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1-1. 연구의 목적
현존하는 조선시대 민가는 그 건립연대가 14세기로 올라가며 19세기까지 이어진 전통가옥으로서 수백 채에 이르며 그 가치를 인정받아 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민가는 불교나 유교, 궁궐 건축에 비해 규모가 작고 가구 또한 단순하나, 수세기에 걸친 우리나라의 전통 주거로서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다.
민가는 그 가치만큼이나 오래전부터 많은 관심 속에 다방면으로 연구되어 왔다. 민가의 평면구성을 파악하여 분류하였고, 지역별 민가의 건축적 특성에 관한 연구 성과를 내었으며, 민가의 가구에 관한 연구 역시 돋보인다.
민가의 가구에 관한 연구는 가구형식과 기둥상부 결구방식, 가구 구성의 상관성에 관한 연구 등 다방면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이들 연구는 지역별 연구가 주를 이루고, 전국적인 연구로 확대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이는데, 민가의 사례가 방대하다는 점이 그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근자에 이루어진 ‘한옥기술개발 R&D’ 사업1)의 성과로 ‘전통한옥사례DB구축’이 이루어져 연구의 길이 열렸다. 가구에 관한 수치 자료를 토대로 통계적 분석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통계적 분석은 민가 종단구성에 대한 빈도분석을 통해 전국적인 빈도와 시대별 비중을 파악할 수 있고, 종단구성의 규모와 변작, 물매의 범위와 평균치를 파악하여 상관성을 도출할 수 있으며, 종단구성에 따른 규모의 차이 검정도 가능하다. 또한 부재의 단면치수 분석을 통해 종단구성별 차이점과 시대별 변화를 파악하는 등 규모와 부재치수에 대한 다각도의 분석을 시도해볼 수 있다.
따라서 본 연구는 현존하는 조선시대 민가의 가구에 관한 통계적 분석으로 오량가를 중심으로 규모와 변작, 물매 등 가구구성에 대한 특성과 차이점을 종단 구성별로 파악하고자 한다. 또한 주요부재의 단면치수를 분석하여 종단구성별 차이점을 살피고, 나아가 시대별 변화도 살펴, 조선시대 민가의 조명에 일조하고자 한다.
1-2. 연구의 방법
본 연구에 적용된 조선시대 민가는 총 120채로 문화재로 지정된 안채 및 사랑채이다. 이들 민가에 대한 기초 자료는 국가한옥센터의 전통한옥사례DB 2) 중 오량가를 대상으로 수집하여 일부 수정 및 보완한 것이며, 연구 대상 민가를 정리하면 <표 1>과 같다.
표 1. 연구대상 가옥
‘전통한옥사례 DB’에 접속하면 총 314채가 검색되고, 용도를 ‘주택’으로 한정하면 180채로 좁혀지며, 이들 중 5량가를 선별하여 120채의 자료를 수집하였다. 건립년대와 평면형태를 비롯한 종단구성과 전면길이, 측면길이, 기둥높이, 가구높이 등 규모 관련 자료와 변작과 물매, 부재단면치수를 수집하였다. 오류 검토를 위해 기술통계를 이용한 최저치와 최고치 분석을 통해 과도한 수치는 확인하여 오류를 수정하였다.
연구내용은 크게 종단구성과 가구형식, 가구구성의 분석, 주요부재의 단면치수 분석으로 구성된다. 먼저 종단구성과 가구형식에서 종단구성에 따라 민가를 분류하여 그 빈도를 파악하고, 시대별 변화를 살펴본다.
다음으로 가구구성의 분석은 첫째, 전면칸크기, 측면길이, 기둥높이, 가구높이를 분석하여 오량가의 규모를 파악하고 종단구성별 평균치를 도출한다. 이때 종단구 성별 분석은 빈도가 높은 홑전퇴집과 홑전후퇴집, 양통집을 대상으로 삼는다. 둘째, 변작을 분석하여 종단구성에 따른 가구 단면구성의 평균치를 파악하고, 변작에 영향을 미치는요인을 상관관계분석을 통해 시도한다. 셋째, 물매를 분석하여 종단구성에 따른 물매의 평균치를 파악하고, 물매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상관관계분석을 통해 알아본다. 이들 종단구성에 따른 규모의 차이를 독립표본 t검정을 통해 파악한다.
주요부재의 단면치수 분석에서 기둥, 대들보, 도리와 수장폭으로 불리는 장혀의 단면치수를 종단구성별로 파악하고, t검정을 통해 그 차이점을 살핀다. 나아가 주요부재의 단면치수를 시기별로 분석하여 그 차이점을 살핀다.
종단구성과 시대별 차이의 분석, 규모와 부재단면 치수와의 상관성은 통계패키지 ‘SPSS 18’을 이용하였다. t검정(T-test)은 두 집단간의 평균의 차이가 통계적으로 유의한지를 파악할 때 이용하는 통계기법으로 규모와 변작, 물매, 부재치수 등 종단구성에 따른 차이의 분석에 부합된다.3) 또한 상관관계분석(Corelation Analysis)은 변수들간의 관련성을 분석하는 기법으로 기둥높이, 측면길이, 변작, 등 여러 변수들 간의 상호관련성을 파악하는데 부합된다.4)
2. 이론고찰
‘한옥사례DB’에서는 민가의 가구를 총 8가지의 종단구성으로 구분하였다. 크게 홑집과 양통집, 세겹집으로 구분되는데, 이는 측면 칸수로 구별한 것으로 한 칸은 홑집, 두 칸은 양통집, 세 칸은 세겹집에 해당된다. 또한 퇴의 구성에 따라 전면에 퇴를 꾸민 것은 전퇴집, 후면에 꾸민 것은 후퇴집, 전후에 모두 꾸민 것은 전후퇴집으로 세분된다.따라서 홑집, 홑전퇴집, 홑후퇴집, 홑전후퇴집, 양통집, 양통전퇴집, 양통전후퇴집, 세겹집으로 분류된다.5)
전통건축 관련 연구에서 수치분석이 두드러지기 시작한 것은 비례체계에 관한 연구일 것이다. 특히 포작과 관련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었는데 주심포 양식의 공포, 소로, 주두, 첨차 등 관련 부재들의 비례를 분석한 연구6) , 다포를 대상으로 공포 부재의분수비례, 부재간의 비례체계를 분석한 연구7) 등 다수이다. 초기의 연구는 단순한 빈도와 평균값에 의존한 수준이었으나, 90년대에 들어서 고급통계에 의한 연구가 나타난다. 상관관계, 회귀분석과 같은 통계패키지를 이용한 통계적 분석을 진행한 연구를 정리하면 <표 2>와 같다.
표 2. 통계적 분석을 적용한 전통건축 관련 선행연구
이들 연구 중 민가를 대상으로 삼은 것은 2건이며, 전남지방 중상류주택 안채를 대상으로 삼은 가구구성의 상관성에 관한 연구8)는 가구형식을 1고주, 2고주, 무고주로 구분하여 평면(측면간격)과 입면(기둥높이, 천장고 등) 요소들이 부재(기둥, 보) 단면적에 미치는 영향 등 그 상관성을 밝혔다.
민가 이외의 연구로서 통계적 분석 기법을 적용한 연구로 비례체계의 연구9)가 꼽힌다. 조사보고서의 실측치를 토대로 비례와 상관관계를 통계 분석한 것으로 영조규범의 규칙성을 밝히고자 하였다. 전국의 사찰, 유교, 관아건축 중 단층 73동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 민가는 변화양상이 다양하다는 이유로 제외되었다.
민가는 주지하다시피 한 집에서도 평면구성과 실의 용도, 지붕형태 등에 따라 다양한 가구구성을 보인다. 이러한 점이 민가에 대한 통계분석 연구의 어려움이라고 하겠다.
본 연구에 적용된 규모와 단면치수는 대청을 기준으로 삼은 것으로 민가 종단구성에 대해 망라할 수는 없으나 그 일면이나마 조명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3. 조선시대 민가 오량가의 가구형식
먼저 분석대상 민가 총 120채를 시대별로 빈도를 파악하였다. 연구대상 민가들이 16-17세기에 주로 경북을 중심으로 분포하다가 18-19세기에는 타 지역에도 넓게 분포하는 현상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시대별 분석이라 하더라도 지역적 편중성이 있음을 밝힌다.
표 3. 연구대상 민가의 지역별, 시기별 빈도
오량가의 종단구성을 대청을 기준으로 분류하였다. 총 7가지로 홑집, 홑전퇴집, 홑후퇴집, 홑전후퇴집, 양통집, 양통전퇴집, 양통전후퇴집, 세겹집으로 구분되는데, 양통전후퇴집 사례는 양통전퇴집과 양통집으로 수정·분류하여10) 총 7가지로 빈도를 파악하고 시대와 지역별로 정리하면 <표 4>와 같다.
표 4. 종단구성별 빈도와 시대별, 지역별 분포
지역별로 살펴보면 경북이 38채로 가장 많고, 충남(28채), 충북과 전남(17채), 경기(13채) 순으로 나타난다. 종단구성별로 두드러지는 것은 양통집 형식으로 대부분 경북지역에 지어진 것이다. 이와 같이 전국을 대상으로 삼은 것이나 지역별 빈도의 차이가 있고, 지역별 종단구성의 비중도 차이가 있음을 밝힌다.
홑집 사례는 안동도암고택의 안채이다. 이 집은 ㅁ자형의 비교적 작은 규모의 안채로몸채의 대청이 전면 2칸의 통칸으로 시설되어 홑집으로 분류되고 있다. 홑후퇴집의 사례로 봉화계서당종택의 안채를 들 수 있고, 세겹집은 고성어명기옥 안채와 삼척신리소재너와 집 안채가 해당된다.
홑집 형식은 총 89채(73%), 양통집 형식은 30채(25%), 세겹집은 2채(2%)로 파악되어 홑집 형식이 주를 이루는 것을 알 수 있다, 홑집 형식 중에서는 홑전퇴집이 47채(39%)로 가장 많고, 홑전후퇴집 39채(33%)로 다음 순이다. 양통집 형식은 양통집이 20채(16.5%), 양통전퇴집이 10채(8.3%)로 나타난다. 따라서 조선시대 민가 오량가의대표적인 종단구성은 홑전퇴집, 홑전후퇴집, 양통집이라 할 수 있다.
시대별 빈도로 보아 후기로 갈수록 홑집형식의 비중이 커지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연구대상 민가들이 16-17세기에 주로 경북을 중심으로 분포하다가 18-19세기에는 타 지역에도 넓게 분포하는 점과 관계지어 볼 수 있다.
4. 조선시대 민가 오량가의 가구구성
민가 오량가 가구의 개념도를 도시하면 <그림 1>과 같다. h1은 기둥높이, h2는 중도리 높이, h3는 종도리 높이이다. h2와 h3의 합은 상부가구의 높이(이하, 가구높이)가 된다. w1은 중도리 거리, w2는 종도리 거리이고, W는 측면길이를 말한다. s1은 장연물매, s2는 단연물매를 뜻한다.
그림 1. 오량가구의 개념도
전·후 주심도리 사이의 거리가 측면길이가 되고, 주심도리의 높이는 평주의 높이가 된다. 중도리의 거리는 변작과 관계되고, 고주를 세울 경우 퇴의 깊이와도 상관된다. 중도리의 높이는 장연의 물매와 관계되고, 종도리의 높이는 단연 물매와 관계된다. 이와 같이 도리의 위치는 가구 구성에 있어 가장 핵심이라고 할 수 있으며, 도리 위치의 설정은 각 부재의 길이와 그 단면치수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분석 대상 가옥의 도리 위치를 종단구성에 따라 좌표로 나타나면 다음 <그림 2>와 같다. 좌표에서 D1(●)은 주심도리, D2(☓)는 중도리, D3(◼)는 종도리의 위치를 뜻한다.
그림 2. 오량가구의 도리 위치(左:홑전퇴 집, 中:홑전후퇴집, 右양통집)
도리 위치의 분포를 보면, 중도리 위치의 경우 홑전퇴집과 홑전후퇴집 모두 1∼1.5m사이에 집중 분포함을 알 수 있고, 중도리와 종도리의 간격은 홑전후퇴집이 홑전퇴집 보다 멀다는 점과 양통집은 타 홑집 형식에 비해 종도리 높이가 높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어가구의 구성이 종단구성에 따라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4-1. 규모
전면간살(전면칸크기)과 측면길이(W), 기둥높이(h1), 가구높이(h2+h3)를 종단구성에따라 정리하면 <표 5>와 같다.
전면간살은 2.2∼3.21m 범위 즉, 7자∼10자 사이이고, 평균은 8자반 정도로 종단구성에 따른 차이는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측면길이는 세겹집인 고성어명기 가옥의 안채가 7.5m로 가장 크다. 세겹집을 제외하면 2.64∼6.94m의 범위이고, 평균은 홑전퇴집 4.25m, 홑전후퇴집 5.03m, 양통집 4.94m로 나타나, 홑전퇴집의 측면길이가 타 종단구성에 비해 작은 것으로 파악된다.
표 5. 오량가구의 규모
기둥높이는 외평주의 높이를 말하며, 1.8∼3.26m의 범위로 평균은 홑전퇴집과 홑전후퇴집이 2.53m, 양통집이 2.57m로 전면간살과 비슷한 8자반 정도의 높이이며, 종단구성에 따른 차이는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여기서 특이한 점은 기둥높이 3m 즉, 약 10자가 넘는 사례는 안동, 하회, 봉화에 자리한 가옥으로 대부분 경북 지역에 해당되며,이는 당시의 가사제한과 관련하여 고찰해볼 여지가 있다.
가구높이는 주심도리에서 종도리까지의 높이를 말하며, 0.59∼2.52m의 범위로 홑전퇴집의 평균은 1.14m, 홑전후퇴집은 1.17m, 양통집은 1.43m로 나타나고, 양통집이 홑전퇴집과 홑전후퇴집 보다 상부가구가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해보면, 간살 즉, 칸의 크기는 전면의 경우 종단구성에 따른 차이가 없고, 측면은 홑전후퇴집과 양통집의 크기가 홑전퇴집보다 크다고 할 수 있다. 한편 가구의 높이는 양통집이 타 종단구성에 비해 높은 것으로 분석되었다.
4-2. 변작과 물매
다음으로 변작과 물매를 분석하였다. 가구의 큰 틀은 변작과 더불어 서까래의 물매에 따라 그 구성이 달라진다. 변작은 중도리의 위치를 결정할 뿐 아니라, 고주를 사용할 경우 퇴깊이와 연관되고, 물매 역시 고주의 길이와 연관될 뿐만 아니라, 종도리의 높이를 결정짓는 요소로 작용되기 때문이다.
변작은 대청 종단면의 종단길이를 중도리위치의 거리로 나눈 값이며, 중도리위치의 거리는 처마도리에서 중도리까지의 거리를 말한다. 장연물매는 처마도리에서 중도리까지의 높이를 그 길이로 나누어 10을 곱한 값이다. 단연물매는 중도리에서 종도리까지의 높이를 그 길이로 나누어 10을 곱한 값이다. 변작과 물매값을 정리하면 <표 6>과 같다.
표 6. 변작과 물매
변작은 3분변작과 4분변작으로 대별되는데, 연구대상 가옥 중 변작 값을 알 수 있는 것은 총 89채로, 최저 2.2에서 최고 5.52에 분포하며, 평균 3.76(표준편차 0.72)로 4분변작에 가깝다.
종단구성별로 보면, 홑전후퇴집 평균 4.19, 양통집 3.81, 홑전퇴집 3.4 순으로 나타나, 홑전후퇴집의 변작 평균치가 가장 높은 것으로 파악된다. 홑전퇴집이 홑전후퇴집과 양통집과 변작에 있어 차이가 있고, 홑전후퇴집과 양통집간에는 t검정 결과 차이가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수집된 장연물매는 총 91채로 1.87∼8.56의 범위이고, 평균 3.89(표준편차 .891)로 나타난다. 종단구성별로 보면, 양통집 평균이 4.60, 홑전퇴집 3.78, 홑전후퇴집 3.65 순으로 나타나, 양통집의 장연물매가 가장 가파른 것으로 파악된다. 또한 홑전퇴집과 홑전후퇴집의 장연물매는 차이가 없고, 양통집의 장연물매가 홑집형식에 비해 가파른 차이점이 있는 것으로 t검정을 통해 분석된다.
단연물매를 알 수 있는 가옥은 총86채로 2.31∼14.44의 범위로 나타나고, 평균 7.37, 표준편차 2.38로 분석된다. 종단구성별로 보면, 홑전퇴집 평균 8.04, 양통집 7.86, 홑전후퇴집 6.1 순으로 나타나, 홑전퇴집의 단연물매가 가장 가파른 것으로 파악된다. 또한 홑전퇴집과 홑전후퇴집, 홑전퇴집과 양통집의 단연물매의 차이가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홑전퇴집의 단열물매가 가파른 이유는 홑전퇴집의 측면길이가 타 종단구성에 비해 작다는 점과 관계 지을 수 있다. 즉 전퇴의 깊이를 결정하는 중도리의 위치는차이가 없으나 측면길이가 비교적 작기에 지붕물매를 형성하기 위해 자연히 단연의 물매가 높아진 것으로 풀이된다.
이상과 같이 홑전퇴집과 홑전후퇴집이 변작 차이를 보이는 것은 측면길이 및 퇴깊이와 연관된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먼저 변작과 측면길이의 연관성을 알아보기 위해 상관관계분석을 실시하였고, 결과는 다음 <표 7>과 같다.
표 7. 변작과 측면길이의 상관관계
변작과 측면길이는 상관계수 .541(p<.01)로 양의 상관성을 갖는 것으로 분석되었다.즉 측면길이가 커지면 변작도 커진다고 해석된다. 또한 측면길이는 전술하였듯이 홑전후퇴집이 홑전퇴집 보다 큰 것으로 나타났다. 퇴깊이에 대한 홑전퇴집과 홑전후퇴집의 차이를 분석한 t검정 결과는 <표 8>과 같다.
표 8. 퇴깊이에 대한 종단구성별 t검정
t검정 결과 홑전퇴집과 홑전후퇴집의 퇴깊이는 평균차 74mm, 유의확률 .420(p>.05)로 차이가 없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따라서 홑전후퇴집은 홑전퇴집 보다 측면 길이가 증가함에도 퇴깊이는 일정하기에 자연히 변작이 커진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고주의 위치는 퇴의 깊이를 결정할 뿐 아니라, 중도리의 위치와 동일선상에 있기에 변작과 직결되며, 퇴깊이의 설정이 변작에 영향을 준 것이다.
5. 조선시대 민가 오량가의 주요부재 단면치수
주요부재의 단면치수를 분석하였다. 기둥과 대들보, 도리, 장혀의 치수를 분석하였고, 종단구성에 따라 정리하면 <표 9>와 같다.
표 9. 종단구성별 주요 부재치수
기둥크기는 전반적으로 보아 최소치는140mm, 최대치는 390mm로 나타나고, 평균값은 양통집(240mm), 홑전퇴집(211mm), 홑전후퇴집(207mm)순으로 파악된다. 대들보의 춤은 165∼460mm 범위로 평균은 양통집(355mm), 홑전퇴집(300mm), 홑전퇴후퇴집(289mm) 순으로 대동소이하고, 대들보 폭은 120∼450mm 범위로 양통집(275mm), 홑전퇴집(261mm), 홑전후퇴집(223mm) 순으로 종단구성에 따라 다소 차이를 보인다. 도리의 춤은 135∼286mm 범위로 평균은 양통집(202mm), 홑전퇴집(196mm), 홑전후퇴집(191mm) 순이고, 그 폭은 120∼240mm의 범위로 평균은 양통집(189mm), 홑전후퇴집(176mm), 홑전퇴집(172mm)로 나타난다. 한편 장혀의 춤은90∼180mm 범위로 평균은 홑전퇴집과 홑전후퇴집이 143mm, 양통집이 141mm로거의 같은 것으로 나타나며, 장혀폭은 72∼105mm 범위로 평균은 양통집이 88mm, 홑전퇴집과 홑전후퇴집이 86mm로 대동소이한 것으로 파악된다.
전체적으로 보아 양통집이 홑집 형식에 비해 주요부재치수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고,이들 주요부재의 단면치수가 종단구성에 따라 차이가 있는지를 알아보고자 독립표본t검정을 실시하였다. t검정 결과 기둥크기는 홑전퇴집과 양통집, 홑전후퇴집과 양통집이 유의한 차이를 보이고, 대들보춤은 홑전후퇴집과 양통집,대들보폭은 홑전퇴집과 홑전후퇴집, 홑전후퇴집과 양통집이 차이가 있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도리는 폭만 홑전퇴집과 양통집이 유의한 차이를 갖고, 장혀는 종단구성에 따른 차이가 없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따라서 홑집 형식인 홑전퇴집과 홑전후퇴집은 대들보폭을 제외한 나머지 부재 단면치수는 대동소이하다고 할 수 있고, 양통집은 홑집 형식에 비해 평균차로 보아 기둥은1치, 대들보춤은 1∼1.5치, 대들보폭도 1.5치 정도 크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장혀는 종단구성과 관계없이 춤은 3치∼6치, 폭은 2.5∼3.5치로 일관되고 있다. 특히 장혀폭은 소위 수장폭으로서 민가의 영조에 있어 종단구성과 관계없이 단일성이 지켜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주요부재의 단면치수를 시기별로 구별하여 정리하면 <표 10>과 같다. 16세기이전과 17, 18, 19세기로 나누어 볼 때, 장혀춤을 제외한 모든 주요부재의 단면치수 평균값은 후대로 갈수록 줄어들었음이 확인된다. 특히 기둥크기의 감소가 가장 두드러지는데 16세기이전과 17세기는 평균차 41.33mm로 감소하였고, 18세기에서 19세기는 평균차 37.20mm로 줄어들었다. 임진왜란 이 전인 16세기이전과 개화를 앞둔 19세기를 놓고 본다면 기둥크기는 약 90mm 즉, 3치가 줄어든 셈이다.
표 10. 시기별 주요 부재치수
끝으로 가구의 규모와 주요부재의 단면치수를 중심으로 상관성을 분석하였다. 상관관계 분석의 결과는 <표 11>과 같다.
표 11. 가구규모와 주요 부재치수의 상관관계
측면길이는 가구높이와 Pearson 상관계수 .443로 유의확률 p<.01 수준에서 상관관계가 나타나 양의 상관성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며, 기둥높이, 주요부재의 단면치수와는 상관성이 없는 것으로 분석된다. 기둥높이는 가구높이 및 기둥크기와 양의 상관성을 보이며, 장혀폭을 제외한 나머지 주요부재의 단면치수와 양의 상관성을 갖는다. 한편 가구높이는 도리의 단면치수와 양의 상관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며, 기둥크기는 장혀춤을 제외한 나머지 주요부재의 단면치수와 양의 상관성을 보인다. 그리고 이들부재의 단면치수 중 가구의 규모를 말하는 측면길이, 기둥높이, 가구높이와 상관성이 없는 것은 장혀폭이 유일하다.
따라서 측면길이가 커지더라도 하부가구의 높이는 일정하고, 상부가구의 높이가 상대적으로 커진다고 해석할 수 있으며, 하부가구높이와 상부가구높이는 일정한 비례를 유지한다고 풀이할 수 있다. 특히 장혀폭이 가구규모와 상관성이 없다는 결과는 민가의 영조에 있어 수장폭은 가구의 규모와 관계없이 단일성이 지켜졌음을 다시금 확인시켜 준다.
6. 결론
본 연구는 조선시대 민가에 관한 연구의 일환으로 문화재로 지정된 오량가 121채를대상으로 종단구성별 규모와 주요부재 단면치수를 분석하였으며 결론은 다음과 같다.
조선시대 민가 오량가는 종단구성에 따라 홑집, 홑전퇴집, 홑후퇴집, 홑전후퇴집, 양통집, 양통전퇴집, 세겹집으로 분류된다. 홑집 형식이 89채(73%)로 주를 이루고, 홑집 형식 중에서는 홑전퇴집이 47채(39%)로 가장 많다. 시대별 빈도로 보아 후기로 갈수록 홑집형식의 비중이 커지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연구대상 민가들이 16-17세기에 주로 경북을 중심으로 분포하다가 18-19세기에는 타 지역에도 넓게 분포하는 점과 관계 지어 볼 수 있다.
하부가구의 규모는 전면의 경우 종단구성에 따른 차이가 없고, 측면은 홑전후퇴집과 양통집의 크기가 상대적으로 크며, 상부가구는 양통집이 타 종단구성에 비해 높은 것으로 분석되어 양통집의 지붕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변작은 홑전후퇴집(평균4.19)이 가장 크고, t검정 결과 홑전후퇴집과 양통집(평균3.86)이 홑전퇴집(평균3.40) 보다 변작이 크다는 차이점이 나타났다. 홑전후퇴집이 홑전퇴집보다 변작이 큰 이유는 홑전후퇴집이 홑전퇴집 보다 측면길이가 증가함에도 퇴깊이는 일정하기 때문이며, 퇴깊이의 설정이 변작에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물매는 장연의 경우 양통집(평균4.62)이 가장 크고, 홑전퇴집(평균3.77)과 홑전후퇴집(평균3.70)의 장연물매는 차이가 없으며, 양통집의 장연물매가 홑집 형식에 비해 가파른 차이가 있다. 단연의 물매는 홑전퇴집(평균8.04)이 가장 크고, 홑전퇴집과 홑전후퇴집(평균6.10), 홑전퇴집과 양통집(평균7.77)이 차이가 있다. 홑전퇴집의 단열물매가 가파른 이유는 홑전퇴집의 측면길이가 타 종단구성에 비해 작아 지붕물매를 형성하기 위해 단연의 물매가 높아진 것으로 풀이된다.
주요부재의 단면치수는 홑전퇴집과 홑전후퇴집은 대들보폭을 제외한 나머지 부재 단면치수가 대동소이하고, 양통집은 홑집 형식에 비해 평균치로 보아 기둥은 1치, 대들보춤은 1∼1.5치, 대들보폭도 1.5치 정도 크다. 한편 수장폭으로 불리는 장혀폭은 2.5∼3.5치로 일관되어 민가의 영조에 있어 종단구성과 관계없이 단일성이 지켜졌음이 확인되었다.
대부분의 주요부재의 단면치수 평균값은 후대로 갈수록 줄어들었다. 특히 기둥크기의 감소가 가장 두드러지며 임진왜란 이전인 16세기이전과 개화를 앞둔 19세기를 놓고 보면 기둥크기는 3치가 줄어든 셈이다.
가구 규모와 주요부재의 단면치수에 대한 상관관계분석 결과, 측면길이가 커지더라도 하부가구의 높이는 일정하고 상부가구의 높이가 상대적으로 커진다고 해석되었으며,하부가구높이와 상부가구높이는 일정한 비례를 유지한다고 풀이되었다. 특히 수장폭은 민가의 영조에 있어 가구의 규모와 관계없이 단일성이 지켜졌음이 통계 분석을 통해 확인되었다.
본 연구는 통계기법을 통해 오량가의 대청을 기준으로 규모와 부재치수를 종단구성에 따라 분석한 것이다. 조선시대 민가의 가구에 대해 수치에 의한 일면만을 조명하였다는 한계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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