확장할 수 있었지만, 사람 과 사람의 관계는 직접적이지도, 구체적일 수 없었다. 그런데 ‘블록체인 기술’은 마침내 집단선택의 한계와 함께, ‘대규모의 구체적인 상호작용’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처럼 세 가지 의문에 답하는 것을 중심 내용으로 하는 이 논문의 한계 역시 분명하다. 블록체인 기술에 관한 대 부분 연구가 공학적 기술 자체나 그것의 현실적 응용과 적용의 측면에 주목한다면, 본 연구의 한계도 이 점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블록체인 기술로 만드는 신뢰의 현실적 적용이나 활용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한 것은, 분명 본 논문의 한계로, 차후 진행 되어야 할 연구의 주요 방향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렇듯 블록체인 기술은 신뢰를 만드는 새로운 기술이다. 그렇다고 섣부르게 ‘블록체인 기술’이 신뢰나 연대와 관련된 만병통치, 궁극의 기술이라고 쉽게 단언할 수는 없 다. 여전히 진화, 성장 과정 중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신뢰를 만들고, 그렇게 만든 신뢰를 기반으로 서로 연대하는 방법과 방향이 가진 한계와 문제를 블록체인 기술이 보여준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다. 여기에 더해 우리의 노력이 어디를 향해야 하고, 당면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그 가능성을 보여준다 면, 더욱 주목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블록체인 기술’은 이 가능성을 보여준다.

ACKNOWLEDGEMENT

This research was supported by the Bisa Research Grant of Keimyung University in 2020.

참고문헌

  1. Trust, NaverDictionary, https://ko.dict.naver.com/
  2. K. J. Rotenberg, "The psychology of TRUST", Stone pear tree, pp. 19-23, 2020.
  3. R. Axelrod, "The Evolution of Cooperation", Systemabooks pp. 127, 2020.
  4. C. R. Darwin, "The Origin of Species", Sciencebooks, pp. 198-199, 2019.
  5. M. A. Nowak, and R. Highfied, "Supercooperators", Sciencebooks, pp. 160, 2019.
  6. Jhkim, "Cultural Evolutionary Explanation of Human Ultrasociality," Korean Society for Cultural Anthropology, 48(1), pp. 25-28, 2015.
  7. Jycha, Hrkim, "Development of Altruism toward kin vs. non-kin: Evolutionary perspective," Korean Journal of Clinical Psychology, 27(2), pp. 315-371, 2008.
  8. How blockchain guarantees trust, https://hack-gogumang.tistory.com/4
  9. Ksmin, "Policy recommendations for the development of the domestic blockchain industry," KISA report, pp. 1-15, 2019.
  10. Dskim, "Digital Currency and Blockchain," Korea bank, Friday lecture VOD, 2016.
  11. DyLee, etc., "Blockchain core technology and domestic and international trends," Journal of KIISE, 35(6) pp. 22-28, 2017.
  12. Availability, https://search.naver.com
  13. Immutability, http://docs.bigchaindb.com/en/immutable-ko.html
  14. Yghong, and Mhsong, "Understanding blockchain convergence technology and the need for blockchain middleware," ITFIND Weekly technology trend, pp. 1-15, 2020.
  15. Gypark, "Evolving Value Platform, Blockchain 3.0," KSD Weekly technology trend, pp. 1-14, 2018.
  16. Ksmin, Gykim and Jspark, "Understanding and application of NFT technology, analysis of limitations," KISA Insight, 3, 2021.
  17. D. Desteno, "The truth about trust," Woongjin Thinkbig, pp. 29-30, 2018.
  18. P. Nurse, "What is life?," Kachibooks, pp. 149-150, 2021.
  19. T. Hobbes, "Leviathan," Dongsuhbook. pp. 131-132,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