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tudy on the Intellectual Foundation of Cataloging Research in Korea

한국 자료조직 연구의 지적 토대에 관한 고찰

  • 노지현 (부산대학교 문헌정보학과)
  • Published : 2005.03.01

Abstract

This study intends to make a comprehensive inquiry about the intellectual foundation of cataloging research in Korea. Emphasis was on analyzing how both Pertinent and indigenous the Korean cataloging theory and practice have been developed to the Korean bibliographic environments. To the end, this study collected and examined exhaustively the research articles produced from the early 1950's to the Present In Korea. These articles are divided and reviewed into four periods: the period of (1) beginning research activities, (2) compiling the Korean cataloging tools, (3) applying cataloging automation, (4) introducing metadata. The focus was on investigating their intrinsic values and philosophies about information organization.

이 연구의 목적은 우리의 근대 도서관사에 있어 자료조직에 대한 지적 토대가 어떻게 형성$\cdot$발전되어 왔으며, 이 과정에서 우리는 그동안 우리 고유의 지식문화와 정보행태를 대변하는 '토착적' 가치를 지닌 자료조직이론을 정립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 왔는지를 역사적 관점에서 엄격하게 성찰해 보는데 있다. 이를 위해, 지난 반세기동안 도서관계 혹은 문헌정보학계에서 생산된 자료조직 연구물들을 수집하여 이들이 어떠한 토대와 근거를 바탕으로 생산되었으며. 어떠한 내용으로 이루어졌는지를 정성적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Keywords

References

  1. 이를 위해, '韓國圖書館學關係文獻素引 : 1945-1974'와 '한국문헌정보학색인 : 1975-1992', '國內圖書館學 關係著書目錄: 1945-1987. 6' 등과 각종 서지DB를 통해 관련 연구물에 대한 조사가 선행되었다. 조사대상은 저서(역서 포함)와 학위논문, 학술지에 수록된 논문, 그리고 도서관기관지의 성격을 띤 잡지에 수록된 논문 등이 모두 포함되었다. 손정표의 연구에 의하면, 문헌정보학과(당시 도서관학과)가 대학에 본격적으로 설립된 1957년 이후부터 지반 2002년까지 자료조직 관련 연구물은 학술지 수록 논문 242편과 도서관기관지 논문 94편인 것으로 나타난다. 손정표,'한국의 문헌정보화분야 연구동향 분석: 1957-2002,' 한국도서관 . 정보학회지,제34권,3호(2003. 6). pp.8-12
  2. 해방 이후 '전문 도서관인'을 양성하기 위해 설립된 최초의 기관은 '國立朝鮮圖書館學校'였다(1946년 4월 1일 개교). 이 때는 당시 도서관계에 절실히 필요한 인력을 단기간 내에 배출하기 위한 목적에서 운영되었기 때문에학문으로서의 체계를 갖추기 시작한 시기라고 보기는 힘들다. 이후, 본격적으로 학문이 도입된 시기는 1954년미국 인디애너대학에서 도서관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귀국하여 이화여자대학교도서관을 맡고 있었던 이봉순에의해서였다. 그는 1955년부터 이화여대에 장차 도서관학과의 설치를 계획하면서 교양학부에서 선택과목으로 도서관학을 강의하었는데, 이것이 한국에서 학문적으로 도서관이 연구되기 시작한 최초라고 할 수 있다. 또한.1955년 '한국도서관협회'가 결성되면서 '도서관학교의 설립을 촉진하기 위하여 도서관학을 전공할 유학생을 해외에파견할 것'을 골자로 하는 결의문을 문교부장관과 국회문교위원장에게 공식적으로 제출한 바 있는데, 이에 대한의견을 당시 협회장 및 관련인사들과 한미재단이 공동으로 논의하던 차에 연세대학교와 미국 피바디 사범대학이인연을 맺어 1957년 연세대학교에 4년제 대학과정의 도서관학과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설립되었다. 뒤이어 1959년 이화여자대학교, 1963년 중앙대학교, 1964년 성균관대학교에 각각 학과가 설치되었다. 따라서 도서관의 자료조직 업무가 본격적으로 학문의 대상이 되었던 시기는 '1950년대-I960년대'로 볼 수 있다. 엄대섭, "圖協 五年의발자취(上)," 도협월보, 제1권 제2호(1960, 4), pp.28-32
  3. 박희영, "最近世韓國圖書館史抄: 1945. 8. 15-1950.6. 25," 도협월보, 제7권, 제3호(1966,4), pp.9-11
  4. 박희영, "6 · 25사변후의 한국도서관(上)." 도협월보 제7권 제5호(1966, 6). pp.19-26
  5. 당시 불모지나 다름없던 우리 도서관현장에서 가장 절실히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의 실정에 맞는 표준화된 편목도구의 편찬이었다. 해방 이후부터 1960년 이전까지 분류는 주로 듀이십진분류법 제15판의 한국어 번역본을 사용하거나 박봉석의 조선십진분류법, 혹은 곳곳에서 창작해낸 십진분류법을 사용하고 있었으며, 편목규칙은 '일본목록규칙'을 거의 그대로 번역하다시피 하여 사용하거나 '미국도서관협회목록규칙 1949년판'과 '미국의회도서관기술목록규칙 1949년판'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에, 한국도서관협회에서는 1957년경 분류표작성위원회에의해 '분류표 초안'을 마련하였으며, 1962년 독자적인 '편목규칙'을 제정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하였다. 이러한 작업의 결과로, 1961년 '주제명표목표' 1964년 '한국십진분류법'과 '한국목록규칙' 이 발간되었고 이후 이를 바탕으로 개정 작업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6. 차배근,사회과학연구방법론(세영사, 1990), p.36
  7. 필자가 속해있는 부산대학교 문헌정보학과에서는 '문헌정보학'의 정체성(identity)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문헌정보학은 지식정보자원의 효을적이고 효과적인 관리와 유통을 위한 이론과 기법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학문의 성격은 응용사회과학으로 볼 수 있으며, 지식과 정보의 생산, 가공, 축적, 검색, 제공 그리고 보존 및 관리를 위해 필요한 이론과 기법을 연구한다. 특히, 지식과 정보의 관리와 유통과 관련한 역사적, 정책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그리고 기술적 동향과 특성에 대한 다학문적 접근을 통해서 지식정보자원의 시공간적 유통을 효율화하고 활성화하기 위한 이론을 개발하고 방안을 제시하는 실용적인 학문이다." 부산대학교 문헌정보학과 홈페이지의 '학과 안내' 자료,
  8. 외국의 새로운 학문을 도입하기 위하여 유학한 나라는 거의 '미국'이었다. 당시 유학한 사람을 추려보면, 이봉순(1950-1954년), 장일세 (1957-1958년), 이종문 · 박은자(1958-1959년). 원종린 · 박동연(1959-1960년), 명재휘(1960-1961년). 이재철(1961-1962년) 등이었다. 또한, 미국국무성의 초청교환계획에 의하여 이춘희(1959-1960년), 박계홍(1961-1962년), 문병욱(1963-1964년)이 도미하였고, 김세익, 이종문, 이춘희 등이 미국을 비롯한 유럽 및 동남아 여러 국가들의 도서관계를 시찰하였다. 이들은 이후 도서관 현장 및 학문을 개척하는데 주도적인역할을 하게 된다. 박희영, '最近世韓國圖書館史抄: 1945. 8. 15-1950. 6. 25,' 도협월보 제7권,제3호 (1966,4), p.23
  9. 김세익,'한국 도서관학의 반성과 전망,' 도협월보, 제7권,제10호(1966,12), p.14
  10. 학술단체협의회 엮음,우리 학문 속의 미국: 미국적 학문 패러다임 이식에 대한 비판적 성찰(한울,2003), p.3
  11. 김세익,'한국도서관학의 현황과 전망,' 국회도서관보,제13권,제1호(1976. 1), p.21
  12. 해방 후 미국을 통한 학문 도입과정을 문제제기의 출발점으로 삼았던 여타 사회과학분야에 비해, 문헌정보학은학문의 실천성과 현실적합성에 대한 문제가 집중적으로 제기되었다. 그러나 1990년대 이전에는 한국 문헌정보학의 토착성에 대한 깊은 인식이나 구체적인 비판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한국적인 것을 강조하는 당시 사회 조류의 영향을 받은 단속적인 언급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김정근 엮음, 한국사회과학의 탈식민성 담론 어디까지 와있는가(지식산업사. 2000). pp.345-346
  13. 최근 '교수신문'에서는 이러한 다양한 지적 산물들을 줘어 '오늘의 우리 이론 어디로 가는가: 현대 한국의 자생이론 20' (생각의 나무, 2003)을 발간하였다
  14. 김정근 엮음, 한국사회과학의 탈식민성 담론 어디까지 와있는가(지식산업사,2000), pp.350
  15. 심우준, '2000년전의 편목자들의 역할: 우리는 무틱대로 과거를 버려야 하나?,' 국회도서관보, 제17권,제2호(1980, 3), p.82
  16. 이제환, '디지털 환경에서 문헌정보학의 길 찾기,' 디지털 시대의 도서관정보정책(한울,2003), p.201
  17. 한국에서 개최된 최초의 도서관 강습회는 191년 8월 5일 '조선교육회'가 주최한 강습회였다. 이후 1935년 10월 두 번째 강습회는 '전국도서관대회준비회'(일본도서관협회 주관)가, 1936년 8월과 1938년 8월에 개최된 세번째, 네 번째 강습회는 '조선총독부도서관사업회'가 주최가 되어 개최하였다. 또한 1939년 7월 '조선도서관연맹'이 정식 발족한 후부터는 동연맹이 주최가 되어 1943년까지 총 5회에 걸쳐 강습회가 개최되었다. 조선도서관연맹이 주최한 제5회 강습회(1943년)에서는 1939년 3월에 일본의 '사서검정시험'에 합격한 박봉석이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강의를 하기도 하였다. 국립중앙도서관 편, '국립중앙도서관사' (국립중앙도서관, 1973), p.231
  18. 윤상기, "한국 도서관학교육사: 발생기(1950년대까지)를 중심으로", 동의대학교 동의논총 제14집(1987. 2), pp.178-180
  19. 박희영,'最近世韓國圖書館史抄: 1945. 8. 15-1950. 6. 25,' 도협월보,제7권,제3호(1966,4), p.9
  20. 박희영, "6 · 25 사변후의 한국도서관(上)," 도협월보,제7권, 제5호(1966,6), p.19
  21. 박희영, "6 · 25 사변후의 한국도서관(上)," 도협월보,제7권, 제5호(1966,6)
  22. 당시 조선도서관학교의 교육과정은 1년이었으며, 주요 교과내용으로는 도서관 운영과 일반 교양과목(어문학, 국사, 사회 등)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도서관 운영과 관련된 교과목은 도서관관리법, 도서관사, 도서분류법, 東書편목법, 東書편목실습, 西書편목법, 西書편목실습, 서지학, 인쇄 및 제본법이 편성되어 있었는데, 분류와 편목이 교과내용의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 따라서 우리의 실정에 맞는 분류법과 편목법을 마련하는 일이 가장 시급한 일중 하나로 간주되었다
  23. 1955년 3월 16일 마침내 '도서관협회'의 결성을 위해 서울의 각 도서관 대표자 회담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해방이후 '조선도서관협회'를 창립하였던 대다수의 인사가 월북 또는 전직, 퇴직, 행방불명된 상태라 발전적 해산이라고치부하기도 곤란하고 이를 그대로 계승하기도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여, 여러 차례 논의를 거듭한 끝에 6·25 동란 이전의 조선도서관협회'는 자연소멸한 것으로 인정하고, 새로운 단체로서 '한국도서관협회'를 결성하자는결론이 나왔다
  24. 이 때에도 교욱내용은 역시 분류와 목록(편목)이 과반수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25. '도서관학교'의 설립과 도서관학교의 설립을 촉진하기 위한 방안으로써 한국도서관협회에서는 도서관학을 전공할 유학생을 해외에 파급해 줄 것을 건의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건의를 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도서관사무 특히도서의 분류편목 등은 순전히 전문적 기술부에 속한다. 도협산하 백여 개소의 각종 도서관과 수개소의 신설도서관에서 사서의 알선을 호소하나 속수무책인 실정이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26. 김세익,'한국 도서관학의 반성과 전망,' 도협월보, 제7권,제10호(1966,12), p.14
  27. 임종순, "DDC의 조기성 기호에 대하여," 국립도서관보, 제59권(1958, 12), pp.4-24 ; 임종순, "DDC제16판 조기성 기호에 대하여," 국립도서관보, 제67권(1959,8)-제75권(1960,5·6) ; 임종순, "현대도서분류법개요," 도협월보, 제1권, 제6호(1960, 9)-제2권, 제2호(1961, 3·4) ; 백린. "분류규정," 도협월보, 제1권, 제8호(1960, 11),pp.23-27 ; 천혜봉, "동서용 DDC," 女苑,제77권(1961), pp.26-38 : 백린, "현대분류법에 대하여," 도협월보,제7권, 제6호(1966, 7·8), pp.6-16
  28. 대표적으로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사서장으로 근무했던 백린은 5회에 걸쳐 "도서목록법 입문"이라는 제목으로목록의 의의, 종류,목록규칙, 기본기입,표목 등 현대식 목록의 개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자료는 오늘날까지그대로 이어져 목록개론서를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다. (백린. "도서목록법 해설," 새교육,제11권,제2호 (1959, 2)pp.46-47 ; 백린, "도서목록법 입문," 도협월보, 제1권, 제1호(1960, 3), pp.15-20 : 제1권, 제2호 (1960,4). pp.17-25; 제1권, 제3호(1960, 5). pp.16-20 ; 제1권, 제4호(1960, 6), pp.25-30, 제1권, 제5호(1960, 7·8), pp.20-24)
  29. 대학과정에 '도서관학과'가 설립된 이후 20년이 되는 시점에(1978년), '한국도서관협회' 에서는 外書의 번역작업을 촉진시키기 위한 목적에서 번역 전문 정기간행물인 '문헌정보학연구'를 계간으로 발간한 바 있다. 이 자료의'발간사'에 보면, "지난 20년 동안은 우리가 선진외국의 도서관학을 도입하여 모방해 왔던 시기"로써, "외국의학문을 도입하는데 있어서는 번역사업이 무엇보다도 선행되어야 하는데" "우리는 이제까지 外書의 번역활동이미약했다." 따라서 "이제부터라도 外書의 번역활동을 촉진하여 국제적인 현황과 발전의 추세를 신속히 파악하고이를 도서관계와 학계에 소개하여 보급함으로써 국내의 관계학문과 기술의 발전에 기여하고자 한다." 라고 그 취지가 설명되어 있다. 이처럼 학문 초기에 비교적 활발히 전개된 번역작업이 실제로는 일시적이거나 당장의 필요에 의한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이없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우리 학문에서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자료의번역 작업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외국의 新學間을 도입하는 과정에서조차 학문의 정체성에 대한진지한 성찰이 없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ᨀ㣁?⨀Ā棁?⨀Ā胁?⨀Ȁ飁?⨀଀Ⴢ?⨀Ā桓ꪤ؀Ā끓ꪤ܀Ā큕ꪤ؀Āᡖꪤ̀Ā恖ꪤԀĀꡖꪤࠀĀĀ⣂?⨀䣂?⨀⌀裂?⨀⼀죂?⨀塘ꪤĀĀꁘꪤĀĀ?⨀䬀⣃?⨀Ȁ僭ﺿ缀ሀ
  30. 이로 인해 오늘날 한국의 문헌정보학은 '조선도서관학교'를 학문적 토대로 하지 않고, 알려진 바와 같이 1950년대 수입된 미국의 도서관학 조류를 그 시발점으로 하고 있다
  31. 이에 대해 심우준은 "결코 우리의 역사는 최근에 들어온 서양의 사상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닌 것이 분명한데,과거를 평개치고 '학'은 날이 갈수록 기술로 손쉬이 빛을 보려 한다"고 비판하였다. 심우준. "2000년전의 편목자들의 역할: 우리는 무턱대로 과거를 버려야 하나?," 국회도서관보, 제17권, 제2호(1980, 3), p.81-82
  32. 김정소, '도서관학의 학문적 성격과 체계화에 관한 연구,' 도서관학논집,제5집(1978, 12), pp.1-31
  33. 이춘희, '도서관으로 돌아가야 한다: 한국적 실정에서 본 사서직의 직무,' 도협월보, 제1권,제8호(1960,11), p.29
  34. 김세익,'시련과 변모: 한국 도서관학교육에 대한 각서,' 도협월보 제14권,제7호(1973,7), p.6
  35. 김정소, '도서관학의 학문적 성격과 체계화에 관한 연구,' 도서관학논집,제5집(1978, 12), pp.1-31
  36. 이춘희, '도서관으로 돌아가야 한다: 한국적 실정에서 본 사서직의 직무,' 도협월보, 제1권,제8호(1960,11), p.29
  37. 김세익,'시련과 변모: 한국 도서관학교육에 대한 각서,' 도협월보 제14권,제7호(1973,7), p.6
  38. 김세익,'한국도서관학의 현황과 전망,' 국회도서관보,제13권,제1호(1976. 1), p.23
  39. 심우준,'2000 년전의 편목자들의 역할: 우리는 무턱대로 과거를 버려야 하나?,' 국회도서관보,제17권,제2호(1980, 3). p.78
  40. 이 시기에 생산된 대표적인 연구물들은 다음과 같다. 백린. '도서목록법 해설,' 새교육,제11권,제2호(1959,2). pp.46-47
  41. 백린. '도서목록법 입문,' 도협월보,제1권,제1호(1960.3). pp.15-20 ; 제1권, 제2호 (1960,4). pp.17-25 ; 제1권제 3호(1960. 5), pp.16-20 ; 제1권,제4호(1960. 6). pp.25-30, 제1권,제5호(1960,7.8). pp.20-24
  42. 백린, '분류규정,' 도협월보,제1권,제8호(1960,11). pp.23-27
  43. 롸버트 버졔스,'한국의 도서관에 있어서의 분류 갱신 문제,' 도협월보,제1권,제2호 (1960,5). pp.1-3
  44. 이병수, '분류목록작성법,' 국회도서관보,제5권, 제5호(1969,6), pp.13-28
  45. 천혜봉,'동서용 DDC,' 女苑,제77권 (1961), pp.26-38
  46. 장일세,'高大도서관의 두 가지 분류표에 관하여,' 도협월보,제1권,제1호(1960,3). pp.21-24
  47. 조선도서관협회에서는 1946년 7월 15일 출간된 박봉석의 '동서도서분류표' 초안의 요목을 수정하여 전국 통일분류표로 인준하였다. 이후 이 요목을 바탕으로 전개하여 정식 세분표를 마련하였는데 이것이 1947년 10월 15일에 발행된 박봉석의 '조선십진분류표' 였다
  48. 박봉석 편 '朝鲜東書編目規則,' 서문
  49. 이재철,'한국에 있어서의 듀이십진분류법 : 그의 역사와 전개 및 고쳐쓰기에 대한 고찰,' 국회도서관보,제4권,제7호(1967, 7), pp.5-6
  50. DDC가 국내 도서관계에 최초로 사용된 것은 1920년대 초 서울 연희전문학교 도서관과 이화여자전문학교 도서관에서 의해서였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퍼지기 시작한 것은 미국식 라이브러리언쉽이 도입된 1950년대 중반기부터 였다. 이재철,'한국에 있어서의 듀이십진분류법 : 그의 역사와 전개 및 고쳐쓰기에 대한 고찰,' 국회도서관보,제4권,제7호(1967, 7), pp.6-7
  51. 천혜봉, ''한국목록규칙'에 대하여,' 국회도서관보,제2권,제3호(1965. 3), p.5
  52. 엄대섭,'圖協五年의 발자취 (上),' 도협월보,제1권,제2호(1960. 4), pp.28-32 : 엄대섭,'圖協五年의 발자취 (下),' 도협월보,제1권,제3호(1960. 5), pp.21-26
  53. 천혜봉, '한국십진분류법의 간행에 붙이여,' 도협월보,제5권,제5호(1964,6), p.2
  54. 이처럼 현대적 편목도구를 편찬하게 된 배경을 그대로 옮겨보떤 다음과 같다. "‥·박봉석씨의 '조선십진분류표'와 더불어 ' 동서편목규칙'은 우리나라 도서관사에 있어서 영구히 하나의 금자탑을 세운 것은 사실이지만 앞에서도 이야기한 바와 같이 일제시대의 뒤떨어진 도서관학과 도서관 실무에서 얻은 견과는 도저히 발달한 다른 나라들을 따를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지 않드래도 분류표라든지 또는 편목규척은부단한 연구로서 改正補充하여야 하는 것이지만 선진국가로부터의 새로운 학문의 직수입은 더욱 개정과 보충의필요성을 절실하게 만들었으며 해방된지 10여년동안의 초창기로부터 비약적인 발전을 期約하기 위하여서도 또한 그것이 필요하였습니다‥·" 장일세, "한국목록규칙편집후감: 우리나라 도서관 근대화의 첫걸음," 도협월보,제5권, 제4호(1964. 5), p.25
  55. 장일세, '한국 목록의 현황과 그 장래,' 도서관, 제29권,제6호(1974,6), p.38
  56. 이러한 내용은 '한국목록규칙'의 편찬 취지에 잘 나타나 있다. "‥·현대에 출판되는 도서는 서구의 정신 내지 물질문명을 토대로 하는 이른바 신학문의 것이 양적으로 압도적이다. 그런 까닭에 본 목록규정 제정에 있어서는 현재 국제적으로 널리 이용되고 있는 '미국도서관협회목록규칙'1949년판과 '미국의회도서관기술목록규칙' 1949년판이 주자료가 되고, 부차적으로는 전통을 자랑하는 '바티칸목록규칙' 이외 수종의 목록규칙들이 참조되고 있다‥·"천혜봉. "'한국목록규칙'에 대하여," 국회도서관보, 제2권, 제3호(1965, 3), p.6
  57. 한국도서관협회에서는 이 과정에서 '한국편목규칙'이 아니라 '한국목록규칙'이라 명명하였는데. 1948년 박봉석의 '동서편목규칙' 이라는 先例가 있는데도 이를 저버리고 굳이 '목록규칙'이라고 한 이유는 찾아보기 어렵다. 다만,일본에서 '일본목록규칙' 또는 '영미목록규칙'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어 이의 용례를 따른 것으로 추정할수 있을 뿐이다. 이에 대해 몇몇 전문가들은 '한국목록규칙'이 '동서편목규칙'과는 전연 다른 체제로 제정되었다할지라도 박봉석의 영향을 다소라도 받은 바 있는 후학들로서는 선학의 업적을 북돋우고 이를 계승한다는 의미에서라도 이 용어를 이어받아야 할 것이며, 목록을 작성하거나 편성한다는 의미에서 '목록규칙'보다 '편목규칙'이올바른 표현이라고 지적하기도 하였다. 심우준, "목록과 편목," 도서관, 제29권, 제6호(1974, 6), pp.3-4. ; 정필모. "한곡목록규칙의 문제점과 그 개정의 전제," 도서관, 제29권, 제6호(1974, 6). pp.5-12
  58. 이재철, "한국목록분류법의 실상," 도서관학보(중앙대) 제4집(1983. 10), pp.219-220.이러한 문제는 '한국목록규칙'을 편찬할 당시 다음과 같이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편목법의 二大潮流인 저자주기입법과 서명주기입법 중 전자를 택하지 않으면 안되게끔 세계의 조류가 흐름에 따라 그 방법으로 우리도과감하게 전환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이 문제는 참으로 큰 문제이고 또 이에 따라 파생되는 목록의 재편성과경비문제, 사람문제 등등 실로 막대한 시 일과 경비가 관련되는 것이므로 경솔히 결정지울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서명주기입 방식이 과거 수십년동안 우리나라의 도서관을 휩쓸은 관계로 인해서 더욱 이 문제는 심각한 것이었습니다.‥·" 장일세, "한국목록규칙편집후감: 우리나라 도서관 근대화의 첫걸음", 도협월보 제5권 4호 (1964. 5),p.25
  59. 정필모, '한국목록규칙의 문제점과 그 개정의 전제,' 도서관,제29권,제6호(1974,6), pp.12
  60. 천혜봉, '한국목록규칙에 대하여,' 국회도서관보,제2권,제3호(1965. 3), p.5
  61. 정필모, '한국목록규칙의 문제점과 그 개정의 전제,' 도서관,제29권,제6호(1974,6), pp.5-12
  62. 이봉순,'파리에 모인 삼백명의 도서인: 국제도서목록회의에 참석하고,' 사상계,제10권,제2호(1962,2). p.257
  63. 리재철,'한국목록분류법의 실상,' 도서관학보(중앙대) 제4집(1983, 10), pp.221-222
  64. 이로 인해 한국목록규칙 제3판을 제정 편찬하게 된다. 한국목록규칙 제3판의 '編纂報告'에 보면 이처럼 ISBD로인해 우리의 전통적 편목방식을 재인식하게 되었으며 이 내용을 바탕으로 제3판을 펴내게 되었다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관련된 내용을 그대로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I960년 초기부터 일기 시작한 목록의 전산화 작업은절대성이 없는 저자주기입법에 대해 서구에서도 회의를 품고 이견을 제기하는 학자를 나오게 하더니 1970년대에들어서서 마침내 기본기입의 표목없이도 도서의 서지적 식별이 가능한 목록기입법을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국제도서관협회연맹(IFLA)이 제정해서 1974년 국제표준도서기술법(ISBD)이 바로 그것이다‥·이와 같은 동양의 전통적 서명주기입법에 대한 채평가와 국제적 목록이른의 추이를 감안하여 한국목록규칙 제3판(KCR3)은 우리의 전통적 서명주기입법과 흡사한 서지기술을 유니트카드로 삼아 목록기입을 하는 방식을 채용하였다. 이것이KCRl과 KCR2에 비해 KCR3이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다.‥·" 한국도서관협회, '한국목록규칙 제3판: 기술·표목 올림지시편' (한국도서관협회, 1983), p.6ģ硉؀က잖⨀✀￿萻ʗ⨀ȀĀ老⢒얖⨀ᣵΗ⨀̀ㄈ돀耴ʗ⨀塨?⨀롨ʗ⨀ई돐灕잖⨀灕잖⨀䔱䭍䉅弲〰㉟瘳㡮㕟㔰㥟〰㐀
  65. 천혜봉,'분류표초안의 주제에 대한 소고: 사업의 중간보고를 겸하여,' 도협월보 제4권,제3호(1963. 4),pp.21-28, 천혜봉,'한국십진분류법의 간행에 붙이어,' 도협월보,제5권,제5호(1964,6). pp.2-6
  66. 한국도서관협회, 한국목록규칙(동협회,1983), 編纂報告중에서
  67. 천혜봉,古書分類目錄法(한국도서관협회, 1970), 서문 중에서. 영미목록법을 준거하여 '한국목록규칙' 이 제정된 이후 동양문화권의 고서목록에 적용할 규칙들이 몇 종류 편찬되었는데, 이것은 조선조의 해제목록과 같은 고서목록 편찬에 적용된 규칙과는 전혀 다른 형식의 첫이었다. 이들고서목록규척은 기본표목원칙이나 기술규칙에 있어서 서양식 목록규칙의 원칙들을 준용하면서도 우리나라 고서의 형태적 특성을 효과적으로 기술할 수 있도록 고안된 것이었다. 대표적인 것으로 백린의 '占書目錄規則', 천혜봉의 占書分類目錄法'. 김치우의 '占書編目規則' 등이 있다. 도태현 한국의 목록규칙 변천사(한국도서관협회,2003), p.122
  68. 이택준, '목록의 기계화동향,' 도서관,제35권. 제3호(1980. 4). p.13
  69. 김광영, '목록자동화에 관한 소고,' 도협월보,제20권,제2호(1979. 3), p,29
  70. 송한건, '목록업무의 전산화,' 국회도서관보 제20권,제2호(1983,3). pp.26-27
  71. 한국문헌자동화목록법은 한국문헌을 주된 입력 대상으로 하는 국내용 포뱃으로, 기본구조는 국제표준화 기구에서 제정한 ISO 2709-1973의 표준포맷을 따르고 미국의회도서관 MARC 구조와도 호환성을 갖도록 설계되었다. 이에 세부적인 편성방침은 주로 미국의회도서관에서 개발한 MARCDⅡ format을 준용하고 UK MARC와UNIMARC도 부분적으로 수용하여 개발되었다
  72. 국립중앙도서관에서는 목록의 컴퓨터 처리작업을 처음으로 착수하는 데에 적용할 목록규칙으로는 ISBD를 채택하기로 결정하였다. 1974년 IFLA에서 ISBD가 제정되자 각국에서는 이에 준하여 편목규정을 개정하였으나, 우리나라는 줄곧 그 적용방법을 모색하기만 했을 뿐 목록규칙에 반영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이에 국립중앙도서관에서는 편목 업무의 자동화를 추진하면서 경험하였던 여러 가지 사례와 목록에 대한 세부규칙을 집성하여 자동화목록에 적용될 목록규칙을 별도로 제정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ISBD가 세부적인 방침은 각국의 서지작성기관이 결정하도록 재량권으로 남겨두고 있었기 때문에, 국립중앙도서관에서는 이러한 재량사항을 하나하나결정하여 그 내용을 '국제표준서지기술법에 의한 한국문헌기술세부규칙: 한국문헌자동화목록법에 적용하기 위하여'라는 자료집에 수록하여 규정화하였다. 국립중앙도서관 전산실 편, 한국문헌자동화목록법기술규칙: 단행본용 (예비노트 보완판)(국립중앙도서관, 1985), 編纂經緯 중에서ヨ⨀Ȁヨ⨀?ヨ⨀Ȁ?ヨ⨀탯ヨ⨀Ȁ탯ヨ⨀룳ヨ⨀਀룳ヨ⨀ヨ⨀Ȁヨ⨀⣴ヨ⨀Ȁ⣴ヨ⨀裸ヨ⨀Ȁ裸ヨ⨀烼ヨ⨀Ȁ烼ヨ⨀堀—⨀Ȁ堀—⨀렄—⨀Ȁ렄—⨀ꀈ—⨀Ȁꀈ—⨀蠌—⨀Ȁ蠌—⨀쀌—⨀Ȁ쀌—⨀硘—⨀Ȁ硘—⨀恜—⨀Ȁ恜—⨀䡠—⨀Ȁ䡠—⨀㠅ʗ⨀Ȁ㠅ʗ⨀ꀅʗ⨀Ȁꀅʗ⨀ꡤ—⨀Ȁꡤ—⨀遨—⨀Ȁ遨—⨀ࠆʗ⨀Ȁࠆʗ⨀
  73. 이 때 '한국문헌자동화목록법: 단행본용 실험용 포맷'은 이를 적용하는 과정에서 수정,보완되어 '한국문헌자동화목록법: 단행본용 표준용포멭' 제1판으로 제정되었다
  74. 이 시기에 추진된 대학도서관 전산화 계획과 세부 과정은 다음과 같은 자료를 통해 보다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심병규, "포항공대 중앙도서관 자동화시스템 운영현황," 도서관문화. 제30권. 제6호(1989. 11), pp.39-66
  75. 송준용, "서울대도서관 전산화 추진현황," 도서관, 제49권, 제2호(1994, 여름). pp.56-65
  76. 김두연·강우상, "대학도서관전산화 추진현황," 국립대학도서관보, 제12집(1994), pp.59-82
  77. 유길호, "부산여자대학 도서관자동화 계획" (부산여자대학교, 1992) 등
  78. 송준용, "서울대도서관 전산화 추진현황," 도서관, 제49권, 제2호(1994, 여름). pp.56
  79. 이처럼 일부 대학도서관들이 서로 다른 포뱃을 사용함으로써 서지 데이터의 표준화가 이루어지지 않자, 1988년5월 국립대학전산실무위원회에서는 포맷사용에 대한 표준방안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변정숙, 전게서, p.8)
  80. 국립중앙도서관 한국문헌자동화목록법 개정위원회 편, 한국문헌자동화목록법 : 단행본용 표준포멭(국립중앙도서관, 1984), p.iv
  81. 현규섭, "자동화목록법(KORMARC)의 저자표시 독립원칙: 속성데이터 편성원칙을 확립하기 위한 연속적 연구(1)," 도서관, 제47권, 제4호(1992, 8), p.11
  82. 이와 관련하여, 이 시기에는 US MARC과 영미목록규칙(AACR)에 대한 내용이 그 어느 때보다도 집중적으로분석되었다
  83. 이와 관련된 대표적인 연구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성기주, "목록 전산화에 있어 목록규칙 적용상의 문제,"도서관, 제40권, 제1호(1985,2), pp.29-33
  84. 문명신, "목록시스템 구축에 있어서 K0RMARC의 활용사례," 정보관리학회지, 제14집(1991, 6), pp.50-61
  85. 현규섭, "자동화목록법(K0RMARC)의 저자표시 독립원칙: 속성데이터 편성원칙을 확립하기 위한 연속적 연구(1),"도서관, 제47권, 제4호(1992,8), pp.3-31
  86. 현규섭, "자동화목록법(KORMARC)의 서명속성 분해: 속성데이터 편성원칙을 확립하기 위한 연속적 연구(2)."도서관, 제48권, 제6호(1993, 12), pp.3-22
  87. 정철모, "K0RMARC에 관한 및 가지 문제점," 도서관, 제51권, 제4호(1996, 겨울),pp.3-15
  88. 이경호, "한국문헌목록정보(LORMARC)의 문제점 및 개선방향에 관한 연구," 한국도서관 ·정보학회지 제30권, 제3호(1999. 9). pp.295-322
  89. 이제환, "대학도서관 자동화시스템의 품질평가," 한국도서관·정보학회지, 제30권, 제1호(1999, 3), p.10
  90. 앞서도 언급했듯이, KORMARC 포맷이 개발된 후 이 포맷에 입력하는 기술규칙으로써 국립중앙도서관에서는ISBD를 적용하고자 하였다. KORMARC 포맷의 근간이 된 LC MARC가 ISBD를 기초로 개정된 AACR2에 준하여 입력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로서는 '한국목록규칙'이 ISBD에 따라 개정되기 이전이었고, 따라서 국립중앙도서관에서는 ISBD에 따라 KORMARC 포맷에 적용할 기술규칙을 독자적으로 결정하기로 하였다. 이 때까지만 하더라도 이 규칙은 주로 국립중앙도서관전산실에서만 사용되었으나, 국립중앙도서관의 인쇄카드가 배포되기 시작하자 이를 이용하는 도서관들에도 이 규칙이 공지될 필요가 있어 공식적으로 출간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출간된 것이 개정을 거듭한 끝에 지금의 '한국문헌자동화목록기술규칙' 이 되었다. 이처럼 목록기술규칙이 이원화되자 목록데이터의 표준화에 대한 논의가 추가적으로 발생했고, 이에 따라 다음과 같은 연구물들이 생산되었다: 조수련·조순영, "분담목록시스템을 위한 데이터 표준화(I)",국립대학도서관보 제12집 (1994. 6), pp.830198
  91. 조수련 · 조순영, "분담목록시스템을 위한 데이터 표준화(D)",국립대학도서관보 제13집 (1995. 6), pp.108-138
  92. 조수련·조순영, "분담목록시스템을 위한 데이터 표준화(Ⅲ)",국립대학도서관보 제14집 (1996. 6), pp.69-80
  93. 도태현, "한국의 목록 표준화를 위한 방안 연구: 목록 관련 규칙을 중심으로,"한국도서관·정보학회지, 제30권. 제14호(1999, 12), pp.327-350
  94. 대표적으로 두 규칙 모두 '기본표목'에 관한 원칙이 없었다. 특히, '한국목록규칙 제3판'에서는 도서식별의 구실을 하는 '기술부'와 검색의 실마리 구실을 하는 '표목부'를 각기 독립시키는 목록기입방식을 채용하였는데,'3판'을 펴낼 당시 '표목부'에 대한 규정이 마무리 지어지지 않아 우선 급한 대로 완성핀 '기술편'과 '표목올림지시편'만을엮어 펴내게 되었다. 그러나 그 이후로도 한국목록규칙에서 '표목부'에 대한 사항은 추가되지 못하였다. 마찬가지로, '한국문헌자동화목록형식'에서도 1xx의 '기본표목'이라는 항에 "이 필드는 개인명이 기본표목으로 채택될경우에 사용한다"고 언급되어 있을 뿐 기본표목의 선정이나 그 기입형식은 어떻게 하라는 지시나 지침이 없으며,'한국문헌자동화목록기술규칙'에서도 "기본표목은 목록규칙에 의해 부여된다"고만 기술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두 규칙은 2004년 '한국목록규칙 제4판'으로 통합되면서, 기본표목에 대한 다양한 이론과 해석을 검토한 후원칙적으로 이 개념을 목록에서 제외하기로 최종적으로 결정되었고, 그 결과 현재 새로 개정된 목록규칙에서도 기본표목은 규정되지 않고 있다
  95. 이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는 다음의 자료에 상세히 나와 있다: 이제환.KERIS 서지 DB의 품질관리를 위한 평가모델개발 및 개선방안 수립(한국교육학술정보원, 2001) ; 조순영, "종합목록 데이터의 오류 유형에 관한 연구: KERIS종합목록의 학위논문 서지데이터를 중심으로," 한국문헌정보학회지, 제36권, 제4호(2002, 12), pp.5-19 : 노지현,"유용성의 관점에서 본 도서관목록의 품질," 한국문헌정보학회지, 제37권, 제2호(2003, 6), pp.107-134
  96. 가령. 메타데이터의 도입 초기 발간된 연구물을 살펴보면, 메타데이터가 도입될 수밖에 없는 기본적인 환경과배경에 대한 논의보다는 당시 서구에서 논의되고 있던 메타데이터의 기술과 형식을 소개하거나 대표적인 메타데이터를 간략하게 언급하고 있는 글들이 오히려 많이 발간되었음을 알 수 있다. 문헌정보학에서 메타데이터에 대한 논의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메타데이터의 형식과 구조' (문헌정보처리연구회, 1998)도 당시의 이러한 움직임을 반영한 것이었다
  97. 이들 연구에서는 기존의 KORMARC 형식을 이용하여 디지털 자원을 기술하기 위한 구조를 제안하고, 더불어더블린코어 메타데이터를 참조로 하여 MARC 형식과는 독립적인 새로운 기술형식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전자는 US MARC에서 제시한 856 필드 등을 KORMARC 형식에 적용하는데, 그리고 후자는 더블린 코어를 중심으로 디지틸 자원의 기술구조와 구문을 제시하는데 그침으로써 실질적으로 '우리'의 실정에 맞는 표준 형식을개발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연구는 국내 최초로 메타데이터 표준을 제시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이루어진 대규모 프로젝트로서, 이후 메타데이터와 관련한 논의를 전개시키는데 기초 토대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
  98. 이와 관련된 입장은 디지틸 정보자원에 대해서도 기존의 MARC 형식으로 통합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로서는, '메타데이터는 완전한 목록의 대체수단이 되기 위해서는 보다 완벽한 규칙의 정비와 함께 도서관계의합의가 있어야 가능할 것이며, 이는 자료의 상세한 기술이 목적이 아니라 신속한 탐색을 목적으로 한 것이므로목록에 비해 식별요소가 부족하고, 전거파일과 같은 제어수단이 사용되지 않아 도서관의 서지데이터와는 질적으로 차이가 있어', '디지털 자료를 조직하는 데에도 기존의 MARC 형식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이라고주장하고 있다. (김정현. "디지털 정보자료 관련 목록규칙의 동향", 정보관리연구 제34권 3호 (2003. 9). p.9)
  99. 이것은 '분산구조'라는 관점에서 메타데이터의 구조를 특정 형식으로 제한하지 않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관점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이용자의 수준과 메타데이터의 적용분야마다 요구되는 데이터요소와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어떤 단일형식의 메타데이터도 모든 조건을 충족시킬 수 없으며, 또한 특정 형식이 무한정 확장될 수도 없다는인식에 기반하고 있다.(첨단학술정보센터, '메타데이터를 이용한 도서종합목록 구축에 관한 연구' (첨단학술정보센터. 1998), p.3)
  100. 김태수, "MARC 데이터의 메타데이터 변환 연구," 국회도서관보, 제35권, 제6호(1998, 12), pp.3-14 : 김태수"메타데이터 변환과 자원기술구조의 연구," 정보관리학회지, 제30권, 제4호(1998. 12), pp.95-112 등
  101. 이재윤, "메타데이터 환경과 과제," 데이터베이스 월드, 통권67호(1998, 12), p.112
  102. 김은수 ·문숙희, "연세대학교 디지틸 도서관의 메타데이터 구축 사례," 도서관, 제56권, 제4호(2001, 겨울).pp.54-55. 이 외의 연구들에서도 이와 유사한 논지가 많이 나타난다
  103. 서울대학교, 서울대학교 전자도서관 디지털 컨델츠 구축을 위한 표준화 연구(서울대학교, 2002), p.96
  104. 단위 도서관이나 개별 자료의 유형별로 개발된 메타테이터 형식에 관한 연구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김은수·문숙희, "연세대학교 디지털 도서관의 메타데이터 구축 사례," 도서관, 제56권, 제4호(2001,겨울),pp.52-76
  105. 김현희, "기록물정보 관리를 위한 메타데이터 설계와 구현에 관한 연구," 정보관리학회지, 제18권, 제4호(2001, 12). pp.57-81
  106. 김진아·김태수, "동영상 정보의 메타데이터 구축에 관한 연구," 정보관리학회지, 제18권, 제4호(2001, 12), pp.15-35
  107. 최유미, "서울대학교 전자도서관구축을 위한 메타데이터 연구," 국립대학도서관보, 제20집(2002, 5), pp.5-24
  108. 한종엽, "해양 전자정보자원 메타 데이터베이스 시스템 설계 및 구현방안에 관한연구," 한국도서관 ·정보학회지, 제33권, 제2호(2002, 6). pp.159-179
  109. 이에 대해 천혜봉은 당시의 안타까운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새로운 개념의 도서관학의 이론과 실제가 이 땅에 이식된 것은 10여 년 전의 일이며, 그것은 전적으로 美式 유형의 것이었다. 그 당시로서는 어쩔 수없는 일이기는 했으나, 그저 덮어 놓고 익히고 흡수했던 우리는 그 뒤 호된 시련을 겪어야만 했다. 그것은 두말할나위도 없이 경제 ·정치 ·문화 ·사회 ·교육의 제도와 사정이 워낙 다르고 뒤진 우리에게, 이질적이고 차원이 높은 그것이 그대로 적응될 리 없기 때문이었다. 純美式의 관리가 후진성을 떤 우리 현실에 그대로 적용될 리 없었고, 수서정책이 빈약한 예산으로 운용되는 우리에게 그대로 맞아들 리 없으며, 정리방법도 책의 내용과 형태가판이한 동양 고유의 자료를 분류하고 목록하는데 또한 그대로 채택될 리 없었음으로 두루 경험한 사실이 아니었던가." (천혜봉, '古書分類目錄法' (한국도서관협회, 1970), 自序 중에서)
  110. 이러한 경향은 우리 학문의 '현실적합성'과 '적실성'이라는 점에서 끊임없이 비판을 받아왔다. 가령, 김정근이 제기해 온 문제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우리나라에 있어서 도서관운동과 이를 뒷받침하는 이론 작업을 함에있어서 '적실성'(relevancy)의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우리나라의 도서관학, 적어도 강당 도서관학은 외국의 도서관학, 주로 아메리카 도서관학의 압도적인 영향 밑에서 발전해왔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도서관학연구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많이 받는 영역에 속한다. 그래서 시공을 달리하는 아메리카 사회의 도서관 문제해결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배태된 이론과 연구방법을 그대로 우리 사회의 도서관문제 해결을 위해 도입하는 데에는 많은 어려운 점이 따른다. 바람직하기로는 한국의 도서관학은 한국의 도서관 현장과 그 환경에 대한 관찰에서일반적 법칙을 도출해 내는 귀납적 방법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의 도서관학은 이원칙을 그다지 잘 따르지 못해왔다. 아데리카 도서관학의 이론과 접근방법을 한국의 도서관 현실에 그대로 적용시키려고 하는 경우가 많았다. 김정근, "대학도서관운동에 있어서 주체의 문제: 부산대학교 도서관을 중심으로",문헌정보학보(전남대 문헌정보학과) 제4집(1990, 1), pp.29-30牥攠䙬潷⁐慳琠愠卬畩捥⁇慴攁;܀ㄲ㜭ㄳ㈙Eㅔ䵂䡟㈰〷彶ㄱ渲弱㈷⹴楦Ȁㄹ฀䭩洬⁄慥ⵇ敵渻Ѐ歳捥ഀ䔱呍䉈⽶ㄱ渲⼙Eㅔ䵂䡟㈰〷彶ㄱ渲弱㈷⹰摦̀숂ȑEㅔ䵂䡟㈰〷彶ㄱ渲ᔀ䔱呍䉈弲〰㝟瘱ㅮ㉟㄰ㅃD慭慧攠䕶慬畡瑩潮映慮⁁硩慬汹⁌潡摥搠䉥慭⁕獩湧⁍潤慬⁆汥硩扩汩瑹̀㬻㬇1〱ⴱ㄰Ԁ䱏䍁䰂1㤮K業Ⱐ䉹敯湧ⵈ睡㭊潯Ⱐ䡷慮ⵊ潯湧㭐慲欬⁔慥ⵈ祯㬄k獣攈/異晩汥⼙Eㅔ䵂䡟㈰〷彶ㄱ渲弱〱⹰摦̀숂఑Eㅔ䵂䡟㈰〷彶ㄱ渲ᔀ䔱呍䉈弲〰㝟瘱ㅮ㉟ㄱㅃD慭慧攠䱯捡汩穡瑩潮⁦潲⁂物摧敳⁕獩湧⁐牯扡扩汩獴楣⁎敵牡氠乥瑷潲歳Ȁ㬻܀ㄱㄭㄲ〙Eㅔ䵂䡟㈰〷彶ㄱ渲弱ㄱ⹴楦Ȁ㈷Ḁ䱥攬⁊潮札䩡攻奵測⁃桵湧ⵂ慮朻Ѐ歳捥ഀ䔱呍䉈⽶ㄱ渲⼙Eㅔ䵂䡟㈰〷彶ㄱ渲弱ㄱ⹰摦㈁Ȁ셒ᄀ䔱呍䉈弲〰㝟瘱ㅮ㈔Eㅔ䵂䡟㈰〷彶ㄱ渲弸ㅬT桥⁉湦汵敮捥映䑹湡浩挠偲潰敲瑩敳映䝲潵湤⁓潩氠潮⁖楢牡瑩潮⁃桡牡捴敲楳瑩捳映剩杩搠䉯摹渠卡湤⁇牯畮搄;㬻㬅8ㄭ㤱᠀䔱呍䉈弲〰㝟瘱ㅮ㉟㠱⹴楦Ȁㄱ㬀䭩洬⁙潯渭卡湧㭈愬⁔慥ⵇ祵渻䍨潩Ⱐ䩡攭䩩渻䍨畮本⁃桯潮札䭩㬄k獣攍Eㅔ䵂䠯瘱ㅮ㈯᠀䔱呍䉈弲〰㝟瘱ㅮ㉟㠱⹰摦ሁȀ셞ᄀ䔱呍䉈弲〰㝟瘱ㅮ㈔Eㅔ䵂䡟㈰〷彶ㄱ渲弹㍚A⁍整桯搠景爠乯湬楮敡爠䑹湡浩挠剥獰潮獥⁁湡汹獩猠潦⁓敭椭楮晩湩瑥⁆潵湤慴楯渠啳楮朠䵡灰楮會;㬻Ԁ㤳ⴹ㤘Eㅔ䵂䡟㈰〷彶ㄱ渲弹㌮瑩昁6⼀䱥攬⁃桯潮ⵋ楬㭌敥Ⱐ䡡捫ⵙ潮朻䭡湧Ⱐ奯畮札䩯湧㬄k獣攍Eㅔ䵂䠯瘱ㅮ㈯᠀䔱呍䉈弲〰㝟瘱ㅮ㉟㤳⹰摦䐁Ȁ셂ᄀ䔱呍䉈弲〰㝟瘱
  111. 물론 이러한 논점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충분히 있다. 우리의 목록이 미국을 비롯한 정보선진국에 비해 그 품질이 떨어지는 이유가 목록에 내재하는 철학이나 원리에 대한 진지한 성찰 없이 외형적 모양새를 무비판적으로 그대로 수용해온 형식주의 때문인지, 아니면 최소한 외형적 모양새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인지를단정지을 수 있는 구체적인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수입의 과정에서 외형적 모양새가 아니라내면의 깊이를 충분히 이해하고자 했다면, 그리하여 외형적 모양새나마 제대로 모방했다면, 지금처럼 목록의 품질이 조악한 상태에 이르지는 않았을 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