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1-1. 연구배경 및 목적
중국조선족1)은 한반도에서 이주하여 중국 동북지구에 정착한 과계민족이다. 중국조선족은 소수민족의 일원으로서 중국공민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조선족 문화는 수많은 고난과 정착과정에서 타 문화와 교류하면서도 정체성을 잃지 않고 음식문화, 주거문화, 의례문화 등 민속문화를 계승하고 있다.
조선족의 이주는 4단계2)를 거쳐 진행되었고 연변땅에 정착한 개척민들은 봉금령3) 폐지 후의 이주민으로 대부분 빈민이고 경제적·학문적 수양이 높지 않았을 것이기에 이주 전 살고 있던 지역의 주거양식을 유지하면서 정착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21세기 중국경제의 빠른 성장과 더불어 주민들의 생활수준과 주거에 대한 욕구도 점점 높아지고 있으며, 또한 신농촌건설4) 정책에 힘입어 농촌마을의 재개발이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이는 전통마을의 보존 측면에서 안타까운 일이며 옛 주거에 대한 보고서가 작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철거작업과 재개발작업이 진행되면서 대량의 전통주거는 유실되고 있다. 또 신농촌건설로 마을형태와 주거 양식은 획일적으로 변하고 있기에 전통마을의 주거 평면구성과 평면형식은 특징을 잃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조선족 주거에 관한 연구는 여러 측면에서 진행되고 있다. 허나 주거의 평면구성과 평면형식에 관한 연구는 미비하다. 주거에 관한 연구가 진행되어 왔지만 연구수량으로 볼 때 아직 부족하고 본 논문은 미흡하지만 조선족 주거 연구에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본 연구는 타 연구와 달리 한 개 마을에 대해 심층 분석을 진행하면서 하나의 마을에서 조선족과 한족의 주거 평면구성과 평면형식에 관한 내용을 다루면서 서로 다른 민족의 같은 환경에서의 적응능력과 변화과정을 고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1-2. 연구의 범위와 방법
본 연구의 조사범위는 신농촌건설 정책으로 현재 개발되고 있는 마을 중, 조선족과 한족이 공동으로 생활하고 있고 옛 주거의 평면구성과 평면형식을 유지하고 있는 마을을 선택하였다.
본 연구는 2017년 6차례5)의 실측답사를 통하여 연안촌 마을의 주거와 폐가를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주거평면실측과 주민들의 인터뷰를 통해 마을의 인문상황을 조사하였다.
문헌조사와 실측답사 통해 자료를 분석하였으며 항공 촬영에 의거하여 조사한 결과 연안촌의 총 주거개수는 147개이다. 그중 조사거부와 환경여건에 의해 조사 불가능하고 사진자료 부족으로 심의성이 떨어지는 표본은 제외하였으며, 신농촌건설로 획일적으로 계획된 1조 주거 50개에서 3개의 평면유닛만 표본으로 제공하여 81개 표본을 추출하였고 또 평면구성과 평면형식에 근거하여 2차 분석에 참조한 최종 표본개수는 65개<그림 5>이다.
2. 화룡시 두도진 연안촌
2-1. 연안촌마을 개요
그림 1. 연안촌 지리적위치
연안촌은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화룡시 두도진에 위치해있다. 연안촌에 관하여 김병철 『中國延邊 朝鮮族의 定著過程에 관한 硏究 - 延邊 朝鮮族自治州 和龍縣 延安村을 중심으로 -』과 『화룡현지6)』내용 일부를 요약 정리하면 초기 연안촌에 처음 정착한 것은 1900년 한족이고 조선인 처음 이주하여 정착한 시기는 1908년∼1910년경이었다.
즉 1900년 연안촌에서 처음 정착한 곳은 연안촌 4조이고 3개7)의 자연촌 마을과 3조의 증축으로 하면서 1930년에 4개의 마을이 병합되면서 1933년부터 정식으로 ‘연안촌8)’이라는 지명을 갖게 되었다.
연안촌 총면적은 3.9㎢을 차지하며 두도진과 아동저수지 사이 평원과 산간지역의 접경지대에 자리 잡고 있다. 연안촌 동부와 동남부의 대부분 지역은 하곡분지와 일부 낮은 구릉 지역이며 해발높이는 250∼400m이다. 또 연안촌의 북측에는 장인하9)와 용문촌이 있고 남측에는 해란강과 성도(省道)S202도로가 있다. 동측 2.5km 위치에 두도진 진정부와 시가지 있으며, 서측에는 아동저수지 환경보호구가 있다. 지형상 연안촌은 평원지구와 장인하를 끼고 있어 양호한 벼 재배환경으로서 ‘화룡시 두도진 영구기본농밭보호구(和龍市頭道鎮永久基本農田保護區)’로 지정되었다.
그림 2. 연안촌 지형도
2-2. 연안촌 마을의 민족분포
연안촌은 4개의 소조로 구성되어 각 소조마다 서로 다른 민족분포를 나타낸다. 연안촌의 민족분포를 보면 연안촌 2조는 조선족 25호와 한족 8호로서 조선족 가호수가 많은 비례를 차지하고, 연안촌 3조는 조선족 1호와 한족 22호로서 한족 가호수가 많은 비례를 차지한다. 하지만 연안촌 4조에서는 조선족 13호와 한족 9호를 차지하며 연안촌 2조와 3조에 비해 상대적으로 1:1 비율을유지한다. 연안촌 2조 2-13호10) <그림 4> 거주중인 림영옥11) 할머니의 인터뷰 내용에서 지금의 연안촌 1조는 재개발 되고 있지만 연안촌 1조는 2조와 같이 조선족 가호수는 한족 가호수보다 현저히 많았다고 한다.
연안촌 인구-논면적-관개시설 관계표<그림 3>에서 요해할 수 있듯 연안촌은 1960년대부터 안정기를 맞이하며 1990년대에 최전성기를 맞이하였다.
그림 3. 연안촌 인구-논면적-관개시설 관계표
연안촌 현재의 인구분포는 1960, 1970년대에는 인민 공사시기 각 생산대의 인구밀도를 조절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주하여 안정된 상태를 이루었다고 한다. 이 시기 연안촌에 이입된 가호수는 15호이고 또 고령촌에서 전염병으로 연안촌에 이주 한 가호수는 약 30호 정도이다. 이 시기 연안촌의 인구는 130여 호에 달하였는데 연안촌의 인구는 거의 2배 정도 늘어났다고 한다. 그 후 연안촌에는 대량의 인구유입 없이 자연증가 추세를 나타냈지만 근년 자녀의 교육환경과 출국노무 및 청년들의 도시진출로 인하여 다른 마을들과 같이 연안촌에서도 이농현상이 나타나 지금의 인구분포를 이루었다고 한다.
그림 4. 연안촌 주거 분포도
2-3. 연안촌 마을의 주거분포
연안촌 4개의 소조는 각각 일정한 구역형태를 가지고 있으며 전체적인 배치를 보면 선형 배치형태인 전형적인 물고기뼈형태(鱼骨状交通骨架)를 이룬다. 연안촌주거의 배치는 주간도로를 중심으로 남측과 북측 양측으로 배치되었고 북측에 장인하와 맞닿아 있으며 논 경작지 위주이다. 남측 일부는 구릉이고 밭 경작지 위주이다. 마을 주간도로는 각 소조 중심부를 지나며 도로와 주거의 배치는 주거의 용마루와 장인하가 평행배치이며 용마루 방향은 동서방향을 향한다. 또한 주민의 경작지는 매개 소조와 인구수에 따라 통제하고 분배하였으며 주민의 인구수에 의해 차이는 있지만 연안촌 각 소조의 면적은 비슷하다. 실측자료를 분석하면 매개 주거의 면적은 다소 차이는 있지만 평균 50㎡ 정도이고 현재 연안촌 1조는 계획마을로서 신축단계에 있으며 기타 소조 주거 개수는 연안촌 2조는 33개, 3조는 23개, 4조는 22개이다.
연안촌은 1960년대부터 안정기를 맞이하고 1990년대에 전성기에 도달하였다. 이러한 배경에서 1992년 한중수교를 중심으로 1992년 한중수교 전과 후 주거를 분석하였다. <그림 5>에서 요해 할 수 있듯 1992년 한중수교 전 연안촌에서 건축한 주거개수는 38개 이고 한중수교 후 2010년까지 건축한 주거개수는 39개 이다. 세부적으로 분석하면 한중수교 전 연안촌에서 건축한 주거에서 연안촌 2조의 건축개수는 21개로서 제일 많으며 전체 신축한 주거에서 5%를 차지한다. 이와 반대로 한중수교 후 연안촌에서 건축한 주거에서 연안촌 3조의 신축개수는 16개로서 41%를 차지한다.
또 이를 바탕으로 건축주거 가호수와 민족분포를 통계하면 1992년 한중수교 전 신축주거에서 조선족이 신축한 주거 개수는 23개로서 한족의 14개보다 9개 많고, 1992년 한중수교 후 신축주거에서 조선족 신축한 주거 개수는 12개로서 한족의 25개 보다 13개 적은 것으로 분석된다. 즉 1992년 전 신축주거는 35개이고 1992년 후 건축주거는 39개이다. 건축 주거개수는 비슷하며 일정한 인구수와 일정한 주거개수의 조건 하에 연안촌 개인주거는 옛 주거를 허물고 마당내부 다른 위치에 주거를 신축하였다고 추정할 수 있다. 이는 동명숙 노부부의 이야기로 요해 할 수 있으며, 동명숙 할머니 말을 인용하면 할머니의 원래 집은 마당 앞쪽에 있었지만 지금은 마당 뒤쪽에 위치하였다고 한다.
3. 연안촌 마을 건축시기별 평면형식의 변화
<그림 5>을 분석하면 1960년대, 1970년대, 1980년대 신축주거 개수와 1900년대, 2000년대 연안촌 신축주거개수 그래프는 유사한 상승 추세를 나타내고, 상대적 평균 건축연대 차이는 30년∼40년임을 추정할 수 있다. 연안촌 주거에서 같은 환경요소를 갖춘 2조의 주거에서 1960년대, 1970년대, 1980년대 주거의 현황을 비교 분석하면, 1960년대 건축한 2-25호 최호일가는 주거외부와 내부의 열화정도는 심각하며, 1970년대 건축한 2-10호 해순일가는 외벽열화는 2-25호 주거보다 양호하지만 지붕의 열화는 심각하다. 하지만 1980년대 건축한 2-20호 리성수일가 주거는 입면에서 열화는 보이지 않지만 일부 기와 그리고 평고대 등 세부적인 부분에서 열화가 진행되고 있으며, 이는 수리는 필요하지만 생활하면서 유지관리만 하면 충분히 건축수명을 연장 할 수 있는 정도이다.
그림 5. 연안촌 주거 연대별 통계표 및 막대도표
간단히 요약하면 1960년대와 1970년대 주거는 해체 후 다시 신축하여야 한다. 하지만 1980년대 주거는 간단히 수리만 하여도 건축수명을 연장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로서 연안촌의 건축주기(建筑周期)을 살펴보면 연안촌의 주거 건축주기는 35년∼40년 사이임을 알 수 있다.
표 1. 연안촌 조선족 각 년대 주거의 비교
4. 연안촌 마을주거의 특징
4-1. 연안촌 조선족민주거의 평면구성
한반도 주거건축은 본채, 마당, 배치 등 여러 요소에서 통일성을 이루지만 지형, 기후 등 자연조건의 다름에 따라 주거평면은 다양한 평면구성을 갖는다. 또한 같은 공간임에도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른 용어를 사용한다. 평면구성은 지역특징을 반영하기에 한반도와 조선족 주거건축을 분석함에 있어서 용어정리는 우선이다. 주거의 구성요소12)에서 주거의 평면은 쉽게 변하지 않는 요소 중 하나이다. 지붕의 재료, 형태는 시대에 따라 변화하지만 일단 형성된 평면은 오래 지속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 원인은 주거의 평면구성은 가족제도, 생활양식, 사회제도 그리고 생산양식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형성되기 때문이다.
함경도에서 거주하던 조선인들은 중국 연변지방으로 이주하면서 고향의 주거평면을 유지하면서 건축하였을 것이다. 연변지역의 양호한 지리적 위치 조건으로 인해 함경도에서 이주해온 조선인들이 가장 많으며, 이에 조선족의 주거도 함경도의 주거평면구성을 가지는 것이 가장 보편적이다.
연안촌 조선족 주거공간은 일반적으로 정지, 바당, 부스깨, 가마목, 웃방, 고방, 방앗간, 외양간, 창고, 마당 등 다양한 공간으로 구성되고 개인조건에 따라 주거공간은 자유롭게 배치되지만 ‘정지-부스깨-창고’공간으로 구성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정지공간은 함경도지역에서 가족생활의 중심공간이며 ‘정지’ 또는 ‘정주’라고 부른다. 연안촌에서 정지공간은 출입공간으로서 바당과 아궁이가 있는 부수깨, 그리고 취사작업을 하는 가마목, 넓은 온돌바닥이 있는 구들의 통칭하기도 하다. 어떤 지역에서는 구들공간만을 정지라고 하기도 한다. 즉 내부공간에서 정지와 부엌과의 사이에 간막이13) 없이 온돌은 기거공간만으로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함경도 주거의 특징과 유사하다.
바당공간은 부엌의 일부분이며 부엌은 주로 출입공간의 바당과 아궁이가 있는 부스깨 그리고 가마목으로 나누어진다. 주생활 중심공간 정지에서 외부로 출입하기 위해서는 바당을 거쳐야하기 때문에 바당은 현관처럼 건물의 주출입공간이며 환충공간이 되기도 한다.
부스깨에서 아궁이에 불을 피워 난방과 취사를 한다. 정지와 바당의 단 차이는 30cm 내외이지만 정지와 부스깨의 단 차이는 약 1m 정도가 된다. 또 아궁이 위에 널판자를 덮어 취사공간의 확장공간으로 보조역할을 겸하는 작업공간이기도 하다. 널판자는 처음부터 있던 것은 아니며 아궁이에서 나오는 연기와 먼지 때문에 점차 나타난 것으로,취사기능 뿐만 아니라 세수 등 기타 일상생활기능도 가능한 다목적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가마목은 부뚜막의 방언이다. 가마목은 보통 취사의 공간으로서 정지의 일부분도 포함된다. 가마목은 보통 타일로 마감하거나 시멘트로 마감하며 또한 함실 윗부분에 배치하기 때문에 장판지에 그을음이 많이 생기기도 하다.
웃방공간은 노인들이 기거하는 곳이었으나 근래에는 결혼 전 자녀들이 주로 사용하고 있다. 인접한 정지와 미서기문으로 연결되어 있고, 재봉틀이나 이불장 등의 가구들이 있다. 또한 전면마당으로 직접 출입할 수 있는 문이 있지만 최근에는 봉쇄하여 사용하지 않는다. 또 웃방은 1칸의 크기의 좁은 공간이며 활동공간은 매우 협소하다. 이공간은 흔히 아이들의 공부방으로 사용되며 벽은 장지로 되어 있어서 큰 행사시에 쉽게 개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기본이다.
먼돌공간은 창고기능의 하나 혹은 복도기능의 하나로서 주로 연안촌 조선족 주거에 나타나는 조선족 특유의 공간이다. 2000년대 들어 외양간과 방앗간 공간을 창고로 사용하고 있고 ‘창고’라는 고유명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안촌 주민들은 이 공간을 ‘먼돌’이라 불렀다. 먼돌공간은 기능적으로 다목적공간이다. 일부 주거에서는 장독대 및감자 등 양식을 저장하는 김치움 역할도 하고, 일부 주거에서는 복도 역할만 하기도 한다.
4-2. 연안촌 한족주거의 평면구성
연안촌 한족주거는 대부분 본채와 부속채로 구성되었고 본채는 사합원에서의 정방(正房) 역할을 한다. 이러한 형태의 주거는 연안촌 뿐만 아니라 연변, 동북, 중국의 여러 지역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표 2. 연안촌 조선족과 한족 주거평면구성
연안촌 한족주거는 초기에 일반적으로 3칸형(예:3-03) 평면구성을 가지고 있다. 개혁개방 후 3칸형에서 많게는 5칸(예:3-05)의 평면도 찾아 볼 수 있는데, 3칸형 평면구성에서 양쪽으로 동옥과 서옥의 뒤에 각각 방 1칸을 추가하여 복도와 부엌을 중심으로 ‘日’자형 대칭형의 평면을 가지고 있다.
내옥은 일반적으로 동옥과 서옥으로 구분하며 일부분의 소규모 주거에서는 부엌과 동옥만 존재한다. 내옥은 주로 취침공간기능이 위주이며 겨울철 ‘캉(부분온돌)’을 설치하여 난방을 한다.
동옥의 뒤에 있는 방을 ‘대옥(大屋)’이라 하고, 서옥의 뒤에 있는 방을 ‘소옥(小屋)’이라 하는데 연안촌에서 대옥과 소옥은 대부분 저장 공간으로 사용한다. 가끔 소옥은 출가하지 않은 자녀의 방으로 사용하기도 하는데 온돌이 없어 취침공간으로는 사용하지 않는다. 대옥은 장기간 물품을 저장하는 공간이고 소옥은 자주 사용하는 물품을 저장하는 공간이다. 최근 소옥은 세탁실 혹은 화장실로 사용하며 대옥은 주방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서옥과 동옥은 취침공간으로 주로 사용하고 있지만, 소옥과 대옥은 서브공간 위주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부엌에는 일반적으로 2∼3개의 솥 및 난방과 취사를 할 수 있는 아궁이가 설치되어 있다. 또한 부엌은 식사과정에서 가족사이 교류공간으로 가장 많이 쓰이고 있다.
내옥에서 캉(炕)14)이 설치되지 않은 부분을 ‘띠(地)’라고 한다. 띠(地/바당)에서는 신을 신은 채로 생활하며 침대나 의자를 사용하는 입식생활을 한다. 한족 주거의 주요한 난방방식은 캉이다. 이는 신을 신고 생활하는 공간과 신을 벗고 활동하는 공간으로 주로 조선족과 한족의 생활행위를 구분 할 수 있으며 타 민족사이의 동화과정이다.
4-3. 연안촌 주거의 평면형식 분류
연안촌의 주거평면형식은 민족별로 조선족 주거평면 형식과 한족 주거평면형식으로 분류할 수 있다. 또한 연안촌의 조선족 평면형식은 정지공간을 중심으로 분화되고 각 공간의 생활실태가 진행되므로 핵심공간인 정지를 중심으로 ‘정지중심형’으로 구분할 수 있고, 소분류로 공간의 배치방식에 따라 홑집-정지중심형(J1), 겹집-정지중심형(J2), 홑집+먼돌-정지중심형(J3), 먼돌+겹집-정지중심형(J4)으로 분류한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연안촌 한족의 주거평면형식을 핵심공간의 기능에 따라 거실중심형(L), 부엌중심형(K), 복도중심형(C)으로 나눌수 있고, 부엌중심형은 띠(地)의 배치방식에 따라 복도분리중심형(C1)과 복도통합중심형(C2)으로 나눌수 있다.
표 3. 연안촌 조선족 주거의 평면형식
연안촌 조선족 주거의 평면형식을 분석하면 정지중심형 주거개수는 26개로서 전체 표본에서 40%를 차지한다. 하지만 연안촌 조선족 인구 50% 해당 수치와 비교하면 50%를 넘지 않는 것으로, 이는 일부 조선족주거는 한족 주거형식으로 동화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대부분 조선족 주거는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연안촌 조선족주거는 공간배치형식에 따라 홑집-정지중심형(J1, J3)과 겹집-정지중심형(J2, J4)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그 비례는 21:5로 홑집-정지중심형 평면형식이 주를 이룬다. 또 공간의 기능에 따라 정지중심형(J1, J2) 와 먼돌+정지중심형(J3, J4)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정지중심형과 먼돌+정지중심형의 비례는 13:13으로 일정한 1:1비례를 차지한다.
조선족주거는 정지중심형 평면구성이지만 한족 주거는 일반적으로 부엌중심형, 복도중심형, 거실중심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세부적인 공간의 이해에 따라 부엌중심형과 복도중심형의 분류는 모순되겠지만 본 논문에서는 인터뷰를 통해 주거인의 공간 사용빈도와 공간 인식을 바탕으로 분류하였다.
복도중심형, 부엌중심형, 거실중심형의 비례는 26:9:4로 복도중심형이 66%를 차지한다. 복도중심형과 부엌중심형 평면은 한족 전통주거인 사합원(四合院) 정방의 공간에서 분화하여 기본적으로 3칸과 5칸으로 구성되고, 복도중심형은 3칸과 5칸에서 발전한 단계로 볼 수 있다.
표 4. 연안촌 한족주거의 평면형식
K형은 부엌을 중심으로 동옥과 서옥을 대칭되게 배치하고 모든 공간은 부엌을 통하여야만 진입 할 수 있는 전형적인 3칸 한족 주거평면형식이다. 일부 사례에서 작은 구형형태의 복도를 거쳐야만 각 공간에 진입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공간은 복도의 기능으로 된 것이 아니라 부엌의 난방과 관련되었기 때문에 부엌중심으로 분류하였다.
C1형은 복도를 중심으로 동옥과 서옥을 대칭되게 배치하였고, 복도를 통과해 부엌에 진입할 수 있으며 일부 주거는 부엌에서 다시 양 켠으로 대옥과 소옥을 배치하였다. 이는 한족의 전형적인 사합원 평면형식에서 당옥공간을 복도공간으로 재해석하여 사용한 것이고 복도로부터 각 공간에 진입하는 형식이다. 연안촌 한족의 복도공간은 일반적으로 긴 구형형태를 띠고 일부 복도공간은 작은 구형공간을 이루며 복도공간의 기능보다는 현관, 바당의 역할을 하는 기능으로 해석할 수 있다. C1형의 특징은 복도공간과 부엌공간이 벽체로 분리되었다는 것이며, C2형은 C1형의 평면구성과 대체적으로 유사하나 띠(地)공간과 복도 혹은 복도와 부엌은 벽체로 구분하지 않고 통합 되었다는 특징이다. 띠공간을 바당기능이 아닌 낮은 온돌 기능, 즉 정지공간에서 분화된 공간으로 사용하는 것을 C1형과 구분한다.
표 5. 연안촌 민가 건축연대별 통계 및 대표평면
L형은 초기부터 존재한 평면형식은 아니며 한중수교 후 연안촌에 나타나는 평면형식이다. L형의 주거내부 공간은 타 평면형식보다 상대적으로 다양하고 복잡한 구성이지만, 2개의 부엌중심형 평면을 통합한 형식으로 추정할 수 있다. 또 한 개의 주출입구에서 2개의 주출입구로 변화한 것이 특징이며, 2개의 주출입구는 각자의 복도를 통해 매개 공간으로 연결되며 두 복도 사이는 거실로 사용되거나 자녀의 공부방으로 사용되는 것이 L형 주거의 특징이다. L형 주거는 일반적으로 타 주거보다 주거 면적이 크고가호수는 1세대에서 다세대로 전환하며 타 한족주거형식과 비교하면 발전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림 6. 연안촌 조선족과 한족주거의 평면구성의 변화
5. 맺음말
본 연구를 통해 화룡시 두도진 연안촌 주거의 평면구성과 평면형식에 관하여 살펴보았다. 연안촌의 기본개요와 평면구성 및 평면형식에 관하여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연안촌 마을 개척은 1900년 한족지주들에 인해 시작되었고 1905년 조선인의 이주가 시작되어 마을은 조선족과 한족이 공존하며 같은 환경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정책요인과 기타 요인에 적응하면서 현재까지 마을에서 생활하고 있고 서로 상부상조하고 지내면서 일부 동화되고 일부 차이성을 가진다.
주거의 평면구성에서 연안촌의 평면형식은 4개 대분류와 8개로 소분류로 구분된다. 조선족 주거의 평면구성은 정지중심형이 주를 이루지만 한족의 평면구성은 복도중심형, 부엌중심형, 거실중심형으로 분류된다. 또 조선족주거의 평면구성에서 홑집-정지중심형 주거가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고, 한족 주거의 평면구성에서 복도중심형 주거가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한다.
연안촌 마을의 평면구성의 변화과정은 조선족과 한족이 서로 다른 차이를 보인다. 조선족주거의 평면구성은 단순화 되는 경향을 보이고 일부 공간이 통합된다. 또한 1960년대를 과도하면서 평면구성에서 먼돌공간이 나타나며, 한중수교 후 조선족의 이농현상, 경제발전과 함께 생활수요가 높아지므로 조선족주거는 보다 단순한 ‘정지-부스깨-창고’ 평면구성을 가진다. 이에 반해 한족주거의 평면구성은 한족의 전통주거형식을 바탕으로 매개 공간마다 점차적으로 발전하는 양상을 가지며, ‘복도중심형’, ‘부엌중심형’에서 ‘거실평면중심형’ 평면구성으로 변화하는 추세이다. 즉, 평면형식의 변화에서조선족 주거의 평면구성은 복잡한 평면구성으로부터 단순화 된 평면구성으로 변화하지만, 한족 주거의 평면구성은 단순한 평면구성에서 복잡한 평면구성으로 변화되었다.
본 연구는 화룡시 두도진 연안촌 마을의 평면구성과 평면형식에 관한 연구로서 연구범위가 한정적이고 연변 외 타 마을과의 비교도 부족한바 일정한 한계점을 가지고 있어 추후 연구의 진일보가 필요하다. 타 지역 농촌마을의 재개발 혹은 전통마을의 복원에 있어서 본 연구는 기초자료를 제공할 수 있고 향후 주거환경과 주거생활 및 주거사 연구에 본 논문이 기초자료를 제공할 수 있음에 의의를 둔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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