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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tudy on the Hollywood Youth Film Director Damien Chazelle - Centering on (2014), (2016), (2018)

미국 할리우드 청년감독 데이미언 샤젤(Damien Chazelle) 연구 - <위플래쉬>(2014), <라라랜드>(2016), <퍼스트맨>(2018)을 중심으로

  • 강내영 (경성대학교 연극영화학부)
  • Received : 2021.06.10
  • Accepted : 2021.06.24
  • Published : 2021.07.28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plore the American Youth Film Director Damien Chazelle and his cinema world. Chazelle as a youth director directs three movies as (2014), (2016), (2018) in Hollywood, and represents youth directors in Hollywood. For this study, adopt two research methodologies which are 'Auteurism' and 'culture studies', and explore traits of esthetics, subject and context meaning by analyzing representative three movies. Lastly examines significance of his movies in Hollywood history. This study concludes that Chazelle is a 'Auteurism director of self-reflexivity' who has three things in common as 'narrative: success myth', 'mise-en-scene: Chazelle's world', 'self-reflexivity: Auteurism film directing'. Youth film director Chazelle is opening up the future of Hollywood as a 'Auteurism film of self-reflexivity' and the creative film directing of the youth generation.

이 글의 목적은 미국 할리우드의 청년감독 데이미언 샤젤(Damien Sayre Chazelle)의 작품세계를 분석하고 영화미학적 특징과 사회맥락적 의미를 규명하는데 있다. 샤젤 감독은 지금까지 <위플래쉬(Whiplash)>(2014), <라라랜드(La La Land)>(2016), <퍼스트맨(First Man)>(2018)을 연출하였으며, 미국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청년감독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 글에서는 '작가주의' 연구방법론을 도입하여 샤젤 감독의 전체 작품을 심층분석하였다. 이 연구를 통해, 샤젤 감독은 '서사구조: 성공신화의 변주', '독창적인 미장센의 반복: 샤젤 월드(Chazelle World)', '자기반영성의 주제: 작가의식'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자기반영적 작가주의 청년감독'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샤젤 감독은 창의적인 '자기반영적 작가주의 연출'로 할리우드의 관습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으며, 미국 청년세대의 욕망이 담긴 뉴 할리우드 청년영화(New Hollywood Youth Cinema) 시대를 열어가는 청년감독이라는 점에서 영화사적 의의가 있다.

Keywords

I. 서론

이 글의 목적은 미국 할리우드 청년 감독 데이미언 샤젤(Damien Sayre Chazelle)의 작품세계를 분석하는데 있다1. 샤젤 감독은 1985년 미국 로드아일랜드에서 태어났다. 2014년 29살의 젊은 나이에 장편데뷔작 <위플래쉬(Whiplash)>로 각종 영화제에서 수상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2016년에는 <라라랜드(La La Land)>로 미국 아카데미영화제 6개 부문을 수상하며 일약 세계적인 감독으로 부상하였으며, 2018년에는 인류 최초로 달착륙에 성공한 미국의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의 전기를 다룬 <퍼스트맨(First Man)>을 연출하였다. 샤젤감독은 20대부터 지금까지 세 편의 영화를 연출하였지만, 미국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신진 청년감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샤젤 감독은 창의적인 작가성을 바탕으로 미국 할리우드에 새로운 미학적 도전으로 할리우드의 미래를 열어가고 있는 청년 감독 중 한 명이다. 또한 미국 청년 세대의 욕망과 감수성을 대변하는 청년감독으로 할리우드의 새로운 세대교체와 변화를 상징한다는 점에서 이 연구의 시의성과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샤젤 감독과 그의 작품을 구체적으로 분석한 후, 주제 의식과 영화미학을 중심으로 미국의 사회현실과 맺는 컨텍스트적(context) 의미를 규명하고, 미국영화사에서 차지하는 영화사적 의의를 조망하는 것이 이 연구의 궁극적 목적이다.

이 연구를 위해 ‘자기반영적 작가주의’라는 연구방법론을 도입하여 심층분석을 시도한다. ‘자기반영적 작가주의’란 영화연출을 위한 서사구조, 미장센, 소재의 선정에서 감독이 작가의 위치에서 자신의 의중, 지시, 숙고를 반영한 영화적 특성을 말한다. 원래 영화에서 의자 기반 영성(self-reflexivity)이란 작가로서의 감독의 의사를 작품에 반영하거나, 혹은 영화의 제작과정을 스스로 노출함으로써 영화 자체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특성을 의미하는데, 이 글에서 도입하는 ‘자기반영적 작가주의’란 감독 자신의 의중과 숙고를 스스로 구성하면서 정체성을 획득하는 전자(前者)의 방식을 의미한다. 이러한 ‘자기반영적 작가주의’는 샤젤 감독의 영화철학과 예술세계가 어떻게 작품에 재현되고 있는지를 규명하는데 매우 유용한 방법론을 제공할 것이다. 이러한 ‘자기 반 영적 작가주의’ 방법론을 차용하여‘서사구조: 이야기의 원형’, ‘미장센: 스타일의 반복성’, ‘자기반영적 연출: 작가의식’이라는 세 가지 층위에서 샤젤 감독을 심층 분석할 것이다.

영화학계에서 샤젤 감독에 대한 선행연구는 저널리즘의 비평에 비해 많지 않은 편이다. 학술논문의 대부분은 <라라랜드>에 집중되어 있다. 주요 선행연구 성과로는 <라라랜드>의 자기반영성과 그 의미를 분석한 류재형의 논문, 감정노동과 심리 치유 관점에서 분석한 이정화의 논문, 스토리텔링 이론으로 분석한 허은희의 논문, 색채와 의상을 분석한 김수현 및 최성민의 논문, 영화음악을 분석한 하소현 및 민경원의 논문 등 <라라랜드>의 스타일 연구에 집중되어 있으며[1-6], 샤젤 감독의 다른 영화인 <위플래쉬>나 <퍼스트맨>에 대해서는 일부 비평문을 제외한다면 학술논문은 거의 전무한 편이다. 이 글의 직접적 연구주제인 샤젤 감독에 대한 본격적인 작가주의나 사회 맥락적 연구는 부분적으로 연구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기존 샤젤감독에 대한 파편적인 선행연구 성과를 참조하고 수용하면서, ‘작가주의’와 ‘문화연구’의 입장에서 샤젤 감독의 작품 전체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사회현실과 맺는 사회 맥락적 특징을 고찰하여 종합적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특히 이 글은 현대 영화의 자기반영성과 작가주의에 대한 정재형, 류재형, 노철환의 논문에서 성찰의 시발점을 얻었음을 밝힌다[1][7][8].

이 글은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론인 II장에서는샤젤 감독의 영화연혁, 대표작 3편에 대한 구체적인 작품분석, 미학적 특징과 사회 맥락적 의미에 대한 심층분석하고 있으며, 결론인 III장에서는 샤젤 감독과 작품이 갖는 영화사적 의의와 남겨진 문제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II. 본론

1. 영화연혁

데이미언 샤젤 감독은 1985년 1월 19일 미국 로드아일랜드 프로비던스(Rhode Island, Providence)에서 태어났다. 프린스턴대학교 교수이자 컴퓨터 과학자인 아버지와 뉴저지대학교 역사학과 교수인 어머니 사이에서 1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버나드샤젤(Bernard Chazelle)은 프랑스계 미국인이고, 어머니 셀리아 세이어(Celia Sayre)는 영국계 캐나다인으로 샤젤 감독은 다문화적 가정 속에서 자유롭고 풍부한 예술적 교양을 배우며 성장하였다.

샤젤 감독은 유년 시절 재즈 드러머를 꿈꾸었고, 한때 음악전문학교인 프린스턴고등학교에 진학하여 본격적인 드러머 수업을 받았지만 엄격한 선생님의 혹평과 가혹한 훈련을 견디지 못하고 중도에서 그만 두었다. 그의 이 체험은 훗날 첫 장편영화 <위플래쉬> 제작의 모티브가 된다. 재즈 드러머의 꿈을 접은 샤젤 감독은 하버드대학교 시각환경학과에 입학한다. 하버드 재학시절 기숙사 룸메이트이자 절친한 예술적 동료인 음악 전공의 저스틴 허위츠(Justin Hurwitz)를 만나게 되고, 허위츠는 현재까지 샤젤 감독의 영화에서 음악감독을 맡으며 대학시절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드럼과 음악을 사랑했던 샤젤 감독은 대학 시절 <라라랜드>의 시나리오를 구상하고 완성하였다. 대학을 졸업한 후 본격적인 영화연출을 위해 할리우드로 갔지만, 당시 무명 감독지망생에 불과한 그의 뮤지컬 영화 시나리오 <라라랜드>에 투자할 영화사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결국 <라라랜드> 제작은 훗날로 미뤄지게 되고, 대신 2009 년 82분 분량의 뮤지컬 영화 <가이 앤 매들린 온 어 파크 벤치(Guy And Madeline On A Park Bench)>의시나리오와 연출을 맡았다.

2013년에는 에드 개스 도넬리(Ed Gass-Donnelly) 감독의 <라스트 엑소시즘: 잠들지 않는 영혼(The Last exorcism part 2)>, 유지니오 미라(Eugenio Mira) 감독의 <그랜드 피아노(Grand Piano)>의 시나리오를 썼으며, 2014년 29살에 자신의 첫 장편영화 데뷔작 <위플래쉬>의 연출과 시나리오를 맡으며 실력있는 신인으로 주목받았다. 장편영화 <위플래쉬>는 뛰어난 시나리오로 영화계의 주목을 받았지만, 사실 이 영화는 제작비 문제로 단편영화부터 먼저 만들어졌다. <위플래쉬> 의 장편영화 시나리오를 보았던 ‘라이트 오브 필름(Right of Way Films)’ 영화사와 ‘블럼하우스 프로덕션(Blum house Productions)’은 샤젤 감독에게 장편영화 컨셉용(proof-of-concept)으로 18분짜리 단편영화 연출을 먼저 제안했다. 2013년 완성된 이 단편영화는 그해 선댄스영화제의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하며 제작비를 지원받았고, 마침내 2014년 장편영화 <위플래쉬>로 완성되었다. 이 영화는 2014년 도빌 아메리카영화제 그랑프리를 비롯하여, 2015년 미국 아카데미영화제에서 5개 부문의 후보로 올라 남우조연상(J.K. 시몬스), 편집상, 음향상 등 3개 부문을 수상하며 평단의 찬사를 받았고, 샤젤 감독은 떠오르는 신예 감독으로 주목받았다.

2016년에는 댄 트라첸버그(Dan Trachtenberg) 의스릴러영화 <클로버필드 10번지(10 Cloverfield Lane)>의 시나리오를 집필하였고 뮤지컬 영화영화 <라라랜드(La La Land)>를 연출하였다. <라라랜드>는 2017년제 74회 골든글로브에서 전체 7개 부문을 모두 수상하는 성과를 거두었고, 미국 아카데미영화제에서도 역대 최다인 14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 감독상, 미술상, 여우주연상, 음악상(저스틴 허위츠), 주제가상(City Of Stars), 촬영상 등 6개 부문을 수상하였다.

2018년에는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의 실화를 다룬 <퍼스트맨>을 연출하여, 2019 년 골든글로브 음악상과 아카데미영화제 시각효과상을 수상하였다. 현재 샤젤 감독은 차기작으로 1920년대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 시대로 넘어가는 과거 미국 할리우드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는 영화 <바빌론(Babylon)>을 준비 중이다.

표 1. 데이미언 샤젤 감독의 영화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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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구체적 작품분석

1) <위플래쉬(Whiplash)>(2014) : “변증법적 반전의 서사구조”

이 영화는 2014년 샤젤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이 영화를 시퀀스(sequence)로 나눈 서사의 분절은 아래와 같은 12개이다.

<발단>: ①앤드류가 드럼 연습하는 곳에 플레처 교수가 온다. ②플레처가 앤드류를 찾아와 픽업한다. <전개>: ③앤드류가 니콜에게 데이트를 신청한다(삽입 씬). 플레처는 연습 중 트럼본 주자를 쫓아내고, 앤드류에게의자를 집어 던지고 뺨을 때리고 욕설을 퍼붓는다. ④ 앤드류는 플레처의 독설에 상처받으면서도 손가락에 피가 나도록 연습한다. 앤드류와 니콜은 피자집에서 데이트 한다(삽입 씬). <위기>: ⑤재즈경연대회에서 드러머가 악보를 잃어버리고 암기를 하던 앤드류가 메인 드러머로 올라선다. ⑥앤드류는 아버지 지인들과 식사 자리에서 음악에 대한 몰이해를 독설로 표출한다. ⑦플레처 밴드에 새 드러머가 영입되어 경쟁한다. 앤드류는니콜에게 “꿈을 이루기 위해, 사랑이 방해가 되므로” 결별을 선언한다.(삽입 솟) 코널리에게 메인 자리를 빼앗긴 앤드류는 폭력적 성향으로 변한다. ⑧플레처는 제자였던 트럼펫 연주자 션 케이시가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비보를 제자들에게 전한다(실제는 불안증 등으로 목매어 자살했음). 플레처는 3명의 드러머(앤드류, 태너, 코널리)를 혹독하게 경쟁시키고 학대에 가까운 연습을 시키고, 결국 앤드류가 메인 자리를 따낸다. <절정>: ⑨더넬런 경연대회의 날, 앤드류는 강박증 속에 지각하고, 플레처의 독설 속에 스틱을 찾으러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한다. 머리에 피를 흘리면서도 경연에 참가한 앤드류를 플레처가 외면하자 결국 앤드류는 분노가 폭발하여 플레처에게 달려들다가 쫒겨난다. ⑩앤드류는 플레처의 제자였던 션 케이시가 교통사고가 아닌 자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고발자의 증인으로 참석하고, 자신의 방에서 드럼을 치운다. <결말>: ⑪시간이 흐른 어느 여름 날, 우연히 술집을 지나다 학교에서 쫒겨난 플레처가 피아노 연주하는 것을 보게 된다. 플레처는 앤드류를 알아보고, JVC밴드 드러머 자리를 제안하고 카네기홀 연주 참가를 제안한다. 앤드류는 니콜이 보고 싶어 전화하지만 이미 다른 남자친구가 생겼다. ⑫카네기홀연주회, 앤드류는 무대에 오르지만 공연 악보는 연습했던 카라반이 아니라 다른 곡이다. 플레처의 계략에 빠져, 앤드류는 망신을 당하고 무대에서 내려온다. 앤드류는 잠시 머뭇거린 뒤 다시 무대에 올라 드럼을 두드리며 플레처의 지휘 없이 밴드의 합주를 유도한다. 밴드연주가 따라오고, 플레처도 지휘로 합세하게 되며 최고의 연주가 흐른다. 플레처는 직접 드럼을 잡아주며 두 사람은 눈으로 교감하며 완벽한 연주를 마친다.

(1)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적 서사구조 : <위플래쉬> 의 서사구조(narrative)는 점강법적 서스펜스와 변증법적 반전이라는 독특한 특징을 보인다. 영화는 앤드류와플레처 교수라는 두 인물의 충돌과 갈등을 시간적 배열과 선형적 플롯을 따라 발단(①, ②), 전개(③, ④)를 거쳐 위기(⑤, ⑥, ⑦, ⑧)와 절정(⑨, ⑩)으로 점점 더 고조되어 가는 점강법적 서스펜스를 구축하다가, 마지막 결말(⑪, ⑫)에서 변증법적 반전 속에 최고조의 절정으로 엔딩하는 독특한 서사구조를 가지고 있다.

드럼 연주자로 성공하고 싶은 앤드류에게 플레처 교수는 자신의 욕망을 채워줄 최고의 스승이다. 반면 플레처 교수에게 앤드류는 자신의 밴드 성공을 위해 최고 드러머로 만들어야 할 교육의 대상이다. 이러한 두 욕망의 만남은 가학적 주체(플레처)와 피학적 객체(앤드류)라는 주인과 노예의 인정 투쟁으로 귀결된다. 플레처 교수는 앤드류를 착취하는 주인이자 가학적 주체로 상승하고, 결손가정의 결핍 속에 음악적 성공과 인정 투쟁에 집착하는 앤드류는 가스라이팅(gaslighting)의 대상이자 노예와 같은 피학적 객체로 하강한다.

플레처 교수의 폭력을 동반한 연습은 방편으로서의 교육이 아니라 인격적 말살에 가깝다. “고 자 새끼처럼 힘이 없다”, “니 남자친구 거시기가 아니다, 흥분하지 마라”, “쓰레기 유태인 새끼”, “무식한 아일랜드 촌놈”, “한심하고 답없는 호모야”와 같이 입에 담기조차 힘든 욕설을 퍼붓고, 제자의 뺨을 때리고 악기를 집어던지는 가학적 폭력을 행사하며 제자들을 사실상 노예 상태로 다룬다. 반면 앤드류와 제자들은 인정을 받기 위해 스스로의 주체성보다는 주인(타자)에 의존하고 순종하는 노예적 캐릭터에 순응한다. 드러머로 성공하기 위해 세이 퍼 음악학교에 진학한 19살의 앤드류는 엄마가 부재(不在)한 결손가정에서 외롭게 자랐으며, 음악적 성공으로 결핍된 인생을 보상받으려는 집착을 보이는 내성적 인물이다. 성공에 대한 집착은 플레처 교수의 폭력에 순종하며 인정받기 위한 집착으로 악화된다. 플레처 교수의 일상적 폭력과 비인격적 말살 태도를 순순히 받아들이고 내면화하는 것은 자신의 성장환경과 성공에 대한 강박증 때문으로 읽힌다.

성공에 집착할수록 앤드류의 정신세계와 일상은 황폐해진다. 앤드류는 아버지 지인들 가족과의 식사 자리에서 독설을 퍼붓는 아웃사이더 성향을 보이고, 성공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사랑하는 여학생과 결별을 선언한다. 밴드부에 새 드러머가 영입되면서 앤드류의 이성은 완전히 망가지고 폭력적 괴물로 돌변한다. 밴드부 또한 플레처 교수의 폭력적 양태를 그대로 닮아간다. 자신만의 성공에 집착하며 인정 투쟁의 강박증 속에 상대를 증오와 폭력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괴물집단이 된다. 앤드류가 성공과 인정 투쟁에 집착할수록 플레처 교수의 욕설, 폭력, 비인간적 모욕에 순종하는 피학적 객체 이자 노예 상태로 전락한다. 반면 플레처 교수는 최고의 밴드를 빌미로 비인격적 폭력과 비윤리적 언행으로 군림하는 가학적 주인의 위치를 확립한다.

이러한 플레처 교수와 앤드류의 관계는 노동(드럼)을 매개로 헤겔(Hegel)이 말한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Dialectic of master and slave)’ 상태로 대립한다. 헤겔은 『정신현상학』 제4장(IV. 자기확신의 진리) ‘1. 자기의식의 자립성과 비자립성: 지배와 예속’에서 ‘나(I)’를 스스로 의식하는 근거인 ‘자기의식’이 똑같은 ‘자기의식’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균등하지 않은 상태라는 점을 지적하며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 개념을 제시한다. 헤겔에 따르면, 각자의 자기의식이 진정한 ‘나’의 자기의식이 되기 위해서는 ‘타인이 나에게 하는 행위’가 아닌 ‘나 스스로 하는 행위’가 되어야 한다. 즉, 타자의 행위와 자기 행위 사이의 관계에서 ‘나 스스로 하는 행위’가 압도할 때 비로써 나의 것은 확립된다. 따라서 헤겔은 “자기 자신의 목숨을 건”, “생사를 건 투쟁”을 통해 ‘자기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나’를 입증받을 때 진정 한자기의 식은 확립되며, 이러한 다른 자기의식과의 매개를 거쳐 ‘자기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나’를 확립하고 사물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하게 되는데, 이런 형태의 자기의식을 ‘주인(master)’으로 정의한다. 반면 인정 투쟁에서 자기의식으로서의 자립성을 인정받는 데 실패한 비자립적 상태의 존재를 ‘노예(slave)’로 명명한다. 그런데 헤겔에 의하면 주인과 노예의 상태는 영원불변의 것이 아니라 두 관계의 내재(內在)된 모순에 의해 궁극적으로 전도(轉倒)된다. ‘주인’은 그 본성상 스스로 생산과 노동에 종사하지 않고 ‘노예’를 통해 간접적으로 사물을 단지 ‘향유’할 뿐이며, 반면 ‘노예’는 사물이 대상으로서 갖는 자립성을 체험하는 가운데 사물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하면서 그 스스로 자립적 의식을 갖게 된다. ‘주인’ 은 자신의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 ‘노예’라는 타자에 의존하게 되고, ‘노예’는 노동을 통해 자립적 의식을 획득하면서, 그 과정 속에서 ‘주인과 노예의 의식상태’는 역전된다.

“주인에게 봉사할 때 독자적인 존재는 타자로서 자기와 맞서 있다. 말하자면 주인에 대한 공포 속에서 스스로 독자적인 존재임이 몸소 깨우쳐지는 것이다. 사물을 형성하는 가운데 스스로가 독자적 존재라는 것을 깨우치면서 마침내 그는 완전무결한 독자존재임을 의식하기에 이른다. 타율적으로밖에는 느껴지지 않는 노동 속에서 오히려 자력으로 자기를 재발견하는 주체적인 의미(eigner Sinn)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9].

주인과 노예는 역전이 교차하는 불안정한 관계이며, 내재된 모순에 의해 인정 투쟁의 과정을 거쳐 새로운 지양점으로 나아가는 변증법적 상호관계이다. 결국 앤드류는 플레처 교수와의 관계에서 타자에 의존하는 자기소외에서 벗어나 스스로 주체가 되는 변증법적 자기 확립 과정으로 나아간다. 앤드류의 주체성은 강박증의 임계점에서 폭발한다. 앤드류는 자신에 대한 모욕과 폭력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플레처 교수에게 달려들고 밴드에서 제명된다. 플레처 교수 또한 비윤리적 교육행태로 해직되어 술집을 전전하는 거리의 음악가로 전락한다.

두 사람의 충돌과 전락은 새로운 변증법적 생성 점에서 다시 만난다. 그것이 <위플래쉬> 서사구조의 가장 큰 특징인 변증법적 반전구조와 결말 부분으로 귀결된다. 주인의 위치를 상실한 플레처 교수는 앤드류에게새로운 공연 제안을 하며 복수의 덫을 깔고, 그것을 모르는 앤드류는 두 사람의 새로운 관계를 기대하며 다시 충돌 지점으로 나아간다. 공연이 열리는 날, 플레처 교수는 예정된 연주 악보를 바꿔치기하며 앤드류를 망신 주는데 성공한다. 이것이 첫 번째 반전이다. 앤드류는모든 것이 무너진 그 순간에 아무도 예상치 못한 용기와 실존적 자존감으로 연주를 주도하며 공연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낸다. 이것이 두 번째 반전이다. 앤드류는 혼신의 힘으로 밴드를 주도하며 그 동안 보여주지 못한 한계를 넘는 드럼 연주를 선보인다. 앤드류가 주도하는 마지막 <카라반> 연주에서 두 사람은 야릇한 미소를 주고받으며 새로운 경지의 상호관계를 형성하며 끝난다. 이것이 마지막 세 번째 반전이다. 가학적 주체인 플레처 교수와 피학적 객체인 앤드류는 주인과 노예의 대척점에서 충돌하고 폭발하는 3단계의 변증법적 반전을 거듭하며 새롭게 고양된 예술의 경지를 생성한다. 이러한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적 반전이야말로 영화의 몰입을 극대화하는 서스펜스로 작동하며 이 영화의 가장 두드러진 미학적 특징이 된다.

앤드류와 플래처 교수의 필연적 충돌이 담긴 결말은라깡의 욕망이론을 통해 해독할 수 있다. 어머니가 부재한 편부 가정에서 성장한 앤드류는 정상적인 주체를 형성하지 못한 거울 단계에 머물러 있으며, 플래처 교수를 만나 성공과 인정이라는 주체적 욕망을 추구하지만, 주체의 욕망과 타자의 욕망을 구별하지 못하고, 라깡이말한 ‘타자의 욕망의 욕망’ 속에 갇히게 된다[11]. 반면 플레처 교수는 자신의 욕망에 갇힌 앤드류의 비정상적 주체를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한다. 비정상적 주체로서의 앤드류의 욕망은 플레처 교수의 욕망으로 대체되고, 마지막 연주에서의 충돌과 반전은 ‘타자의 욕망의 욕망’에 빠진 앤드류의 도달할 수 없는 욕망을 광기로 보여주는 섬뜩한 결말 장면이다.

(2) ‘충돌의 몽타주’와 반전구조의 완성 : 변증법적 반전구조는 마지막 신(scene) <카라반>을 연주하는 두 인물의 ‘충돌의 몽타주’를 통해 확연하게 드러난다. 에이젠슈타인(Eisenstein)은 ‘영화의 원리와 표의문자’에서 독립된 쇼트와 쇼트의 충돌로 연결되는 ‘충돌의 몽타주(montage of collision)’가 관객에게 심리적 효과를 주는 영화원리라고 말하고 있다[10]. 영화의 마지막 신에서는 ‘충돌의 몽타주’를 통해 서사구조의 반전을 극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밴드의 연주 장면은 플레처 교수의 클로즈업 시선과 동작을 중심으로 따라가는 특징이 있었지만, 마지막 신에서는 카메라는 앤드류의 시선과 동작을 따라가기 시작한다. 플레처 교수의 함정에 빠져 망신을 당한 앤드류가 다시 올라와 돌연 드럼을 두드리며 <카라반> 연주를 주도하는 장면부터 카메라는 앤드류의 시선을 따라 움직인다. 앤드류의 드럼 신호에 맞춰 밴드부 전체가 연주하고, 플레쳐 교수가 반신반의하며 동조하면서, 앤드류의 드럼 연주 장면을 1초 간격으로 클로즈업, 부감, 풀숏 등 다양한 사이즈와 앵글로 집중적으로 부각한다.

곧이어, <장면1>과 같이, 플레처 교수는 앤드류의 주도에 호응하여 두 사람이 교감하며 플레쳐 교수 A(미디엄숏) → 화면전환 A(패닝) → 앤드류A(풀숏) → 플레셔교수A-1 → 화면전환 A-1 → 앤드류A-1 순서로 이어지는 반복을 4차례 거친 후 카라반 연주가 끝난다. 이 장면을 게기로 카메라의 중심인물은 플레처 교수가 아니라 앤드류로 바뀐다.

<장면1>

마지막 엔딩장면은 주인과 노예의 상호관계가 완전히 전도된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지휘자인 플레처 교수가 연주의 피날레 신호를 보내지만, 앤드류는 계속 드럼을 두드리며 스스로 공연의 마무리를 주도한다. “앤드류 뭐하는 거냐”라는 말에 “신호줄께요”로 응수하며, 앤드류는 자신이 주도하여 피날레를 장식한다. 마지막 연주는 <장면2>와 같이, 앤드류(클로즈업) → 플레처 교수(클로즈업) → 앤드류(풀숏) → 피가 튀는 드럼(인서트) →플레처 교수의 놀라는 표정(익스트림 클로즈업) → 앤드류의 미소(익스트림 클로즈업) → 플레처 교수의 미소(익스트림 클로즈업) → 플레처 교수가 앤드류를 부각하는 장면(풀숏) → 앤드류(엔딩장면)로 이어지는 충돌의 몽타주로 끝난다.

<장면2>

플레처 교수가 앤드류를 향해 치켜세우듯 손짓하고앤드류가 피날레를 장식하는 엔딩장면을 통해 비로써 이 공연의 주인공은 플레처 교수가 아니라 앤드류라는 역전된 상호관계를 명확히 드러낸다.

샤젤 감독은 자기소외 상태인 앤드류가 인정 투쟁을 거쳐 비로써 새로운 경지의 자기 확립의 생성점으로 나아가는 주제의식을 에이젠슈타인의 ‘충돌의 몽타주’로 표현한다. 컷과 컷의 충돌을 통해 서사구조의 서스펜스를 최고조의 절정으로 끌어올리면서, 동시에 등장인물의 위치를 역전시키는 변증법적 서사구조의 반전 미학을 구축한 것이다.

자신의 예술적 욕망을 위해 제자들의 인격을 말살하는 플레처 교수는 파시즘적 리더로 읽힌다. 심벌즈 주자가 찰리 파커를 향해 악기를 집어 던졌기 때문에 세계적인 연주자가 되었다는 플레처 교수의 궤변은 “한계를 넘어선 연주자로 만들고 싶다”는 예술지상주의적 교육철학으로 읽힐 수 있지만, 타인과의 공감을 지향하는 예술이 타인에게 상처를 강요하는 폭력적 교수법을 통해 완성된다면 그것 자체가 예술이라고 보긴 어렵다. 영화에서 자주 언급되는 찰리 파커(Charlie Parker, 1920~1955)는 미국의 재즈 알토색소폰 연주자이자 작곡가이다. 15세 때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1941년 뉴욕으로 진출하여 길레스피(John Birks Gillespie)와 함께 미국에서 유행한 빕밥(Bebop) 재즈를 창시하였고, 모던재즈의 기반을 마련했으며, 주요 작품으로 <Now's the Time>, <Billie's Bounce>, <Anthropology> 등이 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파커의 애칭 ‘버디’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빠른 연주가 새의 비행을 연상시킨다는 설, 치킨을 몇 마리 먹던 식성을 빗댄 것이라는 설 등이 그것이다. 영화에서 모티브로 수차례 언급되는 심벌즈 사건은 1937년 캔자스시티 리노 클럽에서 벌어진 에피소드를 말한다. 당시 파커의연주에 화가 난 드러머 조 존스가 자신의 심벌즈를 집어던져 파커의 목이 잘릴 뻔 했고, 이 해프닝 이후 파커는 혹독한 연습으로 최고의 연주자가 되었다고 플레처 교수는 말한다. 그러나 조 존스는 파커의 발밑으로 심벌즈를 던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플레처 교수는 이를 곡해하여 그럴듯하게 꾸민 것이다.

샤젤 감독은 플레처 교수와 앤드류의 성공에 대한 욕망을 가학적 주체로서의 주인과 피학적 객체로서의 노예라는 변증법적 상호관계 속에서 탐색하면서, 과연 예술가의 탐닉과 욕망이 인간성을 황폐화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묻고 있다. 영화 제목인 ‘위플래쉬’는 행크 레비(Hank Levy)의 곡으로 행크 레거시 밴드(Hank Levy Legacy Band)의 연주로 유명하다. ‘위플래쉬’가 재즈 곡명 외에 ‘채찍질’이라는 뜻을 가진 이중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점도 상징적으로 읽힌다.

2) <라라랜드(La La Land)>(2016) : “자기반영적 작가주의 뮤지컬영화”

이 영화는 2016년 샤젤 감독이 시나리오와 연출을 직접 맡은 두 번째 장편영화이다. 영화의 서사구조는 프롤로그를 포함한 다섯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으며, 시퀀스(sequence)로 나눈 서사의 분절은 아래와 같은 10개이다.

<발단>: ‘프롤로그’ ①프롤로그: LA 진입로 도로 위에 꽉 막힌 차량 행렬, 원숏 원씬으로 일군의 도로 위 남녀들이 춤과 노래를 부른 후 다시 현실 장면으로 돌아온다. 차창으로 우연히 스치듯 만난 미아와 세바스챤. ②미아, 공동 주거 생활하며 파티장에 가서 어울린다. 우연히 귀가길에 피아노 선율에 이끌려 바에 들어간다. 연주하는 세바스찬을 보며 길거리에서 스친 인연을 떠올린다. ③세바스찬, 바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세바스찬은 자기가 좋아하는 재즈 음악을 고집하다가 사장에게 해고당한다. <전개>: ‘봄(Spring)’. 사랑의 시작. ④미아, 파티장에서 키보드를 치는 세바스찬과 우연히 재회한다. 두 사람은 파티장을 나와, 해질녘 언덕의 가로등 아래에서 탭댄스 신발로 갈아 신으며 노래에 맞춰 탭댄스를 춘다. ⑤세바스찬, 미아가 일하는 카페로 찾아온다. 세바스찬은 미아에게 재즈의 위대성을 말하며 “시티 오브 스타즈”를 들려준다. 미아는 계속 오디션에 실패한다. ⑥세바스찬은 영화 <이유 없는 반항>을 같이 볼 것을 제안한다. 미아는 남자친구 그렉과 저녁 식사 자리에 나가지만, 마음은 극장에 가 있다. 마침내 미아는 세바스찬이 기다리고 있는 극장으로 가고, 두 사람은 그리피스천문대에서 별을 구경하고 별 속에서 키스한다. <위기>: ‘여름(summer)’. 사랑의 불안. ⑦미아와 세바스찬은 동거 생활을 시작한다. 가난한 현실 속에 세바스찬은 생계를 위해 ‘메신저밴드’에 키보드 연주자로 참여한다. 두 사람은 냉혹한 현실과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조금씩 갈등한다. 미아는 오디션에 계속 떨어지고, 세바스찬은 자신의 음악 세계와 다른 밴드에서 힘겹게 일한다. <절정>: ‘가을(fall)’. 사랑의 이별. ⑧미아는 공연을 준비하고, 세바스찬은 공연 투어를 준비하면서 두 사람은 감정이 폭발하고 다투게 된다. 세바스찬은 밴드 촬영 일정 때문에 미아의 공연에 못가고, 미아는 공연에 실패하고 혹평하는 소리를 엿듣는다. 세바스찬이 뒤늦게 극장으로 달려가지만, 미아는 “끝났어”라고 말하며 고향으로 간다. ⑨세바스찬은 미아가 캐스팅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러 미아의 고향에 간다. 미아의 캐스팅은 프랑스 파리에서 7개월 촬영하는 내용이다. 캐스팅 인터뷰에서 파리에 대해 말해보라는 제작자의 말에, 미아는 세느강에 빠져 ‘우리를 어디로 이끌지 몰라’라는 노래를 부른다. 두 사람은 다시 그리피스천문대에서 서로의 미래에 대해 솔직한 말을 나눈다. <결말>: ‘겨울(winter)’. 재회와 추억. ⑩5년 후. 미아는 스타 연기자가 되어, 성공의 기쁨을 만끽한다. 집에는 부유한 남편과 딸이 있다. 미아는 남편과 공연을 보러가다가 우연히 재즈바에 간다. 그곳은 미아가 세바스찬에게 그려주었던 재즈바 ‘Seb’s’ 간판이다. 재즈바의 사장이 된 세바스찬은 미아를 발견하고 예전 자신들의 노래를 연주하며, 미아와 결혼하여 아이를 키우는 행복한 상상에 빠진다. 세바스찬은 피아노 연주를 마치고, 멀리서 서로 눈을 마주치고 웃음을 보인다. ‘cinerama made in Hollywood’ 엔딩타이틀이 오른다.

(1) 음악이 서사구조를 주도하는 뮤지컬 영화 : 이 영화는 ‘프롤로그’(시퀀스①, ②, ③), ‘봄’(시퀀스④, ⑤, ⑥), ‘여름’(시퀀스⑦), ‘가을’(시퀀스⑧, ⑨), ‘겨울’(시퀀스⑩)이라는 소제목을 따라 발단(프롤로그), 전개(봄), 위기(여름), 절정(가을), 결말(겨울)이 명확하게 구분되는 서사구조를 보여준다. ‘봄’은 만남과 사랑의 시작이고, ‘여름’은 사랑의 열정이 타오르는 기간이며, ‘가을’은 사랑의 이별과 헤어짐, 그리고 ‘겨울’은 재회와 추억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는 배우의 꿈을 이루기 위해 LA로 들어오는 여주인공 미아의 시선과 욕망을 따라간다. 영화 속 실제주인공이자 서정적 화자(話者)는 미아이다. ‘봄’은 미아가 세바스찬을 만나 새로운 인생이 열리는 생성의 시간이다. 두 사람은 그리피스 천문대 언덕에서 사랑을 확인한다. ‘여름’은 뜨거운 사랑의 열정을 상징한다. 두 사람은 동거를 하며, 행복과 냉혹한 현실이 교차하는 열정의 시간을 갖는다. 성공을 향한 미아와 세바스찬의 길은 같은 듯 다르다. 배우는 주어진 배역에 맞춰 빠져들어야 하지만, 재즈 연주자는 자신만의 고유한 예술세계를 견지해야 성공할 수 있다. 생계를 위해 자신의 예술세계와 맞지 않은 밴드에서 키보드 연주자로 일하는 세바스찬과 번번이 오디션에서 떨어지는 배우지망생 미아의 이별은 이미 예정된 결말을 안고 있다. ‘가을’은 마침내 찾아온 이별의 시간이다. 미아는 연이은 실패와 세바스찬과의 갈등에 지쳐 낙향하고, 세바스찬은 미아의 프랑스 파리 캐스팅 소식을 전하러 다시 미아에게 간다. 결국 두 사람은 성공을 위해 각자의 길로 떠난다. ‘겨울’은 씁쓸하고 달콤한 재회와 추억의 시간이다. 5년 후, 미아는 부유한 남편과 딸이 있고, 그토록 선망하던 스타 배우로 성공한다. 우연히 남편과 함께 ‘Seb’s’ 간판이 걸린 세바스찬의 음악클럽에서 잠시나마 추억과 회상에 빠진다. 이 영화의 서사구조는 꿈과 성공을 향해 로스앤젤레스를 찾은 미아와 세바스찬의 만남(발단-‘프롤로그’) → 사랑(전개-‘봄’) → 갈등(위기-‘여름’) → 이별(절정-‘가을’) → 재회(결말-‘겨울’)로 이어지는 사랑의 여정을 5막구조의 계절을 따라 보여준다.

이 영화는 미국 고전적인 뮤지컬 장르의 전형적인 양식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 뮤지컬영화의 서사구조에서 가장 특징적인 양식은 음악의 활용과 기능에 있다. 뮤지컬영화는 유럽의 오페레타(operetta)와 보드빌(vaudeville)에서 유래한 노래와 춤으로 구성된 영화장르로, 1927년 세계 최초의 사운드영화인 <재즈싱어>를시작으로, 1950년대 할리우드에서 번성기를 구가하였고, <맘마미아>(2008), <레미제라블>(2012), <겨울왕국>(2013), <미녀와 야수>(2017) 등 최근까지 대중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할리우드 장르 영화이다. 전통적으로 뮤지컬영화는 테마음악을 중심으로 인물의 심리와 느낌을 전달하는 양식을 갖고 있으며, 샤젤 감독 또한 서사구조의 전개를 테마음악이 주도하는 전통 뮤지컬 양식을 계승하고 있다. 이 영화에는 총 10개의 시퀀스에 12곡의 선율과 가사가 담겨 있으며, 각 시퀀스마다 음악 한 곡이 흐르면서 화려한 춤과 로맨틱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각 시퀀스 속 음악의 선율과 가사 내용은 그대로 서사구조 각 단계별 주제와 연결된다. ‘음악이 말을 하는’, ‘음악이 스토리텔링을 끌고 가는’ 전형적인 뮤지컬장르의 관습을 따르고 있다.

<라라랜드>의 서사구조에서 가장 특징적인 음악적 장치는 전주곡(prelude)과 테마음악의 선행적 배치이다. 전주곡과 테마음악이 선행적으로 재현되면서 봄, 여름, 가을, 겨울로 이어지는 주인공 남녀의 만남, 사랑, 이별, 재회라는 총 5막 구조의 단계별 주제를 이끌어 간다. 전주곡이란 원래 오페라와 같은 음악극에서 극 전체 내용을 미리 요약하고 분위기를 암시하는 역할을 수행하는데, 이 영화의 대표적인 사례가 청춘남녀의 성공과 사랑으로의 질주를 암시하는 오프닝곡 ‘Another day of Sun’이다. ‘봄’이라는 자막과 함께 팝가수 아하(A-ha)의 ‘Take on me’가 흘러나오며 두 남녀의 새로운 만남과 사랑을 암시하며, ‘여름’이라는 자막 뒤에 곧바로 스윙재즈풍의 ‘Summer Montage’가 흘러나오며 사랑의 열정을 은유한다.

한편 테마음악은 인물의 성격과 내적 심리상태를 대변하거나, 특정한 사건 상황에 대한 암시와 묘사, 그리고 영화의 흐름을 유추할 수 있는 분위기를 제공하기 위해 극적 구조(Dramatic structure) 속에서 형성된다. 오디션에 실패하는 장면에서 ‘Audition’이라는 음악이 흐르며, “꿈을 꾸는 사람들을 위해 건배를 / 그들이 비록 어리석어 보일지도 모르지만 / 아픔을 느끼는 마음들을 위해 건배를 / 우리가 만드는 엉망인 상태에 건배를”이라는 가사 속에 꿈과 성공을 향한 주인공의 욕망을 테마음악이 대신 표현하고 있다. 특히 2017년 아카데미상 음악상을 수상한 메인 테마곡 ‘시티 오브 스타즈(City of Stars)’는 다양한 변용과 편곡으로 서사 구조 안에서 다양한 주제와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기능을 수행한다. 2016년 유니버셜뮤직사에서 발간한 공식 앨범에는 저스틴 허위츠가 작곡한 테마음악 ‘시티 오브 스타(City of Stars)’를 비롯한 30곡의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 중 메인테마곡인 ‘시티오브 스타즈’는 4번, 12번, 18번, 30번 트랙에 다양한 변주곡 형태로 수록되어 있다. 메인테마음악의 가사인 “별들의 도시 / 나만을 위하여 반짝이는 것일까요? / 별들의 도시 / 내가 볼 수 없는 것들이 참 많아요 / 누가 알 수 있을까요? / 이것이 놀랍고 새로운 사랑일지 혹은 내가 이룰 수 없는 새로운 꿈일지”는 사랑과 성공을 향한 두 인물의 욕망을 몽환적으로 재현하며, 다양한 변주와 편곡으로 반복된다. 사랑을 시작할 때는 서정적인 피아노 선율로 표현하지만, 갈등과 이별의 장면에서는 느린 템포로 편곡된 슬픈 음조로 등장인물의 내적 심리상태와 감정의 변화를 표현한다. 메인 테마곡이 등장하는 6개의 장면은 만남, 사랑, 이별, 추억이라는 영화의 서사구조를 이끌어 가고 있다[5].

이처럼 전주곡과 테마음악은 마치 <스타워즈>에서 다스베이더의 등장 장면, <죠스>에서 죠스의 출몰 장면, <중경삼림>에서 ‘마마스 앤 파파스(The Mamas & The Papas)’의 “캘리포니아 드리밍(Californian Dreamin’)” 처럼 반복적인 사운드의 선행(先行)으로 서사구조의 모티브로 활용하는 라이트모티프(Leitmotif, 유도동기)로 기능하고 있다.

이 영화의 음악감독은 샤젤 감독의 대학 동기이자 절친한 예술동료인 저스틴 허위츠(Justin Hurwitz)가 맡고 있다. 허위츠는 1985년생으로 작가인 아버지와 발레리나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자유로운 예술적 분위기에서 성장하고 교육받았다. 허위츠는 하버드대 재학시절 인디밴드 ‘체스터 프렌치(Chester French)’에서 샤젤 감독을 만난 이후 룸메이트로 지냈으며, 샤젤감독의 졸업 작품부터 지금까지 샤젤 감독의 전 영화의 음악감독을 담당하고 있다. 허위츠는 인터뷰에서 “작곡가로서 음악이 영상이나 대본만큼 스토리텔링을 하는 아주 큰 도구가 되는 건 큰 즐거움이에요. 감정적으로 솔직하고, 주인공의 이야기를 잘 표현해내는 곡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며 자신의 영화음악의 방향성을 언급한바 있다[12].

이와 같이, 샤젤 감독은 오랫동안 자신의 음악 세계와 공감해온 허위츠와 함께 테마음악을 라이트모티프로 활용하면서, 등장인물의 감정과 내적 심리상태를 드러내고, 극의 분위기와 정서를 자극하고 고조시키면서, 음악이 서사구조의 이야기를 주도하는 뮤지컬장르를 연출하고 있다.

(2) 자기반영의 복고풍 뮤지컬 영화 : 샤젤 감독은 고전 뮤지컬영화에 대한 자신의 개인적 취향과 애정을 자기 반영하며, 복고풍의 영화 양식을 재현하였다. <라라랜드>는 고전 할리우드 뮤지컬 양식을 영화 속에 차용하며 ‘과거 할리우드에 대한 러브레터’와 같은 자극적인 향수의 미학을 도입하였으며, 친숙한 장르적 스타일로 상업적으로도 크게 성공하였다. IMDB 통계에 의하면, <라라랜드>는 3천만달러의 제작비로 만들어졌으며, 북미 시장에서 1억 5천만 달러, 전 세계에서 4억 5천만 달러의 박스오피스를 기록하였다[12]. [그림 1]과 같이 영화의 첫 장면에서 1950년대 할리우드 뮤지컬영화에서 사용하던 2.55:1 화면비율의 시네마스코프(cinemascope) 표기를 의도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이 영화가 고전 뮤지컬의 화면으로 상영된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또한 [그림 2-4]처럼, 두 사람이 할리우드의 영화 촬영 현장에서 데이트를 즐기는 장면, 미아의 방안에 걸려 있는 잉그리드 버그만의 대형사진, 그리고 진 켈리(Gene Kelly) 감독의 1952년 뮤지컬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Singin’ In The Rain)>를 오마주한 그리피스 천문대 댄스 장면과 같이 고전 할리우드 뮤지컬 영화에 대한 감독의 취향을 자기반영적 미장센으로 드러낸다. 또한 미아와 세바스찬이 헤어지는 마지막 장면은 샤젤 감독이 대학 시절부터 숭배했던 쟈크 드미(Jacques Demy) 감독의 뮤지컬 영화 <쉘부르의 우산>(1964)의 결말과 닮아 있다. 샤젤 감독은 대학 시절 1950-60년대 고전 뮤지컬 영화에 매료되어 매주 금요일마다 감상하고 토론하는 모임을 만들 정도였는데, 특히 자크 드미 감독의 <쉘부르의 우산>을 가장 좋아하여 대학 시절 논문 주제로 연구하였으며, <라라랜드> 시나리오를 쓰는데 직접적인 영감을 받았다[10]. 한편 샤젤 감독은 [그림 5-7]과 같이, 뮤지컬 영화의 관습인 환타지 장면을 차용하여 몽환적이면서 현실도피적인 낭만성을 표현한다. 그리피스 천문대에서 우주 속에서 춤을 추는 환타지 장면으로 사랑의 희열을 표현하고 있으며, 세바스찬의 플래쉬백을 통해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두 사람의 사랑을 환타지 미장센으로 재현하는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와 같이, 샤젤 감독은 고전 뮤지컬 영화에 대한 자신의 애정과 취향을 반영하는 복고풍의 장면으로 관객에게 향수, 친숙함, 낭만이라는 장르적 쾌감을 제공하고 있다.

(3) 독창적인 미장센 : ‘샤젤 월드(Chazelle World)’ 샤젤 감독은 미장센에서도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하나의 예술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먼저 파랑, 노랑, 초록, 검정 등 원색 계열의 이미지를 통해 등장인물의 심리와 서사구조의 분위기를 표현한다. [그림 8-11]과 같이, 미아가 오디션 실패와 외로운 일상을 ‘someone in the crowd’로 노래할 때에는 파랑색 계열이 배치되고, 사랑을 느끼는 장면에서 ‘A lovely night’가 나올 때에는 노랑색으로 바뀐다. 가난한 현실 앞에 흔들리는 불안한 두 사람의 사랑은 초록색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사랑이 갈등과 절망으로 바뀔 때 원색의 색채는 무채색으로 바뀐다. 5년 후 스타로 성공한 미아의 우아한 모습은 검정색 계열로 표현한다. 이처럼 외로움(파랑), 사랑의 생동감(노랑), 불안(초록), 우아함(검정)으로 대별할 수 있는 다양한 원색 이미지를 통해 극의 분위기와 등장인물의 심리 표현의 장치로 활용한다.

또한, 액자 구도와 프레임 숏을 반복적으로 배치하여 갇혀있는 듯한 답답한 등장인물의 심리나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림 11][그림 12]와 같이, 미아가 독백을 하는 장면, 오디션에 참가하는 장면, 마지막에 재회하는 장면 등에서 감독 특유의 액자구도와 프레임쇼트으로 등장인물을 표현하며 마치 프레임 속에 갇힌듯한 답답한 극의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밖에 [그림 13][그림 14]와 같이 영화의 마지막 엔딩장면에서 주인공 인물의 얼굴 클로즈업 교차화면으로 마무리하는 샤젤 감독의 독특한 스타일이 보여진다. 클로즈업 엔딩장면은 등장인물의 내면의 감정을 긴 여운으로 남게 하는 효과를 주는데, 그의 전 작품에 들어있는 특징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샤젤 감독은 자신의 취향과 애정을 반영한 뮤지컬장르와 재즈 음악을 활용하여 사랑과 성공을 향해 질주하는 미국 청년의 욕망을 자기반영적으로 연출하고 있다.

3) <퍼스트맨(First Man)>(2018): “내면의 묘사로 탈 각화한 영웅신화”

이 영화는 샤젤 감독이 2018년 연출한 세 번째 장편영화로, 인류 최초의 달착륙에 성공한 미국의 영웅 닐 암스트롱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시퀸스별로 나눈 서사의 분절은 아래와 같다.

<발단>: ①프롤로그: 1961년 X-15 테스트. 닐 암스트롱은 우주선 비행 연습 중 위기를 극복하고 무사 귀환한다. ②딸의 죽음. 닐의 딸이 종양으로 죽고, 우울한 분위기 속에 장례식이 열리고 닐은 캐런 팔찌를 보면서 운다. <전개>: ③1962년 제미니 프로젝트. 닐은 나사 의제 미니 프로젝트에 합류하고 훈련에 들어간다. <위기>: ④동료의 죽음과 닐의 강박증. 1965년 우주개발 경쟁 시대, 소련이 미국보다 한발 앞섰다는 보도 속에 닐은제미니 8호 선장으로 발탁된다. ⑤제미니 8호 비행 연습. 닐은 제미니 8호를 타고 우주 공간으로 진입하고, 우주선이 고장나지만 이를 극복하고 무사히 지구로 귀환한다. ⑥1966년 3월 26일 제미니 8호 기자회견. 막대한 비용이 드는 우주개발에 반대하는 여론이 커지면서닐은 스트레스를 받지만, 가족들과 단란한 한때를 보내며 이겨 낸다. ⑦1967년 1월 27일 아폴로우주선 테스트와 동료들 사망. 닐은 백악관 파티에 참석하고, 같은 시간 동료들은 우주선 케이블 제거 작업 중 사고로 사망한다. ⑧1968년 아폴로 우주선 착륙 훈련. 착륙 훈련 중 실패하고 낙하산으로 탈출한다. 죽은 동료의 가족들, 그리고 우주 개발에 반대하는 여론 속에 강박증은 절정에 달한다. <절정>: ⑨1969년 7월 5일 아폴로 11호 기자회견. 닐이 선장을 맡는다. 닐은 아내 재닛과 다툰 후두 아들에게 달로 가는 계획을 사실대로 말한다. ⑩달착륙. 아폴로 11호 대원들은 출발 4일 째 달의 표면에 접근하고, 착륙선 ‘이글’에 갈아탄 후, ‘고요의 바다’에 착륙한다. 달에 첫 발을 딛고, 죽은 딸의 팔찌를 달에 놓고 돌아온다. <결말>: ⑪귀환 직후, 1969년 7월 27일 검역센터. 케네디 대통령 연설 장면 속에 아내 재닛이 검역센터로 찾아오고. 유리 칸막이를 두고 두 사람은 손을 만진다.

(1) 이중적 선형(線形)의 서사구조와 탈각화된 영웅신화 : 이 영화는 1969년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미국아폴로 11호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의 착륙 과정과 귀환 여정을 시간 배열의 인과관계에 따라 전개하는 선형적 서사구조를 갖고 있다. 1961년 닐과 그의 딸의 죽음을 다룬 발단(시퀀스①, ②), 1962년 미국 우주항공국의 제미니 프로젝트에 합류한 닐과 새로운 아이를 낳는 전개(시퀀스③), 1965-1968년 소련과의 우주 경쟁 속에서 목숨을 건 훈련과정과 죽음에의 불안과 강박증을 다룬 위기(시퀀스④, ⑤, ⑥, ⑦, ⑧), 1969년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하는 과정과 여정을 다룬 절정(시퀀스⑨, ⑩), 달에서 귀환하여 아내를 만나는 결말(시퀀스 ⑪)이라는 시간별 연대기 순서의 서사구조로 구축되어 있다.

이 영화의 서사구조에서 가장 독특한 지점은 이중적 선형구조를 가진 이야기라는 점이다. 영화는 닐의 달착륙 여정이라는 외형적 사건 외에,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내면적 고통과 강박증이라는 의식의 흐름을 중첩적으로 보여준다. 닐의 달착륙이라는 외형적 여정을 따라가면서도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공포, 불안, 슬픔 등의 내면의 의식세계를 부각하려는 이중적 선형구조를 갖고 있다. 미국 현대사에서 닐 암스트롱은 우주개발이라는 미국의 프론티어 정신을 상징하고, 냉전시대 소련과의 경쟁에서 승리를 안겨준 미국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샤젤 감독은 이중적 선형구조라는 독특한 서사구조를 통해 기존 할리우드의 영웅신화 관습에서 벗어난 연출을 시도하고 있다. 주인공 닐은 대중들의 욕망을 대신 실현한 미국의 슈퍼히어로가 아니라, 죽음의 공포, 가족을 잃은 슬픔, 불안과 강박증 속에서도 이를 이겨내고 임무에 성공한 우리 안의 평범한 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샤젤 감독은 외형적 사건과 내면의 흐름이라는 이중적 선형구조를 통해 ‘미국 영웅신화의 탈각화’와 보통 사람의 영웅신화라는 새로운 할리우드의 영웅상을 연출하였다.

(2) 내면의 흐름을 표현하는 미장센 : 샤젤 감독의 이중의 선형적 서사구조는 내면의 흐름을 중시하는 독특한 미장센으로 표현된다. 첫째, ‘주관적 숏(point of view)’을 배치하여 관객들에게 주인공과 동일화(identification)된 현장감과 극적 정서를 제공하며 극적 서스펜스를 증폭시킨다. <장면3>과 같이, 우주 비행 연습 중 고장으로 위기에 처한 닐의 상황을 ‘고장난 비행기(객관적 시점)’ → ‘닐의 시선’ → ‘고장난 계기판(주관적 시점)’ → ‘닐의 시선’ → ‘고장난 계기판(주관적 시점)’이라는 주관적 쇼트로 보여주며 극의 몰입도와 극적 서스펜스를 고조시킨다. 또한 주관적 시점의 일환인 ‘인서트(insert)’, ‘회상 장면(flashback)’을 배치하여 주인공 닐의 내면을 중심으로 극의 서정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둘째, ‘교차편집(cross cutting)’을 반복적으로 배치하여 닐이 겪는 내면의 감정을 드러낸다. 우주 공간에서 비행선 고장으로 위기를 겪고 있는 닐의 모습과 지구에서 단란한 한때를 보내고 있는 가족의 모습을 대조시키거나, 백악관 파티에 초청받아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닐과 우주선 훈련 중 친한 동료들이 사망하는 장면을 교차편집으로 대조시키는 등 교차편집의 빈번한 사용으로 닐이 느끼는 내면의 감정을 객좐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셋째, ‘액자 구도 속 로우키 조명·클로즈업·핸드헬드카메라의 결합’을 통해 의식의 흐름을 드러낸다. [그림 16][그림 17]과 같이, 닐이 소련과의 우주 경쟁에서 받는 압박감, 죽은 딸에 대한 상념, 죽은 동료에 대한 슬픔, 죽음에의 공포 등 달착륙 임무를 둘러싼 불안과 강박증을 ‘액자 구도 속에 인공적 조명과 클로즈업’의 미장센으로 반복적으로 표현한다. 이러한 미장센은 사각형 프레임 속에 갇혀 고통과 강박증을 겪는 닐의 내면을 영상적으로 드러낸다. 또한 [그림 18][그림 19] 와같이, 딸의 장례식 때 닐의 우는 장면, 남편과의 이별을 걱정하는 아내의 담배 피우는 장면처럼 ‘로우키 조명 속에 흔들리는 핸드헬드카메라의 클로즈업’을 빈번하게 사용하여 인물의 감정을 극대화하고 있으며, [그림 20-22]과 같이 닐과 아내의 클로즈업으로 엔딩장면을 마무리함으로써 이 영화가 주인공의 외형적 성공뿐 아니라 내면적 고통을 이겨낸 영화라는 것을 암시해 준다.

<장면 3> 주관적 쇼트

한편 샤젤 감독은 사운드의 선행과 유도동기(leitmotif)라는 특유의 음악 장치를 통해 장면 전환의 편집 기교뿐 아니라, 마치 음악이 등장인물에게 말을 거는 듯한 서사구조의 극적 긴박감이나 안정감을 부여하는 장치로 활용한다.

딸을 잃은 슬픔으로 거실에 주저앉아 있는 닐을 보여주며 ‘달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닐은 아내와 슬픈 블루스를 춘다. 가족과의 이별,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닐의 고독한 내면을 ‘달의 노래’가 대신 표현해 주는 것이다. 닐이 우주 공간에서 겪는 내적 긴박감을 외적 사운드(non-diegesis)로 반복적으로 표현하는 방식도 특징적이다. 닐이 우주 공간의 도킹 훈련 중에 지구를 바라보다가 가족을 그리워하는 장면에서는 잔잔한 음악이 흐르다가, 돌연 강렬한 비트의 음악이 선행적으로 등장하면서 우주선 고장이 발생하고 위기가 닥친다. 달착륙 장면에서도 닐이 달착륙을 위해 접근할 때 가까이 갈수록 점점 더 크고 웅장한 오케스트라 풍의 음악으로 변모하고, 마침내 첫 발을 내딛는 순간에는 암전과 침묵의 사운드로 전환되며 음악은 아예 사라진다. 이처럼 샤젤 감독은 사운드의 선행효과와 유도동기 방식을 통해 극의 장면전환과 인물의 내면적 긴박감, 그리고 주제를 암시하는 장치로 활용한다.

<퍼스트맨>은 인류 최초로 달착륙에 성공한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의 일대기를 역사적 사실이나 영웅적 업적에 치중하지 않고 내면과 의식의 흐름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독특한 영웅전기 영화라 할 수 있다. 샤젤 감독은 미국 역사에 길이 남을 닐의 영웅적 업적에 주목하기보다는 딸을 잃은 아픔, 죽음의 공포, 사회적 압박감을 이겨내고 마침내 임무에 성공하는 한 인간의 내면의 풍경을 부각하는 독특한 탈각화된 영웅신화를 연출하였다.

III. 결론

지금까지 ‘자기반영 작가주의’와 ‘문화연구’라는 연구방법론을 차용하여 연구대상인 샤젤 감독의 작품 <위플래쉬>, <라라랜드>, <퍼스트맨>을 ‘서사구조: 이야기 의원형’, ‘미장센: 스타일의 반복성’, ‘자기반영적 주제: 작가의식’라는 세 가지 층위에서 분석하였다.

그 결과 이 글의 연구목적인 샤젤 감독의 작가주의적 특징을 아래와 같은 ‘서사구조:성공 신화의의 변주(變奏)’, ‘독창적인 미장센의 반복: 샤젤 월드(Chazelle world)’, ‘자기반영적 주제: 작가의식’으로 도출할 수 있다.

첫째, ‘서사구조: 성공 신화의 변주’. 샤젤 감독의 작품에는 항상 꿈과 성공을 향해 질주하는 등장인물의 열정, 좌절, 그리고 목표에 도달하는 성공신화를 서사구조의 축으로 삼는 공통점이 있다. 시나리오 작가 시드 필드(Syd Field)가 “영화는 행위다. 행동은 인물이고 인물은 행동이다. 인물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자신이 누구인지 알려준다”고 정의하듯이, 샤젤 감독은 주인공 인물의 욕망과 행위를 따라가며 서사구조를 구축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사건을 극적 서스펜스의 중심으로 구축하는 일관된 서사구조의 특징을 가진다. 또한 서사구조의 극적 서스펜스에서 주인공 인물의 행동과 선택을 통해 주제 의식을 드러내는 경향을 보인다. “극적 갈등이 없으면 인물의 행동이 없고, 행동이 없으면 인물이 없다. 행동은 인물 그 자체이다. 캐릭터의 행동이 곧 주제”인 것이다[13]. 꿈과 성공을 향해 질주하는 등장인물을 서사구조의 기본 축으로 삼고, 좌절과 희생을 극적 서스펜스로 표현하면서, 마침내 성공에 도달하는 성공신화의 변주를 보여주는 것이 샤젤 감독 작품에 나타나는 공통된 서사구조의 아키타입이라 할 수 있다.

둘째, ‘독창적인 미쟝센의 반복: 샤젤 월드’. 영화 미학적 측면에서 샤젤 감독은 자신만의 독특한 작가 주의적 미장센의 원형을 갖춰 나가고 있다. 샤젤 감독은 세 편에 불과한 작품이지만 다양하고 광범위한 영화스타 일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일관되게 지향하는 작가주의적 스타일과 미학을 단정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연구대상인 세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배치하고 있는 ‘로우키, 인물 클로즈업, 핸드헬드 카메라의 액자 구도’, ‘엔딩장면의 인물 클로즈업’과 같은 자신만의 독특한 미쟝센을 반복적으로 연출하면서, ‘샤젤 월드’라고 부를 수 있는 작가주의 미학의 원형을 형성하고 있다.

셋째, ‘자기반영성의 주제: 작가의식’. 샤젤 감독은 창작자로서의 자기의식을 영화 속에 강하게 투영하려는 자 기반 영적 연출 방식을 갖고 있다. 자신이 청소년 시절부터 동경했던 재즈 드러머를 향한 꿈과 좌절을 <위플래쉬>에서 재현했고, 대학 시절 자신이 사랑하고 연구했던 할리우드 고전 뮤지컬 장르에 대한 꿈을 <라라랜드> 연출로 승화시켰다. 또한, <퍼스트맨>에서는 자신의 음악적 취향을 서사구조에 반영하여 ‘음악이 서사구조에 말을 거는 듯한’ 유도동기적 장치로 활용하면서, 분위기를 점점 고조시키거나 하강시키는 극적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사용하였다. 또한 샤젤 감독은 청년 감독으로서 자신과 청년 세대의 성공을 향한 욕망을 작품 속에 반영하고 있다. 그의 작품 속 인물에서 공통 적으로 드러나는 꿈과 성공을 향한 질주는 할리우드에 진출하여 자신의 영화를 추구하려는 샤젤의 영화적 욕망과 중첩되어 읽힌다.

이와 같이, 샤젤 감독은 ‘서사구조: 성공신화의 변주’, ‘독창적인 미장센의 반복: 샤젤 월드’, ‘자기반영성의 주제: 작가의식’이라는 특징을 보이며 자신의 예술적 취향과 가치를 작품 속에 반영하는 ‘자기반영적 인디비듀얼영화(Individual Cinema)’를 지향하고 있다. 샤젤 감독은 할리우드에서 상업적으로 성공한 감독으로 자리 잡았지만, 미학적으로는 여전히 진화(進化) 중인 청년 감독이다. 본격적인 작가주의 감독의 반열에 올라선 감독으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시간의 검증이 더 필요한 단계이며, 향후 작품의 성과로 평가할 수 밖에 없다. 분명한 것은 지금까지 고수해온 ‘자기반영적 작가주의’ 연출은 향후 샤젤 감독 영화미학의 원형이 되어 할리우드에서 독창적인 작가감독으로 성장하는 기반이 될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샤젤 감독과 그의 ‘자기반영적 작가주의’는 할리우드의 상업적인 제작시스템과 관습에 새로운 활력과 창의성을 불어넣고, 미국 청년세대의 욕망이 담긴 뉴 할리우드 청년영화(New Hollywood Youth Cinema) 시대를 열어갈 것이라는 점에서 영화사적 의의가 있다.

끝으로 샤젤 감독이 할리우드의 상업적 제작시스템 속에서 언제까지 자신만의 ‘자기반영적 작가주의 연출’ 을 지속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문제적이다. 작가 감독과 영화산업은 싸우면서 상호의존해야 하는 기묘한 적대적 쌍생관계이다. 샤젤 감독의 자기반영적 작가주의와 할리우드의 영화산업 시스템이 맺는 특수한 긴장 관계는 할리우드 표준화 제작 시스템의 특징과 한계, 할리우드 내러티브 양식의 변용 등과 연계된 별도의 후속 연구가 필요한 지점이다. 이 글이 미국 할리우드의 작가주의를 연구하는 새로운 시발점이 되어 향후 후속 연구를 통해 확장된 학술성과가 이어지길 기대한다.

* 이 논문은 2018년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NRF-2018S1A5A2A01028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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