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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기형의 「경주 석굴암 보수공사 설계도」(1961)에 관한 고찰

On the Plans of Kyongju's Sokkuram Restoration Project (1961) by Pai Ki Hyung

  • 투고 : 2018.12.15
  • 심사 : 2019.03.26
  • 발행 : 2019.04.30

초록

This study examines the restoration project of Sokkuram, and introduces its preliminary plans by the architect Pai Ki Hyung. The restoration project started in 1958 with an inquiry committee of the restoration project, and was completed in 1964. Despite having undergone extensive repair work under Japanese supervision from 1913 and 1923, the repair work caused water leakages inside Sokkuram, and regular cleaning work that began in 1933 caused a lot of damage to the sculpture. In result of the surveys, the top priority of this project was to protect the sculptures inside Sokkuram by improving the environment of the cave. At that time, the architect Mr. Pai participated as a head of the fourth field surveyors to plan the restoration project and to design the preliminary plans. He proposed the installation of a double dome structure to prevent further water leakages on the concrete addition that was built up around the grotto by the Japanese. However, in 1961, the Cultural Heritage Committee of Korea examined the plans of Mr. Pai and immediately rejected them. The factors of the rejection were the omitting of entrance design, system of new double dome structure that presses the existing structure, and these changes that had to be made outside of the drainage plans. The repair work of Sokkuram began in 1961, and the main construction was building double dome structure and entrance installation. In this we realize that Mr. Pai's double dome structure plans were very important key concept of this project. This study attempts to demonstrate the double dome installations that Mr. Pai initially proposed, which ultimately remains as emblematic factors of Sokkuram's legacy.

키워드

1. 서론

이 연구는 배기형(1918-1979)이 1961년에 완성한 「경주 석굴암 보수공사 설계도」를 학계에 보고하고, 이를 고찰하고자 하는 것이다.1) 석굴암은 1963년부터 1964년까지에 걸친 「석굴암 수리공사」통해서 철근콘크리트 피막을 씌운 ‘이중 돔’ 구조물로 재탄생하였다. 문교부의 문화재위원회는 「석굴암 수리공사」를 위해서,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석굴암 석굴조사단을 조직하여 4차례의 현지조사를 통해서 물리적 현황파악과 구조검토 등 보수설계에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였다. 배기형은 보수공사의 설계자로 피임되었고, 4건의 조사보고서들에 의거하여 석굴암 구조부에 철근콘크리트 돔을 덧씌우는 ‘이중 돔’ 구조를 제안하였다. 배기형의 설계안은 1963년부터 시작하는 「석굴암 수리공사」의 수리기법과 유사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그 설계도서가 수장고에 묻혀 있어서 그 실체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연구자들은 2016년에 구조사의 폐업으로 확보한 다량의 설계도서들 가운데 「경주 석굴암 보수공사 설계도」(1961)에 주목하여 이 연구를 진행 하였다.2)

이 연구는 1958년부터 1960년까지의 석굴암 보수에 관한 논의과정을 조사단의 조사서들을 통해서 살피고, 보수공사의 특징을 배기형이 작성한 설계도서들을 통해서 고찰하는 순서를 취할 것이다. 아울러 이 연구는 이 보수공사의 계획과 그 후에 진행된 석굴암 수리공사를 비교하여 살피고자 한다.

1913년부터 1923년까지에 걸친 [석굴암 해체 및 수선 공사]는 석굴내에 누수와 결로의 현상을 일으켰으며, 조각물과 불상 표면에 오염을 발생시켰다. 1933년부터 시작된 오염물 세척작업은3) 조각물에 많은 손상을 남겼고, 석굴암의 보존논의를 촉발시켰다.4) 문화재위원회는 1957년 말에 ‘불상 손상방지와 기타 피해대책’에 관한 논의를 시작하였고, 이듬해의 현지답사를 통해서 ‘추가 오염방지를 위한 수리의 시급’함을 인식하였다.5)

이 석굴암 석굴조사단은 1958년부터 1960년까지 4차례에 걸쳐 ‘굴 내 조각면 및 중앙 불상에 발생되는 청태(靑苔), 진개(塵芥) 등의 원인 규명 및 그에 따른 방지책 강구’의 목적을 갖고, 석굴암의 내외를 다각도로 조사하였다. 그 결과, 조사단은 “앞선 해체 수리의 부실로 인한 굴 내 누수침투” 주요 원인으로 꼽았으며,6) 문화재위원회는 조사단의 보고서를 토대로 “굴내 조각면 및 본실 불상의 영구 보존을 위한 석굴암 환경개선”을 보수의 중심과제로 삼았다.

배기형은 1960년 5월부터 설계를 시작하여 1961년 1월 9일에 「경주 석굴암 수리공사 설계도」7)를 문교부장관에게 제출하였다. 배기형은 이 설계도서를 통해서 1923년에 시공된 철근콘크리트 위에 돔 형 철근콘크리트를 신규로 피복하는 ‘이중 돔’ 구조를 제시하였다. 이 설계안은 석굴 내의 누수와 온습도 변화, 풍화 등을 억제하기 위한 개선방침으로, 조각물과 불상의 보호를 위해서 석굴암을 개량하는 계획이었다.

문화재위원회는 배기형의 설계도서가 몇 가지 문제점들을 갖는다고 지적하였고, 곧바로 그 폐기를 결정하였다. 그런데 1963년부터 진행한 수리공사도 기존 석굴암 구조에 철근콘크리트를 피복한 공사로서, 안자체만을 놓고 보면 배기형의 해법과 상당히 유사하였다.8) 배기형의 설계도서는 폐기되었지만 그의 제안은 그 뒤의 공사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가 있다.

현재까지 석굴암에 관해서는 여러 학문분야에서 상당한 양의 연구를 축적해왔다. 그 연구들은 대개 석굴암의 고유한 조형적·구조적 가치를 조명하는 것들로서, 석굴의 기원, 축조술의 분석, 조각물과 불상의 보존방안 등을 중요한 주제로 삼아왔다. 또 과거의 수리공사들에 대한 비판적 논의들을 꾸준히 제기해왔다.9) 그런데 선행연구들은 석굴암이라고 하는 물리적 실체의 변화를 상대적으로 간과해온 측면이 없지 않다.

이 연구의 목적은 1913년부터 1923년에 작성된 수선도들과 1958년부터 1960년까지 작성된 조사보고서들을 통해서 석굴암의 물리적 변화를 이해하는 것과, 배기형의 「경주 석굴암 보수공사 설계도」(1961)를 통해서 보수공사의 특징과 기법을 고찰하는 것에 있다. 아울러 이 연구는 1961년의 「경주 석굴암 보수공사 설계도」와 1963년부터 시작한 「석굴암 수리공사」의 연관성을 추론하여 볼 것이다.

2. 일제시대의 석굴암 수선공사와 해방 후의 석굴암의 현황조사

2-1. 석굴암 수선의 배경과 과정

석굴암은 토함산 중턱에 화강암으로 축조된 건조물로서, 8세기의 건립 당시에는 석불사라고 불렸었다. 세키노 타다시(関野貞)는 1909년의 조사에서 석굴암이 ‘수리를 요하는 석조건조물’이라고 평가하였다.10) 20세기 초의 기록들은 석굴암의 원래 구조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11) 세장한 평면의 석굴암은 산복(山腹)에 화강석으로 축조된 인공구조물이었다. 원형 평면의 본실은 궁륭천장을 이루고 있었으며, 중앙에는 불상이 안치되어 있었다. 전실과 비도 측의 좌우 벽체 면에는 팔부신상 등의 조각물이 부조되어 있었다. [그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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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불국사 석굴암 석굴 정면과 본실 천정 (출처:『조선고적도보 5』, 1917, 559쪽)

일본인들은 1912년의 현장조사에서 조각물과 불상을 최우수 유물이라고 평가했으며, 붕괴된 지붕구조로 인하여 유물이 더욱 파손될 것을 우려하였다. 그들은 유물을 감싸고 있는 기존의 석굴구조를 보완하고, 석구조에 혼응토(混凝土)를 유착시키는 재구축을 통해서 조각물과 불상을 보호할 것을 제안하였다.12) [그림 2]의 [재래 평면도]와 [재래 단면도]는 이러한 제안을 반영하는데, 이 도면들을 바탕으로 1913년부터 1915년까지의 1차 수선공사를 진행하였다. 해체한 후에 재구축한 석굴암의 양측 외벽을 기준으로, 3척을 띄운 후에 석재를 수직으로 쌓아 측벽을 조성하였다. 양 측벽과 재구축된 석굴암 석벽 사이, 그리고 본실 외주로 혼응토를 타설한 후, 지붕 윗면을 점토로 면처리하고, 재차 그 위를 성토 후 마무리하였다. 석굴암은 이제 석조와 혼응토가 혼합된 구조체로 변모하였다. 이 보수방법이 당시에는 석굴 내 유물들을 완벽하게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평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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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경상북도 석굴암」의 재래 평면도재래 단면도 (출처: 「경상북도 석굴암」, 국가기록원 소장)

그러나 석굴암의 수리가 완공한 지 채 2년도 못 되어서 누수와 결로의 현상이 다시 나타났으며, 일본인 들은 불상의 오염을 우려하여 1917년에 재차 누수방지 공사를 진행하였다. 이때는 성토층을 제거한 후에 혼응토층 표면에 석회 모르타르를 도포하였다. 이 공정은 석굴암 바닥 레벨의 외주에 배수로를 설치한 후에, 재차 전체를 성토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공사에도 불구하고 누수현상은 계속되었고, 석굴 외주의 혼응토층으로 우수가 침투하는 것이 그 원인으로 다시 지적되었다. 총독부는 다시 대규모 중수공사를 계획하고, 그 초점을 “외부적 조건의 개선”에 두고 “우수 침투 예방공사” 시행하였다. 1920년부터 1923년까지의 공사는, 부축벽의 역할을 맡았었던 양 측벽과 석굴암 성토층을 모두 철거하고, 기존 혼응토층의 균열처 2개소를 보수한 후에 그 위에 새롭게 철근콘크리트를 전면 증설하는 것이었다. [그림 3] 석굴 외주의 바닥 레벨에는 U자형 콘크리트 배수로를 만들고, 신규 구조면 전체에 쇄석을 덮고 성토한 후에 잔디심기로 마감하였다. 쇄석은 빗물 등의 침투수가 철근콘크리트 면에 접하지 않고 낙수할 수 있도록 한것이다.13) 이 공사의 결과로 석굴암은 석조와 철근콘크리트조가 혼합된 복합구조물로 변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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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석굴암 수선공사 변경설계도」의 종단면도횡단면도」 (출처: 「석굴암 수선공사 변경설계도」, 국가기록원 소장)

2-2. 석굴암 석굴조사단(1958-1960)

1923년의 공사 다음에 가장 대대적인 석굴암 수리공사는 1963년부터 진행되었다. 수리공사에 앞서 1958년부터 1960년까지 석굴암 석굴조사단이 현지에 파견되었다. 석굴암 석굴조사단의 구성과 목적을 적으면 [표1]과 같다.14)

표1.석굴암 석굴조사단의 구성과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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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위원회는 세척작업이 조각물 손상에 끼친 영향을 조사하도록 하였다. 문화재위원회는, 1차 조사단의 현지조사를 통해서 더욱 심도 있는 조사가 필요하다고 보았고, 각 분야별 전문가로 구성된 보존대책위원회를 조직하여 현지에 파견하였다. 2차 조사단15)은 1958년 8월 30일부터 9월 3일까지 현지조사를 진행하고, “일제강점기 수선공사 당시 씌운 시멘트는 석질(石質)에 치명적인 피해를 주었고, 방수층은 낡았다. 습기, 동해(凍害), 진개(塵芥)를 막기 위해 전실에 지붕을 덮어야 하며, 굴 내 습기 제거를 위해 설비장치를 설치하고, 전실과 굴 내 바닥을 포장하여야 보다 나은 보존조치가 될 것”이라는 의견을 제출하면서, “당시 토목공사적인 시공으로 40여년 후인 오늘까지 끼쳐진 피해가 신라 창건기로부터 한말(韓末)에 이르는 천여 년 간의 손상보다 막심”하다고 지적하였다. 3차 조사단은, 화학, 생물학, 물리학의 전문가로 구성되었으며, 석굴 내의 석회, 청태, 쇠 녹물의 성분을 분석하고 방지대책을 제시하였다.

문화재위원회는 석굴암 보수계획을 마련하고자 4차 조사단16)을 배기형, 안수한, 김정기17) 등으로 구성하였고, 이들을 현지에 파견하였다. 4차 조사단은 1960년 1월 24일, 25일, 26일에 걸쳐서 석굴암의 구조를 검토 하고 주변현황을 조사하였다. [그림 4] 문화재위원회는 동년 5월 21일에, 1차 조사단에서부터 4차 조사단까지의 보고를 모두 청취하고「 온도 및 광선의 조절과 습기 및 진개방지를 위주로 하는 공사」를 시행하기로 기본방침을 정하였다.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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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경주 석굴암 현지조사 당시 석굴암 주변 환경그림 4. 경주 석굴암 현지조사 당시 석굴암 주변 환경19)

배기형은 4차 조사단의 단장이었는데 1960년 5월에 보수설계자로도 선정되었고, 「경주 석굴암 보수공사 설계도」를 작성하여 1961년 1월에 제출하였다. 문화재위원회는 동년 5월 24일에 진행한 회의에서 ‘전실증축을 위한 가구(架構) 설계도’ 등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서 이 설계도서를 폐기하였다.20) 그 후의 「석굴암 수리공사」는 그 수리의 형식과 기술로 보아서21) 배기형의 보수설계안을 참고하였을 것이라고 추론할 수가 있지만, 현재까지 그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었다.22) 다음 3장에서는 4차 조사단의 조사보고서와 배기형이 작성한 설계도서를 중심으로, 당시 석굴암의 물리적 현황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보수계획을 파악할 것이다.

3. 4차 조사단의 「석굴암 석굴 조사서」

3-1. 석굴암 보수의 범위

4차 석굴암 석굴조사단은 조사보고서23)에서 그 목적을 “침수 및 풍화작용에 의한 조각물 손상방지와 항구적 보존을 위해 그 대책을 모색, 금후 시행될 보수공사에 대한 설계방침 수립, 강구함에 있다”고 하였다.24) 또한 그 보수의 목적이 “굴 내 조각물의 영구 보존”에 있었으며,25) 누수, 결로, 진개 등의 발생 원인을 석굴 내외의 온도차라고 보고, 오염원 제거에 중점을 둔 보수방안을 제시하였다. 이 보수방안의 골자를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로 요약할 수가 있다.

(1) 재래 철근콘크리트 면을 통한 삼수(滲水)라는 원인과 그 대책

일본인들이 1913년부터 1923년까지에 시공한 재래 콘크리트의 배합비율은 침투수 침입이 가능한 입도(粒度)를 갖고 있었으며, 방수층은 노화되어 그 기능이 정지되었다고 보았다. 조사단은 재래 구조체의 수분 내포가 석굴내 조각물의 풍화와 청태 번식 등으로 이어졌다고 결론을 내렸다. 따라서 조사단은 석굴암의 구조체에 ‘지하실 구조’에 준하는 철저한 방수계획과 배면 계곡에서 유입되는 물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였다. 그들은 그 해법으로 기존 석굴암 외주에 중공층을 형성하는 것과 다른 외벽을 증설하는 “이중 돔”을 구축하는 것이 가장 타당한 해결책이라고 주장하였다.

(2) 전실설치와 외기의 전면차단

조사단은 개방된 전실이 석굴암의 전체구성에서 외기에 가장 많이 노출된 곳이므로, 풍화작용이 가장 심각하게 나타나는 영역이라고 보고하였다. 그들은 전실과 석굴의 조각물 및 불상 보호를 위해 외기의 전면차단을 제안하였고, 그 방법으로 전실 위에 지붕의 구축과 진입구에 개구부의 설치를 제시하였다.26)

(3) 이중의 바닥구조와 바닥마감

당시에 석굴의 바닥마감은 대개 점토로 되어 있었다. 조사단은 보수공사 시에 이를 철거한 후에 바닥을 이중구조로 계획하되 화강석으로 마감할 것을 제안하였다. 그들은 이중 바닥구조가 공기층을 만들어 습도 조절을 할 수 있다며, 추후에 공기조절 장치 등을 설치할 때에 배관의 인입 등을 위한 피트 공간으로 활용 할 수 있다고 보았다.

(4) 쇠 녹물의 관찰과 방수공사

조사단은 전실 내에서 발생하는 녹물은 빗물의 영향으로 용출한 것이고, 본실 내의 녹물은 재래 철근콘크리트 층에 삽입된 철근이 수분을 만나 용출한 것이라고 보았다. 그들은 재래 구조체를 철거하고 이를 새로운 구조물로 대치할 것을 제안하였으며, 철저한 방수 공사를 재차 요구하였다.

(5) 기타 사항

조사단은 그 밖의 보수방안으로, ‘굴 내 조각물 표면이 온도차 등에 의해 그 조직이 파괴되지 않도록 일정한 실내 온도를 유지할 것’과, ‘석굴암 전면 광장을 대폭 넓히고, 좌우 양측에 계단 설치할 것’과, ‘후면 계곡수의 굴 내 유입 방지를 위한 수로 변경’ 등을 강조하였다.

3-2. 1960년의 석굴암 현황

「석굴암 석굴의 현황과 보수대책(안)」27)은 1960년 5월 현재에 석굴암의 현황과 보존의 가치에 대해 이렇게 기술하였다.28) “석굴은 각섬화강암(角閃花崗巖)으로서 구축된 궁륭구형(穹窿球形) 석실(石室)을 본실(本室)로 하고 그 입구에 덮개 없는 장방형(長方形) 전실이 있는 바 그 입구는 동동남(동30도 남)으로 열려있음”이라 소개하고, 세부적으로 불상배치에 관해 “본실에는 본존석가여래좌상 외에 25구의 불상을 벽면에 부조 또는 안치하였는데, 이중 안치하였던 소불상 2구는 행방불명되어 현재까지 이를 찾을 방도가 없으며, 전실과 본실을 연결하는 비도의 좌우벽면에는 합14구의 수호신상이 부조되어 있”고, “이 석굴은 불상 등의 조각을 포함시켜 ‘국보 제24호 석굴암 석굴’로 지정되어 있는데, 그 석실의 구조보다는 그 석실 벽면에 부조되어 있는 불상 및 수호신상의 하나하나가 극치한 예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문화재”라고 평하였다. 이 보고서(1961)는 불상 및 벽면 부조에 대한 보존의 중요성을 새삼 강조하였다. 석면(石面) 오염에 관해서는 “장구한 세월의 흐름과 일제강점기의 보수 불완전, 그리고 청태 제거작업 등으로 인한 풍화와 굴 내 용수 등으로 오염이 지속적으로 발생되고 있다”고 진단하면서 “시급한 보수를 요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보고서는 ‘온·습도 차에 의한 풍화’, ‘습기, 일광, 온도차, 영양소에 의한 청태 발생’, ‘석굴을 덮고 있는 재래 철근콘크리트 파손에 의한 쇠 녹물 침출’, ‘석회분 발생’, ‘바닥에서 일어난 먼지로 인한 실내오염’ 등을 개선사항으로 꼽았다.

3-3. 「석굴암 보수」계획 요령

문화재위원회는 4차례의 현지조사단의 의견에 근거하여 「온도 및 광선의 조절과 습기 및 진애의 방지 위주로 하는 공사」를 계획하며, 보수 범위를 정하였다.29)

① 본실과 전실 뒤를 덮고 있는 철근콘크리트 층을 포함한 피토(被土)의 개복공사(改覆工事)를 실시하여 외부로부터의 누수 또는 침수를 막는다.

② 전실은 한식기와로써 지붕을 덮고 문을 달아 한기, 습기, 진애, 풍우 등의 침입을 막는다.30)

③ 적절한 환기장치를 설치한다.

④ 석굴암 측면에 적절한 인공수로를 만든다.

⑤ 석실의 바닥이나 통로에서 먼지가 일어나지 않도록 돌 또는 전돌을 깐다.

⑥ 오염발생의 원인이 되고 있는 과거의 보수 결함 등 을 가급적 시정한다.

⑦ 예산의 여유를 보아 석계단 수리 및 기타의 환경 미 화작업도 실시한다.

문화재 위원회는 이와 같이 재래 철근콘크리트 면의 보수 및 방수공사, 석굴암 주위에 배수로의 설치, 전실 측 지붕과 문의 설치, 굴내 습기 조절장치의 설치 및 바닥의 포장계획 등을 보수설계의 범위로 설정하였다.

4. 배기형의 「경주 석굴암 보수공사」 설계도서

앞에서 살핀 바와 같이, 석굴암 보수공사의 중심과제는 “굴 내 조각물과 불상의 영구 보존”이었으며, 이를 위해서 석굴 내외에 대한 환경개선이 필요했다. 배기형은 4차 조사단의 단장 겸 보수설계자로서 「경주석굴암 보수공사 설계도」(1961)를 작성하였다.31)

4-1. 「석굴암 보수공사 시방서」(1960)

「석굴암 보수공사 시방서」32) [그림 5]는 공사개요에서 “본 공사는 현황 석굴암의 원상을 훼손 또는 사소한 변형을 불허”하는 것이며, 그 목적은 “우수침투방지, 우수처리, 굴 내 습기방지, 진애확산 방지에 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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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보수 배치도」(15-2)

공정은 [표 2]와 같이 철거 및 보수공사, 외부공사, 내부공사로 구분된다. 보수공사는 재래 구조체의 구조 보수를 위해 방수층이 완전히 노출되도록 성토층을 해체하고, 해체된 재래콘크리트 면에 기(旣) 시공된 아스팔트 및 말소이드 방수층을 완전히 철거하는 것이었다. 재래 구조체를 면처리한 후에 신규 방수공사를 실시하고,33) 방수층 보호와 중공층 확보를 위해 재래 구조체에 유격을 둔 후에, 신규 철근콘크리트의 타설을 위한 거푸집 설치를 계획하였다. 거푸집 차면에는 아스팔트 피치를 입힌 폼글라스(formglass)를 깔고 철근을 배근하였다.34) 세부적으로 석굴 안과 밖의 배수로 계획과 중공층 환기를 위한 정부(頂部)에 환기공(換氣孔)을 조성하며, 신규 철근콘크리트 타설을 위한 공정을 마쳤다.35) 철근콘크리트를 타설한 후에 양생을 마친 신규 구조체 표면에는 방수공사를 실시하고, 자갈을 균일하게 덮은 후 상부를 성토하고 잔디를 심는 것으로 외부공사를 계획하였다. 내부공사는 석굴 내 철근콘크리트 피트층을 신설, 바닥마감으로 전실 측엔 자갈을 깔고, 비도와 본실 측엔 화강석을 부석하는 것으로 공사범위를 설정하였다.

표2. 공정별 세부 공사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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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경주 석굴암 보수공사 설계도」(1961)

「경주 석굴암 보수공사 설계도」는 표지를 포함하여 총 16매로 구성된 건축·구조 도면이며, 1960년 12월에 배기형의 구조사-건축기술연구소가 작성하였다. 총 16매의 도면은 [표 3] 과 같이 현황도와 보수 계획도, 구조상세로 구성되어 있다.

표3.「경주석굴암보수공사설계도」의 도면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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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보수계획

[표 3]의 도면목록 중에서 현황도 5점은 이 논문의 제2장에서 등장한 1920년대의 「석굴암 수선공사 변경 설계도」[그림 3] 와 그 내용이 같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보수 계획도를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그림 5]의 「보수 배치도」는 주변 환경계획과 석굴암 이중 돔 계획을 한데 표현하고 있는데, 특히 배수계획이 주목된다. 이중 돔을 증설하면서 외주(外周) 내외로 설계된 배수로는, 외벽 누수 등으로 인해 석굴 내로 유입될 수 있는 물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역할을 맡았다. 외부배수로는 이중 돔 외주를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계획하였으며, 양측 배수로의 끝점에는 맨홀을 설치하고 물을 법면(法面)으로 유도하였다. 이는 석굴암의 배면에서 내려오는 빗물을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피트 공간은 본실 둘레와 비도, 전실로 이어지는 바닥의 하부에 마련하여 실내외로 유입될 수 있는 침투수를 외부로 유도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림 6]의 「보수 평면도」는 배수계획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준다. 배수로는 본실 석벽 내측 둘레에 마련되었고, 피트 공간은 본실에서 비도, 전실로 통과되어 외기로 이어지면서 내측 정중앙에 배치되었다. 맨홀은 피트와 연결되고 다시 배수 파이프를 통해서 법 면 밖으로 물이 흐르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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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6. 「보수 평면도」(15-4)

[그림 7]의 「보수 종단면도」는 본실 측 보수계획을 알려 준다. 이 도면은 신설될 피트구조와 상부 바닥마감과 이중 돔의 실체를 보다 명확히 나타내고 있다. 하부구조를 보면, 석굴암 재래 구체의 외주를 따라 철근콘크리트 줄기초를 타설하여 재래 구조체에 유착시켰고, 구조체 안팎으로 배수로를 설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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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7. 「보수 종단면도」(15-6)

재래 구조체에 보국식 액체방수를 도포한 후에, 돔형 철근콘크리트를 타설하였다. 재래 구조체와 신규 구조체 사이에는 중공층을 형성하였고, 구조면 안팎으로 방수공사를 진행하고, 자갈로써 그 윗면을 메운 후에 봉토하는 계획을 세웠다. 정부(頂部) 정중앙에는 개구부를 두어 중공층의 공기순환을 도모하였고, 지붕은 옥개석을 얹어 마감하였다.

[그림 8] 의 「보수 횡단면도」는 경사지에 대한 대응과 이중 돔 구조와의 관계를 잘 보여준다. 대지의 경사는 3단에 걸친 법면처리로 정지(整地)되고, 석굴내 철근콘크리트 피트 층과 연결된다. 피트 구체는 상하 슬래브의 전후면에서 두께가 다르다. 비도 측의 하부 슬래브는 0.8척 두께의 무근 콘크리트로서 조합비 1:3:6으로 구성되고, 전실 방향의 슬래브는 0.5척의 두께로 줄어들었다. 그 기초의 바닥구배는 1/150으로 수분이 발생할 때 비도에서 외부 법면으로 흐르도록 하였다. 피트 바닥의 끝점에 Ø2의 스틸파이프를 법면 방향으로 묻고 외부로 낙수하도록 계획하였다. 피트 벽체와 상부슬래브는 Ø3의 원형철근이 1척 간격으로 단배근되었다. 본실 배면의 기초와 벽체구조는 재래 구조체와의 정착방법과 경사지에 대한 대응관계를 보여준다. 배면의 경사도는 신규 철근콘크리트 줄기초의 정착레벨에 영향을 미쳤고, 신규 줄기초는 재래 구조체의 측벽에 정착되었다. 석굴암 재래 벽체단면과 새롭게 증설될 벽체의 단면상세를 도면에 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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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8. 보수 횡단면도(15-8)

[그림 9] 의 재래단면도는 바깥 면을 기준으로, 액체방수-시멘트 페이스트-보호 몰탈-액체방수-재래 벽체-보호몰탈로 구성되었는데, 이에 배기형은 기존 보호몰탈 위에 시멘트 페이스트-액체방수-신규 철근콘크리트 구조체-아스팔트 피치-폼글라스를 덧붙이는 보강계획을 제시하였다. [그림 10]의 「보수 전실 종단면도」에서는 벽체 증설에 따른 외부배수계획과 경사지 대응방법을 계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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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9. 내부 현재벽체 방습 방수층 설계(우측) 신설 철근혼응토구체 외 측방수층 상세(좌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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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0. 「보수 전실 종단면도」(15-10)

신규 구조체는 철근콘크리트로 제작되는데 석굴암을 감싸며 이를 외부 환경으로부터 보호하고, 배수로 계획을 통해 대지 레벨을 새롭게 설정하였다. 그런데 신규 구조체는 전실의 일부를 감쌌지만 전실의 전면은 여전히 외기에 열려 있었다.

따라서 이 지점은 이중 돔의 아치가 정면성을 가지며 비도 측 수직벽체와 맞물리게 계획되었다. 지붕 슬래브의 끝점을 기준하여 하부는 철근콘크리트 보가 지나가고 상부는 흉벽(胸壁, parapet wall)처럼 끝선을 상부 마감선까지 끌어올린 것이 특징이었다. 이것은 상부 지붕구조 위에 쇄석을 채우고 봉토하기 위한 최소한의 마감높이이고, 단면상세는 전면을 화강석 붙임으로 마감하는 계획을 보여준다. [그림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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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1. 본실 흉벽 단면상세 (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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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2. 돔 각부배근상세 (15-15)

(2) 구조계획

조사단은 석굴암 재래 구조체의 구조적 문제를 발견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별도의 구조보강 또는 보수계획을 세우지는 않았다. 이 구조도는 이중 돔에 관한 철근콘크리트 구조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돔 각부 배근상세」도는 이중 돔에 대한 철근배근의 제원과 상세계획을 보여준다. 「돔 철근배근상세」는 본실 측 이중 돔을 나타내는 철근배근평면이었으며, 「벽체철근배근상세」는 전실과 비도 측의 신규 벽체에 대한 배근상세도였다. 벽체 및 이중 돔 구조는 모두 2방향 슬래브의 복배근으로 계획되었다.

본실 측 이중 돔에 대한 주근(수직근)은 Ø4의 원형 철근을 사용하여 0.8척의 간격으로 배열하였고, 철근 길이는 곡률 값에 따라 기초부, 벽체부, 지붕부, 최상부 등으로 나뉘어 길이와 가닥수의 차이를 나타냈다. 돔의 상부로 올라갈수록 인장강도의 크기는 위치에 따라 달라지므로 주근의 배근간격은 각 4지점의 둘레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또한 주근의 길이가 가장 긴 최상부에는 주근이 총 26가닥으로 모아졌는데, 원형철근의 ‘겹침 이음’을 통해 주근과 주근이 조립되었고, 이음의 구부림각은 180°를 주었다. 각 원형철근의 굵기 별 이음의 제원은[표 4] 와 같다. 늑근(수평근)은 기초부에선 Ø6∼7, 벽체부에선 Ø4, 지붕부에선 Ø3, 최상부에선 Ø2를 사용하였는데, 이러한 철근의 굵기 차이는 이중 돔 곡률에 의한 인장강도 변화에 따랐다.

표4.  철근계수기리 기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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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실과 비도 측의 벽체 기초배근은 Ø2∼5의 원형철근을 1척 간격으로 2방향 복배근한 것이며, 늑근도 같은 계획을 하였다. 벽체는 주근 Ø5를 1.6척 간격으로 2방향 배근을 했으며, 늑근은 Ø4를 역시 1.6척 간격으로 배열하였다. 벽체 최상부 끝선은 겹침 이음을, 그 끝의 마무리는 180° 구부림각을 주며 철근콘크리트와 유착을 도모하였다. 벽체 철근의 제원과 배근간격이 일정했던 이유는, 마치 흙막이 벽과 같은 기능으로서, 경사지에 대한 대응과 이중 돔 구조와의 구조적 정착을 동시에 꾀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가 있다.

그 관계는 [그림 13]의 「철근콘크리트 평면배근상세」에서 보다 잘 나타난다. 전실 측 전면을 시작으로 비도까지 재래 구조체와 2척의 이격거리(중공층)를 두고 역(逆) 기역자의 구조벽체가 구축되었다. 이중 돔 구조도 재래 구체의 외주로 2척의 이격거리를 두었으며, 두 개의 이형구조는 기초구조에서 철근과 콘크리트를 통해서 유착되었다. [그림 14]의 「돔 횡단배근상세」의 배면측 기초계획을 통해서는 재래 암반 위에 별도의 밑창 콘크리트가 없이 줄기초를 계획하여 재래 구조체에 긴결히 연결하였음을 확인할 수가 있다. 철근콘크리트 제(製)의 U자형 배수로가 배면에서 내려오는 빗물을 받기 위해 제작되었고, 이는 이중 돔 구조에 정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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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3. 「철근콘크리트 평면배근상세」(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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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4. 「돔 횡단배근 상세」(15-13)

이중 돔은 2방향 배근으로 계획되었지만, 지붕부로 올라가면 상부근은 후크(hook)처리로 마무리되며, 하부근은 단배근으로서 최상부(頂部)까지 이어졌다. 벽체의 철근 피복은 대체로 0.2척의 두께로 계획하였으나, 상부를 단배근으로 계획하면서 콘크리트의 단면적도 함께 줄어들어서 피복 두께가 달라졌다.

이는 이중 돔의 상부구조에서 최소한의 주근을 사용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이중 돔 구조는 구조적 증설이라고 보기보다는 석굴암 석굴의 보존을 위해서 또 하나의 외피(外皮)를 덧씌운 개념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한편 전실과 비도 측의 구조벽체는, 이중 돔 구조와 상부 구조보를 통해서 서로 맞물리며 서로를지탱하고 있다.

[그림 15]의 「돔 종단배근상세」와 [그림 16]의 「보수 전실배근상세」를 함께 놓고 보면, 피트 공간이 본실 둘레를 거쳐 비도와 전실의 정중앙에 놓이게 되는데, 이때 피트 공간 위에는 화강석 바닥마감재밖에 없다. 이 단면 상세를 통해서 양 측벽의 구조계획을 확인할 수가 있다. 기초구조는 철근콘크리트 줄기초가 재래 구조체와 맞물린다. 줄기초 위에 놓일 구조벽체를 중심으로 중공층과 외부 바닥 레벨에는 각각의 배수로가 계획되었다. 일부 벽체구조는 그 상부에서 본실의 이중 돔 구조와 결합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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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5. 「돔 종단배근상세」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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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6. 「보수 전실배근상세」 (15-14)

이상에서 배기형이 작성한 시방서와 설계도서를 통해 「석굴암 보수공사」계획을 살펴보았다. 배기형의 보수설계의 주개념은 석굴암을 돔형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피복하는 것이었으며, 그 목적은 석굴내 환경개선을 통해서 누수와 결로의 발생 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목적은 1913년부터 1923년까지 진행된 수선공사로 인해 석굴암 석벽의 원질(原質)을 잃게 되면서, 문화재위원회가 석굴암의 석구조의 보수보다는 “굴 내 불상과 조각물 보호”에 우선 가치를 두었기 때문에 생겨났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당시에 석조문화재의 수리관점은 “아테네 헌장”에 기초하였다. 특히 유럽에서는 석조물을 수리하거나 복원하는 데에 19세기말부터 철재와 시멘트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36) 배기형은 석굴암의 재구축에서 철근과 콘크리트를 보수재료로 이용하려고 했으며, ‘이중 돔 증설’이라는 개념을 적용하려고 했었다.

4-3. 1961년의 배기형의 설계안과 1964년의 준공안

배기형의 설계안은 1961년 2월 초에 열린 문화재위원회 회의를 통해서 “제1차 석굴암보수설계도”로 분류 되었다. 문화재위원회는 설계안의 수정을 요청하면서, 중공층 폭의 확장과 전실 앞 석축법면 확장, 지반지질 조사 의뢰, 기상 및 석질조사, 전실지붕 설치 계획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37) 그러다가 문화재위원회는 1961년 5월 24일에 제1분과의 합동회의를 통해서 배기형의 설계안을 돌연 폐기하였다. 「석굴암 수리공사 보고서」(1967)은 그 이유를, “전실옥개(前室屋蓋) 미(未)계획, 재래 구조체에 직접 하중이 가해지도록 설계된 이중 돔 구조, 지반조사에 따라 변경될 수 배수구 및 피트 위치 등이 예상되”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제1차 설계는 사실상 폐기한다”고 전하고 있다.38)

당초 문화재위원회가 설정한 보수의 범위는 “재래 철근콘크리트층 개복, 전실 설치, 환기장치 설치, 인공수로 설치” 등이었다. 특히 전실 설치에 대해서는, 배기형이 “석조로서 건조되어야 한”다 하였고, 문화재위원회가 “기와로 덮고 입구에 문을 달기로 한”다고 하였다. 이로 미루어서, 설계변경과 현상변경을 놓고 양자간에 상당한 입장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곧바로 문화재위원회는 보수설계를 전면 경신(更新) 하기로 합의하였고, 당시 유네스코의 문화재연구소장인 플랜덜라이스(Harold J. Flanderleith) 박사로 하여금 동년 7월 21일부터 현장 시굴(試掘)을 통하여 보수계획을 수립하도록 하였다. 김중업이 제2차 보수설계를 맡았고, 1962년 10월 22일의 회의에서 그는 “이중 돔 설치와 전실 설치 등에 관한 구상”을 소묘(素描)를 통해서 설명했다고 전한다. 문화재위원회는 그의 “이중 돔 설치”에는 동의하였지만, 설계도서의 빈번한 제출지연을 이유로 김중업을 제2차 보수설계자에서 배제 하였다.39)

그 후에 설계소위(小委)는 최형우, 임천, 유해종을 위원으로 구성하였고, 황수영, 김원룡과 함께 석굴암 현황을 조사하였다. 이 설계소위는 1962년 11월 23일의 문화재위원회를 거쳐서 「석굴암 보수공사」설계의 대요(大要)를 결정하였다.40) 설계소위는 가결된 내용을 바탕으로 설계 도서를 작성하여 1963년 1월 20일의 문화재위원회에 제출하였고,41) 문화재위원회는 동년 3월 26일에 그 설계안을 승인하였다. 석굴암 수리공사는 동년 4월 15일에 시작하여 이듬해인 1964년 7월 1일에 완료하였다.

「석굴암 수리공사 보고서」(1967)에는 수리의 현황 도면이 일부 수록되어 있다. 수리 후의 공사사진과 「배치도」와 본실 측의 「돔 종단면도」[그림 17] 를 배기형이 작성한 「보수 종단면도」[그림 7]와 비교해 볼 수가 있다. 문화재위원회는 배기형의 설계안을 폐기하면서 보수계획을 전면 수정한다고 하였으나, 1961년의 배기형의 설계안과 1964년의 준공안의 두 가지 설계도서들에서는 공통적으로 “이중 돔”[그림 18] 설치가 주요한 개념으로 나타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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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7. 돔 종단면도(수리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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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8. 이중 돔 배근

(그림 17,18 출처 : 문교부 문화재관리국, 앞의 보고서, 1967, 부록 에서 발췌)

이 지점에서 배기형의 「경주 석굴암 보수공사 설계도」(1961)의 위상이 놓일 것이다. 석굴암은 1964년에 준공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이 1964년의 준공안이 배기형의 「보수 설계도」를 바탕으로 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제시한 “이중 돔” 구조는 석굴내 환경개선과 함께 조각물과 불상을 항구적으로 보존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었다. 전반적으로 두 가지 설계 도서들을 비교하면, 배기형의 설계도서들이 그 후에 진행한 수리공사의 전반에 걸쳐서 영향을 미쳤다고 유추할 수가 있다.42)

5. 결론

이상에서 1913년에서 1923년에 작성된 석굴암 설계 도서를 통해서 석굴암의 물리적 변화를 살폈고, 1958년에서 1960년 사이에 작성된 조사서들을 통해서 당시 석굴암의 현황을 파악하였고, 1961년에 배기형이 작성한 「경주 석굴암 보수공사 설계도」를 통해서 보수의 목적을 살펴보았다. 또 1967년의 「석굴암 수리공사 보고서」와 배기형의 설계안을 비교하였다. 연구자들은 이와 같이 석굴암의 물리적인 변화를 통시적으로 일별하면서, 배기형이 제안한 ‘이중 돔 구조’가 현재의 석굴암을 유지하는데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작용하고 있었음을 알 수가 있었다.

일제강점기의 수선공사는 석굴내 불상과 조각물을 보존을 위해 기존의 석구조를 재구축하고, 혼응토를 유착시킨 보강공사였었다. 그 후에 연이어 나타난 석굴내의 누수와 결로, 풍화의 현상에 대한 정기적인 증기세척 작업은 조각물의 훼손을 촉진시켰다. 1958년부터 1960년까지 문화재위원회는 근본적인 원인 규명 및 방지책 강구를 위해 석굴암 석굴조사단을 4차례 현지에 파견하였고, 그 결과 ‘온·습도 차에 의한 굴 내 청태 발생’, ‘재래 콘크리트의 파손에 따른 쇠 녹물의 침출 및 석회분 발생’, ‘바닥 먼지로 인한 오염’ 등을 그 원인으로 확인하였다. 문화재위원회는 즉각 보수계획을 수립하도록 하였다. 배기형이 석굴암 보수설계자로 피임되어 작성한 설계안은 외기에 대한 대응과 석굴 내외의 환경개선이라는 목적을 가졌다. 이 1961년의 설계안은 종전의 재래 구조체에 침입했던 침투수를 원천 차단하고 중공층의 공기순환을 통해서, 석굴내의 온열환경을 일정하게 유지시키며 조각물과 불상 보호를 꾀하는 방책이었다. 배기형은 기존 석굴암의 외주에 중공층을 두고, 재래 구조체를 전면 피복하는 “이중 돔” 구조시스템을 제안하였다.

그러나 문화재위원회는 “전실옥개 미계획”, “기존 석굴암 구조에 이중 돔이 유착되며 석굴암 측에 가중될 하중에 대한 불안전성”, “지반조사에 따라 변경 될 배수로와 피트 계획” 등을 이유로 들면서 배기형의 설계안을 돌연 폐기하였다. 한편 김중업과 황수영이 주도적으로 진행한 설계안에서도 여전히 ‘이중 돔’의 설치가 중요한 개념이었으며, 문화재위원회의 설계승인으로 1964년에 준공한 석굴암은 ‘이중 돔 구조’와 ‘목조 전실’이 설치된 것이었다. 1967년에 작성된 「석굴암 수리공사 보고서」에 실린 준공도면과 공사사진을 살피면, 배기형이 제시하였다가 폐기된 ‘이중 돔’ 개념이 유효하게 드러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배기형의 설계안은 각 분야별 전문가들이 현지조사를 통해 도출된 보존방안을 수렴하고, 그것을 건축의 설계도서로서 치환시켜 제시한 계획이란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가 있을 것이다.

연구자들은 1963년부터 1964년까지의 「석굴암 수리공사」의 실체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피는 일을 차후의 연구과제로 삼고 싶다. 앞으로의 후속 연구에서는, 수리공사의 관점을 이해하고, 그 복원과 보존을 위해 철근콘크리트 구조의 개량, 이중 돔 구조의 설치, 목조전실 축조 등의 수리공정을 고찰하려고 한다. 그럼으로써 1958년부터 1964년까지의 석굴암의 구조적 변화가 구체적으로 파악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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